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이 선명할 정도의 날씨지만 땀은 비 오는 듯이 쏟아진다. 온몸의 여기저기서는 비명을 토해낸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을 내보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겨우 붙들고 있을 뿐이다. 이 와중에 쓸모없이 예민한 귀가 멀리서 속삭이는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왜 저 형은 자꾸 무리를 하는 거야!"
무리를 해서 문제가 아니라 무리를 해서 겨우 이 정도라도 해내고 있는 상황임을 설명해야 했을지 모른다. 나의 부족함을 덮기 위해 다른 팀플레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여차하면 꼰대스럽게 나이를 무기로 삼을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쉽게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쉬는 시간에 몇몇 팀원들이 다가와 이런저런 말들을 건네었지만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나는 화가 난적이 없었다. 지적이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었고, 무엇보다 팀원들의 마음이 너무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늦은 시간 내일의 부담을 감수하고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뜨거운 열정이 없을 리 없었다. 팀적으로 더 잘하고 싶고, 이기고 싶은 마음에 내는 화는 당연했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별 동요가 없는 나일지 모른다.
마흔이 넘는 나이에 다시 농구를 시작하면서 먼저 이전처럼 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투쟁심도 함께 내려놓았다.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니까. 적당하게 신체적 한계를 인정하고, 모나지 않게 플레이하면서 적절하게 1인분 정도 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최대 목표치가 낮으니 결과는 그보다 못한 것이 당연했지만 격한 운동을 취미로 삼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쉽게 설득했다.
생각해 보니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화를 잘 내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경험이 늘어난 만큼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나잇값을 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당히 만족하는 일들이 습관이 되면서 스스로에 대한 화까지 멈춰버렸다. 적절한 선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니 스스로에게 실망할 일도 없어진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일이나 취미를 시작하더라도 더 이상 온몸으로 부딪히는 경우가 없다. 나이가 가져온 줄타기 실력이 선을 넘는 일을 만들지 않는다. 스트레스 없는 삶을 대가로 열정을 재물로 바쳐버린 것이 마냥 좋은 일일까? 엑설런트(Excellent)가 아닌 낫 베드(Not Bad)가 목표인 삶의 결과는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다. 더 이상 스스로 화를 내지 않는 나에게 되물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