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키우지만, 치킨은 먹고 싶어

이 닭과 저 닭의 차이

by 김란주

우리 집 둘째 딸과 그의 아빠의 최애 음식은 치킨이다. 저녁 준비가 애매한 날, 그러니까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왔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언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지 늦게 알아차린 때, 배달시켜 먹을까 하고 물으면 ‘치킨’이라는 대답이 가장 먼저 나온다. 주문하고 배달이 되기까지 못해도 40분 이상은 걸리니 그럴 시간에 저녁을 차리겠다 싶다가도, 나의 귀찮음을 숨기고자 마지못해 ‘또 치킨이야?’ 하면서도 주문을 허락한다.

며칠 전에도 식탁에 앉아 치킨을 먹고 있었다. 주말 저녁이라는 특별함을 만끽하기 위해 거실 식탁 위에 치킨을 펼쳐 놓고, 마주 보던 의자를 끌어다가 일렬로 앉았다. TV 예능 채널을 틀어 놓고, 한 손으로는 닭다리를 뜯으며 또 한 손으로는 맥주를 들었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맨들이 나오는 예능을 보는데, 그 안에서도 대놓고 협찬인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속살이 촉촉하고 겉은 바삭하고 정말 꿀맛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보면서 저 협찬 치킨 돈 많이 줬나 보다고, 멘트가 매우 구체적이고 홍보를 제대로 해 준다며 혀를 찼다. 아무렴 방금 배달 온 뜨끈뜨끈 바삭한 이 치킨보다 맛있을라고.


새삼 눈 앞에 있는 치킨의 맛에 집중하다 보니, 아무렴 전원주택 마당에서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을라고. 2년 전까지만 해도, 앞뒤로 산과 나무의 뷰가 일품은 마당에서 캠핑 의자에 앉아 치킨을 뜯었었다. 주변엔 치킨집도 없고 배달도 안 되는 곳이라, 다리를 건너 옆 동네에 차 타고 가서 포장해 와야 했다. 남편이랑 같이 치킨을 찾으러 갔다 오는 길에, 차에서 그 뜨끈뜨끈한 닭봉 하나씩을 손에 들고 맛보았더랬다. 남편이 하나 가지고는 성에 안 차서 하나만 더 먹자고 졸라대면, 애들이 눈치챌 법한 닭다리와 닭다리살을 빼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적당한 덩이를 찾곤 했었다. 차 안에 가득 퍼지는 달콤한 허니간장소스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집에 도착하면, 바로 마당에 펼쳐놓은 캠핑 테이블과 의자로 가 기막힌 자연의 뷰를 감상하며 닭다리를 뜯었다.


정신없이 몇 조각을 먹다 허기가 좀 가시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마당 한 편에서 키우고 있던 닭들이다. 사랑으로 애지중지 키우는 닭들이 해가 떨어져 어둑어둑해지는데, 주인네들이 뭘 먹고 있는지 도저히 궁금해 참을 수 없다는 투로 꾸룩꾸룩 대고 있었다. 돼지고기 바비큐였으면 아까워하지 않고 주었을 테지만, 동족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심지어 그들의 눈앞에서 동족의 살과 뼈를 무참히 손에 쥐고 뜯고 있는 인간의 잔인함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한 주먹 양심의 거리낌은 있어서 최대한 닭들이 보이지 않도록 등을 돌리고 먹었는데, 그것은 또 무슨 소용인가. 좀 미안하니까 조용히 먹자며 아이들에게 눈치를 주면서도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기어이 마당에서 끝장을 내는 뻔뻔함에 할 말이 없다. 닭들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 닭과 저 닭은 다른 거지, 하며 이기적인 합리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일이다.


어쨌거나 내 집 마당에 오순도순 둘러앉아 자연 경치를 보며 먹었던 치킨의 맛이 참 그립다. 자연의 품 안에서 먹던 치킨과 아파트 거실에서 TV를 마주 보며 먹는 치킨의 맛은 향부터가 다르다. 물론 치킨집도 다르다는 것은 차치하기로 하고. 조금 잔인하기는 하지만 치킨을 먹으며 애정으로 키웠던 닭들의 이름도 오랜만에 소환해 봤다. 그때 참 좋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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