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리오 (1)

by operabluff

피델리오 Fidelio

베토벤 Ludwig von Beethoven (1770 ~ 1827)


원작 : 1798년 피에르 가보의 연극 <레오노레 또는 부부애>을 위해 쓴 장 니콜라 부이의 대본

대본 : 요제프 존라이트너

초연 : 1805년 빈 안 데어 빈 극장, 1814년 최종판 빈 케른트너토르 극장

때와 장소 : 18세기 스페인 세비야 근처 감옥


앞서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의 흐름에 대해 얘기하면서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의 대표작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알프스 북쪽 독일의 전통적인 희극오페라를 징슈필(Singspiel)이라고 합니다. Sing(노래) + Spiel(연극) 즉, 말하는 대사와 노래로 이루어진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며 민요풍의 노래가 들어있기도 합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함께 독일오페라 징슈필의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후 베버의 <마탄의 사수>로 그 흐름이 이어지고 바그너 악극에까지 영향력이 미치게 됩니다.


원작의 배경은 프랑스혁명 시기입니다. 장 니콜라 부이라는 프랑스 희극작가가 쓴 희곡이 원작입니다. 이 원작을 오페라로 각색하면서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 최남단의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옮겼습니다. 당시 엄격했던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대륙의 남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왕을 암살하는 내용이거나 체제를 비판하며 자유를 추구하는 내용의 예술 작품일 경우 검열을 통과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내용은 그대로 하되 이국적인 문화를 가진 곳으로 장소를 바꿔 버린 것입니다.


우선 오페라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진행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아 두시고 작품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플로레스탄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아주 강직하고 영웅적인 인품을 가진 주인공입니다. 불의를 못 참는 성격입니다. 그 반대쪽에 있는 인물이 돈 피차로라는 사람인데 교도소장입니다. 부정부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로레스탄이 피차로의 비리에 대해 고발을 하게 된 것이죠. 피차로는 고발을 당했지만 재판에서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벌을 받지 않고 기사회생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교도소장으로 복귀한 뒤에 앙심을 품고 플로레스탄을 납치하여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교도소의 지하감옥에 가둬버립니다. 플로레스탄은 2년 동안이나 영문도 모르고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플로레스탄에게는 아름답고 현명한 아내가 있었는데 레오노레라는 여인입니다. 주변에선 2년 전에 사라진 남편은 이미 죽었을 거라고 하지만 레오노레는 그럴 리가 없다며 백방으로 수소문을 한 결과 정치적으로 반대파였던 돈 피차로가 감옥에 감금해 놓았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그런데 교도소는 남편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고민 끝에 남장을 하고 감옥에 간수로 위장취업을 하게 됩니다. 남자로 변장하고 들어갔으니 여자이름인 레오노레에서 피델리오라는 남자 이름으로 들어갑니다. 피델리오(Fidelio)라는 이름에서 인물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믿음직한, 성실하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 오페라 시작 전에 전개된 사건을 요약하였고 이제 오페라로 들어가 봅시다.


막이 올라가기 전 서곡이 시작됩니다. 이 오페라는 서곡이 중요합니다. 베토벤은 네 곡의 서곡을 작곡하였는데요, 첫 번째로 1805년 초연 때 사용된 서곡입니다. 2막 초반에 나오는 플로레스탄의 아리아를 중심 선율로 삼고 점차 결말까지 흐르는 사건 전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초연 때 오페라 제목은 <레오노레>였고 따라서 초연무대의 서곡은 레오노레 서곡 제2번 (Ouvertüre Leonore II op.72a)라고 불립니다. 여기서 초연인데 왜 2번이라고 부르는지 이상하죠? 이유가 있습니다. 이어서 1806년 두 번째 개정판을 출판하면서 새로운 서곡을 작곡합니다. 소나타 형식에 재현부를 확대하여 서곡으로 쓰기에는 상당히 대형 작품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서곡은 현재 레오노레 서곡 제3번 (Ouvertüre Leonore III op.72b)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3번 서곡을 들어 보시면 다른 서곡에 비해 역동적이고 극적입니다. 따라서 2막 후반부 2 중창과 피날레 사이에 <레오노레 3번 서곡>을 집어넣어서 연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의 실패를 맛본 베토벤은 1807년 오페라의 서곡으로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서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서곡은 한 번도 연주가 되지 못했죠. 이 서곡의 존재는 베토벤 사후에 그의 유작들을 정리하면서 발견되었는데 출판업자들이 이 작품을 출판하면서 레오노레 서곡 제1번(Ouvertüre Leonore I op.138)이라고 붙여서 사후 출판되었습니다. 출판사들이 번호를 붙일 때 잘 모르니 이 곡에 1번을 붙여버린 것이죠.


1807년 프라하 공연이 취소가 되고 베토벤은 7년 뒤인 1814년에 무대에 다시 올리게 되는데요, 서곡은 물론 아예 작품 전체를 수정하고 오페라의 제목까지 <피델리오>로 바꾸어 버립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오페라 극장 무대에서 감상하는 작품입니다. 이 서곡은 당연히 피델리오 서곡(Ouvertüre Fidelio op.72)라고 부릅니다. 서곡에 대한 설명이 좀 길었는데, 1번을 제외하고 나머지 서곡들은 콘서트 무대에서 따로 독립적으로 연주될 정도로 음악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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