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ind Opener
Nov 21. 2020
내버려두는 것이 쉼의 시작이다
쉬는 날까지 나를 소모시키는 나를 반성하며
날을 잡았다. 이번엔 꼭이라고 다짐하며 각오를 다진다. 쉬는 날을 한 번 만드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좀 어려운 일이다. 휴가 계획을 쉽게 세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쓸데없는 책임감과 오지랖이라며 직장 생활을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을 한다. 사실 나는 꾀돌이과라 그렇게 성실하고 바지런하게 모든 일에 몰입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책임이 남겨져 있는 것을 못 견디기에 쉽게 쉼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나마 법정 공휴일이라는 정해진 쉼표가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나를 갉아먹는 날들이 지속되면 정해진 쉼표로는 회복되지 않을 때가 온다.
결국 좀 과감하게 쉬는 날을 만들어야 내야 한다. 윗분들에게 미리 선전 포고하듯이 나의 쉼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후임들에게 혹시 모를 일들에 대한 대처법과 일거리들을 전달한다. 그리고 협력업체와 일정을 조정하고 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때서야 뭘 하지?라는 고민에 빠진다. 그래 봤자 평소에 뵙지 못했던 고마운 사람들을 만난다든지 회사 일로 소화하지 못했던 개인 일정을 위해 시간을 배정하고 나면 길지 않을 것이 뻔한 나의 보통의 휴가는 쉽게 소멸하고 만다. 때론 무책임과 고용노동법상의 연차 사용 보장이라는 무기로 달려들지 못하는 내가 스스로 답답하긴 하지만 그런 게 나니까 또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계획된 나름의 긴 쉼이 나를 회복시켜주는가?라고 되물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모처럼 쉬는 날을 어어가더라도 쉼을 위한 계획들이 나를 소모시킬 때도 많다. 충전을 위한 쉼이었는데, 오히려 방전되어버리는 나를 발견한다. 여행이라는 것도 꽤나 정신력을 소모하게 하고, 육체적인 피곤함은 덤으로 나를 덮친다. 나를 충전하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낭만적인 캐치프라이즈는 그저 구호에 끝나버릴 확률이 더 높다.
최근에 휴가를 무려 이틀이나 낸 적이 있다. 나름의 계획을 실행해 적당한 여행을 마친 후 지친 몸을 방치하며 휴가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남는 표가 생겼다며 빨리 택시를 타고 오라는 말에 얼떨결에 오케스트라 공연을 관람을 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별 기대 없이 들어간 공연장을 채운 소리들은 너무 쉽게 나를 힐링시켰다. 참 아이러니하다. 회복을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은 결국 피곤함만을 남겼는데, 계획에 없던 일이 나를 채우다니 말이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여전히 클래식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것을 보면 공연이 꼭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별히 뭔가 하려던 일 아니고 그냥 흐름에 나를 맡겨 내버려 둔 일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닐까?라는 생각해본다
쉼은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동안 좀 착각하며 산 것 같다. 쉬는 날도 뭔가 꼭 해내야 하는 날처럼 삶을 지속하니 결국 소모될 뿐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또 대표적으로 쉼을 위해 행하는 여행 등이 주는 즐거움이 크다고 해도 내 마음의 독의 구멍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 결국 잠시 채워냈다고 생각하지만 다 흘러가버리고 만다. 제대로 된 쉼을 위해서는 내 마음을 돌아보고 정비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맞는 것 같다. 그동안 수많은 날들을 살아내느라 고생한 내 마음을 돌보고는 것이 먼저여야 하고, 소모된 만큼 우선은 정말 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쉼의 시작이다. 회복된 내 마음은 그제야 나에게 여러 감정들을 느끼게 하고 진정한 힐링을 가져다준다. 다음 쉬는 날은 내 마음을 위한 날로 제발 좀 알차게 내버려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