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4G 기술 와이브로의 발자취
와이브로(WiBro)를 아시나요? 와이브로는 수년 전 KT의 egg(에그) 마케팅과 함께 반짝 인기를 끌었던 토종 4G 기술입니다. 원래는 글로벌 4세대 이동통신 표준을 꿈꾸던 유망 기술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LTE에 밀린 비운의 기술이죠. 결국 국내에서는 소수 가입자의 명맥만 이어오다 올해를 기점으로 사실상 모든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얼마 전 전해졌는데요. 오늘은 와이브로가 걸어온 지난 시간에 대해 간단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와이브로를 토종 기술이라 부르는 이유는 개발의 주체가 바로 삼성전자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였기 때문입니다. 와이브로는 2000년대 초반 주류 모바일 통신망이었던 CDMA 이동통신의 속도 한계를 개선하고, 이동 중에도 원활한 무선 인터넷 서비스를 목적으로 개발되었는데요. 기존의 와이파이 기반 무선랜 서비스가 특정 AP(무선 접속 포인트, 기지국 개념)의 반경을 벗어날 때마다 연결이 끊어지는 단점이 있던 반면, 와이브로는 연결 신호를 다음 AP로 자연스레 연결해주는 핸드오프 기술을 지원하며 보다 안정적인 무선 인터넷 환경을 제공할 수 있었죠.
와이브로는 당시 기준으로 속도도 빠르고, LTE보다 먼저 기술과 서비스 상용화에도 성공했지만 같은 같은 4세대 통신 규격으로서 3GPP라는 세계적 통신 기술 표준기구가 지원하는 LTE의 벽을 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4G 표준의 대세는 LTE로 흐르기 시작했고 내 이동통신 3사마저 와이브로의 적극적인 도입을 꺼리는 상황에서 와이브로를 살린 건 KT의 에그와 정부의 주파수 할당이었습니다.
SKT와 LG U+가 일찌감치 LTE 서비스를 개시했던 2011년, KT는 LTE에 사용하려던 주파수 일부가 존의 몇몇 서비스 대역과 겹치는 바람에 이를 정리하기까지 광대역 TE 서비스 개시를 늦춰야 했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KT는 타사와의 LTE 경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와이브로 기반의 휴대용 와이파이 공유기 ‘에그(Egg)’를 부랴부랴 전면에 내세우게 되죠. 당시 에그는 꽤 귀여운 외형과 함께 준수한 속도 및 수신 범위, 무엇보다 저렴한 요금제로 일반 휴대폰 요금제보다 다량의 데이터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정부가 이동통신사에 할당한 와이브로 전용 주파수의 존재도 와이브로의 생명 연장에 일조했습니다. 와이브로 서비스에 사용된 주파수는 2.3GHz 대역으로 KT와 SKT에 각각 30MHz, 27MHz가 주어져 있었는데요. 와이브로의 수익성이 좋지 않자 이 주파수를 LTE 기술의 일종인 TD-LTE 용으로 전환하려던 KT와 SKT는 그럴 경우 주파수를 도로 반납하라는 방통위의 협박(?)에 이 계획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차후라도 어떻게 쓰일지 모르는 금쪽같은 주파수를 와이브로 종료와 맞바꾸기엔 오히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명맥만 유지하던 와이브로는 결국 시대 변화를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LTE의 속도와 서비스 수준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KT는 LTE 기반의 에그를 새롭게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이동통신사의 우선순위에서 멀어진 와이브로 망은 유지관리 소홀로 인해 품질이 점점 더 악화됐죠. 이로 인해 사용자들은 자연히 와이브로를 떠나기 시작하는데요. 전성기에 100만여에 달하던 와이브로 가입자 수는 올해 5월을 기점으로 KT 22만, SKT 3만 3천 명 수준으로 급감하고 맙니다.
결국 내년 3월 주파수 반납을 앞두고 KT와 SKT는 각각 올해 9월, 12월 와이브로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물론 기존 가입자는 충분한 지원과 함께 휴대용 LTE 라우터로 이동시키는 계획과 함께 말이죠. 정부도 와이브로 진흥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눈치입니다. 지난 2013년 당시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미 와이브로 종료 후 이를 이동통신사가 원하는 TD-LTE 용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렇게 토종 통신 기술로 주목받던 와이브로의 장밋빛 미래는 시장 도태 과정을 거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사실 요즘 같은 무한 기술경쟁 시대에 ‘토종’이란 이름이 갖는 가치는 크지 않습니다. 어떤 ‘상징’은 될 수 있어도, 알맹이와 기반이 알차지 못하면 결국 밀려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전통적인 통신 인프라 강국이었던 우리나라가 한 세대를 아우를 통신 기술의 대명사가 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도 자체는 높이 살 만합니다. 비록 와이브로는 실패했지만 이 경험은 미래 제2의 와이브로가 나타났을 때 훌륭한 경험적 자양분이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퇴장하는 와이브로를 향해 덤덤하게 손을 흔들어줄 차례인 것 같습니다. 굿바이! 와이브로.
기사문의: 오픈모바일(wel_omc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