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조직이란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느 부서를 가나 부서장이 예뻐하는 팀원은 있기 마련이다. 부서장도 사람이니, 나와 결이 맞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할지도. 여기에 일이 얹히면 또 다를 수 있지만, 일마저 추진 스타일이 잘 맞으면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가 난다.
그런 팀원이 있으면 부서장 전담 마크가 생긴다. 솔직히 다른 팀원 입장에서는 편할 때도 있다. 그 팀원이 부서장의 감정 휴지통이 되어주다 보니, 부서장 심기 불편할 때 괜히 나에게 불똥 튈 일도 줄어든다. 회식 자리에서 회색지대 쟁탈전도 좀 더 수월하고, 말하기 껄끄러운 일도 그 팀원에게 슬쩍 흘려서 자연스럽게 부서장 귀에 꽂히게 할 수도 있다.
반면, 그런 이득보다도 더 큰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전담 마크 팀원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 이유는 바로 고과.
객관성, 정확성, 공정성이 요구되는 인사평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 기억재편기능과 감정을 보유하는 인간이 한다. 1년 간의 많은 업무에 대해, 그것도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의 업무를 1년 어느 한 시점에 평가한다? 과연 얼마나 객관적 일지.
결국, 기억에 남은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부서장이 중요하게 여겼던 업무, 부서장이 자주 같이 쫓아다니고 팔로 업했던 일, 자꾸 부서장에게 기안을 들이밀어 진척을 낸 업무들. 이런 일들이 부서장의 기억에 잔존한다.
빈도가 높아질수록 망각 곡선을 따라 잊히려다가도 다시 상기된다. 그렇게 상기되는 일이 쌓이고 쌓여, 연말 고과철까지 부서장의 머릿속에 살아남는다.
자주 이야기하는 팀원이라면?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도 업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자주 대화하다 보면 굳이 시간을 잡지 않아도 아이디어를 나누고, 일의 속도가 빨라진다.
다른 팀원들은 어렵게 보고 자리를 잡고, ‘보고’라는 단어의 위압감을 이겨내기 위한 준비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데 말이다.
결국 속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부서장의 머릿속엔 다시 한번 되새겨진다.
‘역시 잘하는구먼’
속도감 있는 추진, 빠른 피드백, 그리고 부서장과 함께 공들인 결과물. 고과를 잘 받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 다시 한번 폭발한다.
그렇다면 그 팀원의 잘난 고과 행진은 계속될까? 아니, 그는 정말 잘하는 게 맞는 걸까?
그가 일반적인 평균값에서 벗어날수록, 사람들의 심리는 그를 끌어내리고 싶다. 그의 실력과 성과에 대한 의구심, 이런 것들이 조금씩 조직의 대칭을 깨뜨린다.
조직이란 여러 사람이 각자 잘하는 부분을 내세우고, 누군가의 부족함을 메워가며 함께 퍼포먼스를 내야 존재 의미가 있다.
부서장도 팀원도 사람이기에, 부서장이 애정하는 팀원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애정의 정도가 누군가에게 불편감을 주며 ‘편애’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 조직의 공평성은 사람들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공평한 조직이란 건 환상일지도 모른다. 감정과 인간적인 호불호가 완전히 배제된 공간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