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글쓰기가 나를 기록한다

글쓰기로 찍은 점들이 나의 길이 되기까지

by 제이유

지난 몇 년간, 나의 하루하루가 뭐 했는지도 모르게 흘러갔다. 시간의 흐름은 자연스러웠지만, 그 속에 있는 나는 걸리적거리는 돌덩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회적 용어로서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이 된 후부터다. 대기업 근무 경력, 대학원 학위는 말 그대로 이력이 되었을 뿐, 내 이름 앞 뒤로 붙여지는 사회적 소속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단지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가족단위의 역할이 내 이름을 숨겼다.


처음엔 어딘가에 내 이름이 숨겨진 것이 편안했다. 삶이 단순해지고 고민거리가 줄어들고, 무엇보다 체력적인 부담이 많이 낮아졌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존감도 같이 낮아졌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기록하는 것이었다. 단지 나의 오늘이 의미없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에게, 심지어 가족에게도 글을 쓴다고 떳떳하게 말할 정도는 안 되었다. 그저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오다가다 들릴 수도, 혹은 지나칠 수도 있는 온라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도 사회 구성원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때마다 쓰고싶은 이야기, 배우고 싶은 글쓰기 등을 하다 보니 그새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다.


블로그를 한창 열심히 할 때, 인플루언서 인증을 받았다. 브런치에 일상 글을 올렸는데 에세이스트 배지가 붙여졌다.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다른 입구를 찾았다. 나를 증명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 역설적으로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봐' 혹은 '나의 부족함을 들킬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쓰기를 멈추다가도 결국 또다른 글쓰기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런 생각들을 버렸다.




‘내가 글을 써도 될까'


많은 작가님들이 말했다. “일단 쓰세요. 냉정하게 얘기해서 당신 글을 읽는 사람, 별로 없어요!” 정말 진리의 말씀이다. 글 하나 올리면 마치 내 남편이나 시누이, 연락 끊긴 중학교 동창도 키워드 검색해서 우연찮게 들어와 읽을 것 같지만, 내 글이 상위노출될 확률은 크지 않다는 것을 거의 세뇌시켰다.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 생각 무수히 많이 했는데, 정말 쓸데없는 생각임을 이제는 안다. 한번은 청년취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교육프로그램 설명회에서 진행을 맡았는데, Q&A 시간에 한 지원자가 지난해의 경쟁률을 물어봤다. 내가 욱해서 몇 마디 했다. "나보다 잘 하는 사람 있으면 안 할 건가요? 누구 좋으라고 안 해요? 그 사람들 더 잘 되고 잘 살라고 안 해요? 그런 고운 마음 나에게 써야죠."


왜 이 말을 나한테 해 주지 못했을까. 내 글을 존중하는 건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분명히 내 글의 독자는 많든 적든 있다. 유시민 작가님의 ‘청춘의 독서’를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분의 독자가 되고,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에 감탄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김신회 작가님의 에세이에 공감하는 사람은 각자 그 분의 독자가 되는 것이다. 한 유투버가 ‘정말 왕초보는 고수의 말이 어렵고, 초보가 설명해주는 것이 제일 이해하기 쉽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 글이 맞는 독자가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글 써서 돈 벌고 싶다!’


내 말이. 블로그 글 몇 개 쓰고선, ‘나는 언제 애드포스트를 달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한 달에 글 두 편 올리면서 수익 그래프는 맨날 확인하고. 글 써서 돈 벌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니, 오히려 돈 되는 소재가 뭐가 있을까 글은 더 산으로 가고. 직장인으로서 장착했던 성과 집착주의가 여전히 붙잡고 있었다.


글 쓰는 일 자체가 생산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한량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다. 몇 개 써서 올린다고 책이 되어 물성으로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브런치에서는 나를 작가라고 부르는데, 남들한테는 직업이 작가라고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도 내 몫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점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 내용은 언제나 나의 나침반이 되어줬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당신은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순 없습니다. 오로지 지나온 것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연결할 수 있죠. 그러니 당신은 그 점들이 당신의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거라고 믿어야 합니다.

- 스티브 잡스 연설문 중 -


무엇이든 써 보고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나의 찬란했던 시절이 기록되어 나를 반기고 있다. 성과가 아닌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곧 성과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 덕분에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




일년 365일을 꾸준하게 글을 쓰진 못 했지만, 돌아보니 6년동안 글을 쓰려고 장르별로 점을 찍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정착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대체 나는 어떤 장르의 글을 써야 하는가, 나의 길은 대체 어느 쪽인가를 답답해 하며 찾아 헤맸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 헤매다 찍은 점들이 몇 년 지나보니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나다운 글을 쓰는 순간, 언제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너무 거창한가? 누군가의 딸, 며느리, 엄마, 상사, 후배일 수 있는 나의 점들이 모여 결국 그것이 나임을 인정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는 반드시 글로 쏟아내야 한다.


상담사 찾아가도 그때뿐이고, 철학관 약발도 한 달 못 간다. 친하다는 지인들에게 퍼부어봤자 위로도 한 두번이지 그들도 지친다. 배우자나 자녀한테 쏟아낼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한다. 나를 지켜주는 최전선인 가족들은 보호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온라인에 글 써서 부정적인 감정 공유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내 컴퓨터에 막 퍼붓고 잠깐 묻어두면 된다. 온라인에 막 올리고 싶겠지? 누구한테라도 위로받고 공감받고 싶겠지? 아니다. 나중에 후회한다.


내 감정덩어리를 글에 퍼붓는 것은 나의 자유이고 훌륭한 치유 방법이지만, 그것을 공유하는 것은 사회적 배려에 무책임한 것이다. 완벽하려는 것도 미련한 일이지만, 너무 날 것을 공유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이걸 꼭 해보고서 깨닫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바로 나.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글 써보자.


돈이 될까 안 될까.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없을까. 어떤 장르로 써야 할까. 고민하지 말고 마음 가는대로 써 보자. 당장은 아닐 수 있지만 돌아보면 그 점들이 모여 나의 길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글, 쓸 수 있다. 쓰면 좋겠다.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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