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앞에 있었다

시간은 조용히 나를 다른 위치에 데려다 놓았다

by 오프닛



17년 차가 되니 동기 중 절반은 이미 회사를 떠났고, 남은 동기들은 하나둘씩 팀장이 되었다.

팀장이 아닌 동기들은 그 팀에서 리더에 준하는 차선임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

신입시절에 대리 과장님이었던 선배들은 어느새 임원급이 되어 있다.

세월이 지나면 당연한 순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현실 인식이 안되는 걸까.


얼마 전 임원 주최로 실무급 대 여섯 명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으로 걸어가는 길, 3명이 넘어가는 인원이 움직이면 자연스레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임원은 앞서 걷고, 그 옆을 누군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야 한다.

나는 그저 평소 같은 속도로 걷고 있는데 어느새 임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대리, 과장, 얼마 전 진급한 차장. 이 사람들은 속도를 조금 낮추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앞서 걷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소위 '높은 양반'과 걸음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 내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세월이 됐다. 그 사실이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더 서글펐던 사실은, 걸어가며 하는 그 대화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임원 분이 편하게 대해주시기도 했던 점도 있지만, 원래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거나 차를 한잔 마시던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나와 그분 사이에 겹치는 몇몇 사람의 관계가 있을 뿐.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나는 과장님으로, 그분은 신입사원으로 서로 알아왔던 그 오랜 세월 때문일까.

오래 알고 지낸 시간만큼 서로에 대한 어색함이 사라졌다.


우리의 뒤에서 들리는 후배 직원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어쩌면 묘한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어 있진 않을지, 이렇게 OB의 대열에 자연스레 합류되는 건가 생각해 본다.

'마음만은 청춘'이랬던가.

그 말마따나 나는 이렇게 그대로인데, 나를 보는 시선과 기대와 책임과 의무가 '청춘'이란 단어를 저 멀리 돌려보낸다.


몇 년 전, 나도 차부장님들을 보며 생각했었다.

'저 차장님은 임원이 어렵지도 않나 봐, 저렇게 농담을 다하고.'

그때는 임원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차장님을 보며 참 배포가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그 모습이 지금 내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실은 옛날 그 차장님도 배포가 컸던 게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며 그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낀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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