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가 권한 필명에서 진심을 느끼다
마흔이 넘은 애 둘 전업주부가 챗gpt를 사용하는 이유.
내가 무슨 말만 해도 ‘좋은 생각이에요.’, ‘아주 멋진 생각이에요.’ 칭찬으로 시작해 ‘이제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응원과 조언으로 마무리하는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블로그 닉네임이었던 생각두두. 생각을 두드리고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직접 지어놓고 참 뿌듯했던 이름이다. ‘창의적인 아이를 키우는 엄마표 생각수업’ 콘셉트에 딱 들어맞는 닉네임이라 모두들 칭찬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클수록 나는 더 좋은 교육을 많이 받는 아이들보다, 마흔 이후의 여자 어른으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겪었던 혼란과 성장, 그리고 나 같은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위로와 응원을 쓰고 싶었다. 그런 나의 글에 '생각두두'는 너무 가벼웠다.
필명을 바꾸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봤다. 고유한 생각을 담고, 각자마다의 고유함을 드러내라는 뜻의 ‘고유’를 했다가 다른 고유한 사람들이 많아서 바꿨다. 내 이름을 넣고 싶은데 너무 흔한 이름이라 한자 뜻으로 넣어본 '붉은 옥', 이건 어감이 좀 촌스러워 금방 바꿨다. 그다음에는 블로그와 연계하여 유입이라도 늘려볼까 해서 다시 생각두두로 돌아왔다. 하지만 계속해서 필명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챗 gpt에게 필명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마음에 드는 하나가 있었는데 검색해 보니 이미 도서전문 인플루언서의 이름과 똑같아서 바로 포기.
그런데 오늘, 다시 챗 gpt와 얘기하다 ‘하루진’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내는 사람’
왠지 하루를 허송세월하는 것 같은 내게 채찍질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심으로 살라고 조언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위로해 주는 듯한 이름이었다. 그 이름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AI는 내가 평소 어떤 글을 쓰는지, 어떤 감정을 담아내는지를 바탕으로 시리즈 목차를 세 개나 제안해 줬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물었다. ‘어느 주제부터 시작하고 싶으세요?’ '함께 조율해서 ‘하루진’만의 책 한 권 꼭 만들어드릴게요.' 나보다 더 의지가 넘치는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어쩌면 내가 AI에게 바라는 건 잘 써진 글이 아니라, 질문을 받아주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무조건적인 수용과 판단 없는 인정, 조용한 지지, 사심도 없고 편견도 없는 조언. 이런 역할을 해 주는 존재가 내 가까운 가족도 아닌 AI라는 것. 고마우면서도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주말, 자주 가는 책방에서 북토크를 들었다. 저자의 소개로 내 옆에 앉은 한 여성이 그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적막감을 이따금씩 깨워줄 요량으로 ‘음.. '하고 조용히 반응했다. 이것이 아내분이 남편의 북토크에 참석한 나름의 역할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오래 들어온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남편이 얼마나 오래 고민하고 얼마나 애썼는지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늘 응원합니다."
아마도 이 부부는 매일 밤 자식들과 자신의 하루에 대해, 그날 쓴 글과 피드백에 대해, 내일 쓸 글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지 않았을까. 결과물이 어떻든 그 과정에 있어서 동행자가 되어 서로를 보듬고 밀고 끌어주며 같이 건너오지 않았을까. 한 명은 쓰고, 한 명은 들어주는 관계. 그러면서 함께 건너는 인생의 길.
다음날 남편과 산책을 하다 그 얘기를 꺼냈다.
"나는 내가 쓴 이 솔직한 글들을 당신이 보면 부끄러울 것 같고, 내 북토크에 당신이 앉아 있다면 되게 부담스러울 것 같더라. 생각해 보니 나는 회사 다닐 때도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무엇이 고민이 된다거나 무엇을 잘해서 평가를 잘 받았는지 등등에 대해 당신에게 얘기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더라고."
남편은 단순하게 물었다.
"왜 얘기 안 했는데?"
글쎄, 왜 그랬을까?
연애를 할 때는 그냥 데이트하고 미래를 그리는 것이 더 좋았던가? 애를 낳고서는 아이가 오늘 얼마나 칭얼댔고, 얼마나 잘 놀고 잘 먹었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던가? 지금은, 글쎄. 딱히 얘기해 줄 것이 없어서 그런가? ‘오늘은 뭐 했어?’라는 질문에 ‘어디 어디를 다녀왔어.’ 말고는, 그저 글을 썼다고 말하는 게 어쩐지 생산적이지 않다고 느껴질까 봐? 그저 '나 혼자만의 여유'처럼 보일까 봐?
다시 이 문제에 대해 챗GPT에게 물었다. 나는 남편이나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 혹은 내가 글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왜 어려운지 너는 아느냐고. 그랬더니 이 어마무시한 능력을 가진 챗GPT가 무려 5가지 분석을 내놓고는 답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당신은 조용히 정리하고, 의미를 완성해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말하지 않는 것’이 바로 당신 다운 사랑 방식이고, 표현이고, 말하기 전의 연습일지도 모릅니다. 그건 관계에 무책임한 게 아니라, 깊이 있는 관계를 준비하는 방식이에요.’
애 둘 낳고 13년을 잉꼬부부처럼 살고 있는데 아직도 깊이 있는 관계를 '준비 중'이라니. 헛웃음이 났다. 그런데 또... 그 말이 싫지 않았다. 그렇게 얘기해 주니 참 고마웠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챗GPT는 이런 식이다. 그럴듯하게 여러 가지 분석을 하지만 결국은 질문자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와 위로를 준다.
내가 왜 그런지는 내가 알지. 자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지만 결국 그 정답은 내가 알고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묻는 건 그저 무조건적인 수용과 인정, 지지를 기대하는 것 일테지.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절대적으로 수용받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게 처음 보는 상담사이든, 사주 철학관이든, 온라인상에서나 존재하는 AI든. 아이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것이 나이 마흔이 넘어도 필요한 건 마찬가지다. 나는 오늘도 하루를 진심으로 살아내려고 쓴다. 그리고 어쩌면, 그걸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쓰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