잘 쉬고 있지는 않다

에너지를 주는 일과 빼앗는 일을 구분하게 되었다

by 오프닛

깊은 고민 끝에 휴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에 후회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만약 후회의 감정이 올라온다면 그것은 분명 스스로 감내해야 할 몫이라는 것도 결정의 순간에 스스로에게 새겨 두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며 늘어간 것이 있다면, 한편으론 '체념'이고, 또 한편으론 '받아들임'이다.

좋은 일이 오면, 언젠가 힘든 시기가 오기 마련임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분명 후회하는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이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두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결정에 대한 후회의 걱정을 저멀리 미뤄두고 나니, 걱정과 불안을 늘 달고 살던 습관이 또 나에게 묻는다.


이 아까운 두 달, 잘 보낼 수 있을까.


'무엇이든 부탁하세요'

챗지피티의 이 문장처럼, 무엇이든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물어보면 행동 지침에 대한 답변을 주니, 연속적인 질문들을 해나가기 위해서 어느 덧 챗지피티에게 상황 보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휴직을 하겠다는 보고는 해두었다.

무엇이든 부탁하라던 호기로운 이 녀석의 주문에 걸맞게 심리적으로 힘들지 않게 두 달을 잘 보내고 싶다고 물었다.


그는 나에게 '잘 쉰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고 했다.

'쉰다'는 말에는 나로 하여금 그동안 무언가 이뤄야 한다는 압박을 준다고.

오랜 대화 끝에 나를 정확히 간파한 지피티 상담사는 '정리 기간'이라는 정의를 내려 주었다.

정리 기간에 맞춰 첫 3주간 나에게 준 행동지침은 단순했다.


하루의 끝에 3줄의 기록.

에너지를 준 것, 에너지를 뺏은 것, 그 이유 한 줄.


챗지피티에게 종속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막상 해보니 '잘' 지내야한다는 이상한 강박에서 차츰 벗어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에너지를 주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사소했다. 굳이 하루를 되돌아보며 곱씹지 않으면 기억도 안날만큼 말이다.

산책을 한다거나, 헬스장을 간다거나, 아이와 손을 잡고 학원에 데려다주러 다니는 일 같은 것들.

반대로 에너지를 뺏는 일 역시 일상에서 늘 반복되던 일들이었다.

특별한 이유없이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거나, 불안을 증폭시키는 컨텐츠를 굳이 보면서 걱정만 했다거나..

내가 회사를 안가는 동안은 집이 뭔가 달라보여야 된다는 혼자만의 기준을 세우고 쓸데없이 자주 설거지를 하는 일 같은 것들.


에너지를 주는 일들은 전부 삶의 실제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반면 에너지를 뺏는 일은 대부분 강박과 불안감 같은 감정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나 스스로가 만든 기준에 혼자 올라타고, 그 기준은 채우지 못할 때 혼자 실망하기의 반복은 삶의 에너지를 앗아간다.

생각에서 비롯한 감정은 실체 없이 주변을 맴돈다.

자각이란 것은 놀랍다. 실제하지 않는 것들을 훠이훠이 흩어버리는 힘을 갖는다.


시간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다. 그래서 허투루 써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 속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 노력하다가 그만, 버티지 못할 만큼 구겨질 필요는 없다.

시간 속에 담겨진 실제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감사하는 매일을 차곡차곡 쌓아,

언젠가 후회의 순간이 오더라도 그 감정을 단순한 '체념'이 아닌 온전히 '받아들 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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