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 Opener Nov 05. 2024

피할 수 없는 내일

여행,  불혹의 연차 때우기

'아차... 내일이구나'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창고 속 먼지 쌓인 캐리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Ai  생성이미지 - Google imagen3 -


'역시 가장 큰 놈이 좋겠어!'


나름의 고심 끝 결정은 가져갈 짐이 아니라 가져올 짐을 위한 대비였다. 누군가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충족시키기 위한 이런저런 것들은 꼭 예상을 넘기기 마련이니까. 질질 끌고 나온 캐리어를 거실에 펼쳐놓았다. 나의 어깨는 이미 큰일을 해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으쓱 올라갔다. 


'시작이 반이니 그럴 만도 한 것 아닌가?'  


자칫 열심을 낼 뻔한 나를 일깨워준 어깨에 감사하며, 빈둥거리는 중이었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다시 상기했다. 소파에 다시금 몸을 맡긴 채 내일이라는 놈이 눈치를 줄 때마다 생각나는 것들을 던져 넣었다. 어느새 상당한 것들이 쌓여갔지만, 불쌍한 캐리어는 아마 출발 전까지 닫히지 못하고 방치될 예정이었다. 아마도,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해서 당하는 것보다 다소 모양 빠지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은, 이 녀석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뒤통수가 따가운 것 같은 착각과 미안한 마음은 대충 접어두고 예정대로 누울 장소를 침대로 옮겼다. 나머지는 내일과 마무리하면 될 일이니까.


Ai  생성이미지 - Google imagen3 -


'잠이 안 오는 것은 분명 기술의 발전 때문이다'


나를 더 이상 눕자마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변종으로 만든 세상이 원망스럽다. 빛이 수면에 해롭다는 상식을 알게 된 지도 꽤 오래되었건만 소용이 없다. 3분도 안 되는 영상들이 꼬리에 꼬리에 물며 한참을 나를 뒤척이게 만들었다. 보통이라면 한참을 더 유해한 반짝임과 씨름해야 할 것이지만, 내일이라는 녀석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만성피로의 주범을 움켜쥐고 애써 눈을 감아본다. 


아무도 빛의 시간을 알려주는 이가 없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손을 모아 기다리던 그날의 아침이 문득 생각났다. 분명 그때 나는 거침없이 뛰던 심장과 또르르 내리던 눈물을 가진 남자였다. 지금 나의 심장은 수십 년간 열심히 일한 탓인지 더 이상 오버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하기 위해 묵묵히 일할 뿐이다. 심장이 출력을 낮춘 탓인지 눈물공장도 정상 가동한 지 오래되어버렸다.


Ai  생성이미지 - Google imagen3 -


'부스럭부스럭'  


잠시 눈을 떠서 구겨진 인쇄물을 꺼냈다. 남은 연차를 때우기 위한 선택도 고민 없이 클릭 몇 번만 하면 해결되는 세상이다. 패키지라는 아름답고 편리한 것을 이제야 경험하는 내가 시대에 뒤처진 것인지 앞서 가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더 늦기 전에 날짜와 시간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일정과 준비물 등을 확인해 본다. 몇몇 빼먹은 것들이 보이지만 역시 내일이랑 하면 될 일이다. 


마음이 편해졌는지 눈이 스르르 감긴다. 딸깍 몇 번으로 고생을 줄인 만큼, 이번에는 심장이 열심히 일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숨소리를 낮추고 그날의 바다로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내일이가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버려두는 것이 쉼의 시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