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 담긴 내 감정
글은 쓰고 싶은데 글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서, '작가의 서랍' 속에 저장해 둔 리스트를 둘러봤다. 언젠가 완성은 못 했지만 진지하게 고민했던 글도 있고, 제목과 한 문장만 메모하듯 덩그러니 적어 놓은 글도 있다. 가끔은 세상 빛을 보려다 만 그 서랍속의 글을 완성시키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어서 이렇게 한번씩 꺼내어본다.
스크롤을 내리다보니 3년 전에 저장해 놓은 글이 있었다. 눈에 띄는 제목이라 클릭했다. 거의 완성에 가까운 분량의 글이 눈 앞에 턱 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왜 발행을 누르지 않고 이대로 묵혀놨을까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다가, 이내 '발행 안 하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 글의 제목을 얘기하기도 부끄럽지만, 앞으로도 발행을 안 할 것이기에 굳이 꺼내자면 '지독히도 계산적인 모녀 사이'다. 너무 감정이 격해져 있었던 글. 이 글을 발행하면 남들이 욕할까봐 걱정스러웠을까, 아니면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이 돌이킬 수 없을만큼 곤두박질칠까봐 두려웠을까. 지금 읽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날카롭고 날이 섰었나?' 부끄러울 지경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진지하고 구구절절했는지.
나는 오늘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서, 좀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특유의 위트감을 살짝 얹어서 재미있으면서도 공감이 가고 위로가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소재를 뭐로 할까 하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결국 서랍 속에 그 글에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필 클릭한 글이 친정엄마한테로 향한 나의 한스러운 화살촉이었다니. 가시가 잔뜩 박힌 그 글을 그대로 발행했다면, 그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화살을 쏘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글은 이상하게 거짓말을 못 한다. 내 마음이 괜찮은 날은 글도 가볍고 즐거운데, 지쳐 있을 땐 괜히 철학자라도 된 듯 무거워지고, 마음이 시끄러울 땐 다다다다 쏟아내버리기도 한다. 사람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이 아닌데도, 글에는 그때 내 마음의 소리, 표정, 눈빛이 다 담겨 있다.
부끄러운 글도 그때는 최선의 기록이었을 것이다. 문제해결과 상관도 없는 누군가에게 한풀이하듯 쏟아낸 것보다는, 나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떨어뜨려 보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남겨 놓은 그 때 그 시절의 생존을 위한 글이지 않았을까. 지금은 '굳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 '쯧' 하고 짧게 혀를 차 내다가, '이런 시간도 내가 지나왔구나.'하고 그 시절의 나를 토닥이게 된다.
좀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물 건너 갔고, 결국 다시 성찰하는 진지 모드가 되었다. 어떤 마음으로 쓰든 그 글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지키는 하나의 애씀이다. 너무 무겁게 쓰지 않아도, 너무 가볍게 쓰지 않아도 그냥 오늘을 살아내려는 나의 애씀을 그대로 기록하면 그것이 오늘 나의 진심이다.
다행인 건 오늘 이 글을 쓰고나면 발행을 누를 것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