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제 1 막 : 이른 아침, 알마비바 백작 저택의 조그만 방
장면 #1
세비야의 이발사와 마찬가지로 피가로의 결혼도 하루 동안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동이 틀 무렵 오늘 저녁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주인공 피가로와 수잔나가 등장합니다. 백작이 신혼방으로 내어준 방에서 피가로는 새로 놓을 가구의 치수를 재는 중입니다. 피가로는 사랑하는 수잔나와 결혼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습니다. 수잔나는 이 방을 백작님이 주셨다는 피가로의 얘기를 듣자마자 기분이 나빠집니다. 피가로는 단순하게 백작부인님이 당신을 부를 때 언제든 빨리 갈 수 있고 백작님이 자신을 부를 때도 단숨에 갈 수 있다며 좋아합니다. 그러나 수잔나는 백작이 나에게 흑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옆방을 준거라고 얘기해 줍니다.
로지나의 대사 중 Che il dritto feudale… ‘(중세) 영주의 권리’를 통해 나를 몰래 만나려고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소위 초야권(Droit du seigneur)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중세 영주들이 자신의 영지에서 결혼하는 커플이 나올 때 신랑보다 신부를 먼저 취하는 특권을 말합니다. 실제로 행해진 기록은 없고 중세 문학 작품 속의 소재정도로 쓰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피가로가 그 권리는 진작에 없어진 것이 아니냐고 되묻자 수잔나는 이번 우리 결혼에서 백작이 그걸 부활시키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대답합니다.
장면 #2
백작부인의 호출에 수잔나는 퇴장합니다. 피가로는 그녀의 말을 듣고 화를 주체 못 하고 자신이 꾀를 내어 백작의 꼼수를 물리칠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백작의 꼼수는 곧 런던으로 갈 일이 있는데 피가로와 수잔나를 함께 데리고 가서 피가로에게 힘든 일을 다 시키고 수잔나를 자신의 애인으로 삼으려는 속셈을 말합니다. 피가로는 열받아서 모든 음모를 다 까발리겠다고 합니다.
[Editor’s comment]
저택의 주인인 백작에 대항해서 하인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1786년에 초연이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6세 통치하에 왕의 위엄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새로운 시민계급과 귀족과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었을 때입니다. 계몽주의가 대두되면서 자유, 평등, 인권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정의되고 출판, 문화가 엄청난 발전을 이루면서 대중의 생각이 빠르게 공유가 가능해지고 있었죠. 극작가들의 활발한 작품활동이 이어지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비판적인 작품들이 마구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시대적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잘 담아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면 #3
두 명의 주인공이 나가고 또 다른 등장인물 중 바르톨로와 마르첼리나가 등장합니다. 세비야의 이발사에서도 등장한 의사 바르톨로와 현재 하녀 장(長)인 마르첼리나가 서류를 한 장 들고 나옵니다. 두 사람은 공통 목표를 갖고 있는데 모두 피가로와 수잔나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바르톨로는 과거에 로지나(백작부인)를 피가로 때문에 (알마비바) 백작에게 빼앗긴 기억이 있죠. 이 집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마르첼리나는 한참 연하인 피가로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피가로가 나에게 돈을 빌려갔는데 “돈을 갚지 못하면 마르첼리나와 결혼한다”라고 적혀 있는 계약서를 보여줍니다.
바르톨로는 이 계약서가 피가로의 결혼을 막는 중요한 구실이 될 것이다고 자신하면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속으로 로지나를 피가로 때문에 놓친 것이 분하기도 하고 수잔나 대신 자신의 집의 오래된 하인이었던 마르첼리나와 결혼하도록 복수하겠다고 하죠. (마르첼리나는 예전엔 바르톨로의 하녀였지만 현재는 백작집에 들와서 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소부포의 아리아는 언제 들어도 재밌습니다.
[바르톨로, La vendetta!]
“법조문을 모두 살펴보고 애매하고 비슷한 말이 있더라도 묘안이 떠오를 거야”라는 바르톨로의 말은 당시와 지금 시대는 흘렀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거의 같은 걸 알 수 있습니다.
장면 #4
장면 #1에서 결혼 주인공인 피가로와 수잔나, 장면 #3에서는 결혼을 반대하는 바르톨로와 마르첼리나가 나왔다면 이번 장면은 피가로와 결혼하고 싶은 라이벌? 여자 두 명이 등장합니다. 바르톨로가 퇴장하고 마르첼리나 혼자 있는데 수잔나가 멀리서 다가옵니다. 여자 두 명의 뼈 있는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서로를 똑똑한 아가씨, 매서운 부인이라고 빈정거리면서 서로 주고받는 설전입니다. 여자들 간의 기싸움의 마무리는 결국 수잔나가 마르첼리나에게 나이로 한방 먹이면서 끝나게 됩니다. 여자들 사이에 나이 공격은 참을 수가 없는 결정타인가요? 마르첼리나가 어이없다는 듯 퇴장합니다.
장면 #5
수잔나의 방에 새로운 등장인물인 케루비노가 들어옵니다. 케루비노는 백작 부부, 피가로, 수잔나 커플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입니다. 캐릭터만 보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유럽의 귀족들은 자식이 사춘기정도 나이가 되면 다른 집으로 가서 생활하면서 경험을 쌓고 배우도록 합니다. 백작의 집에 들어온 케루비노는 백작의 여성편력만 배웠는지 백작부인을 사모하면서 저택에 있는 로지나, 바르바리나등 여자 하인들에 대한 연정을 자제하지 못합니다. 사춘기 소년 케루비노는 어제 바르바리 나의 방에 갔다가 백작에게 들켰다고 하면서 만약 백작부인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 집에서 쫓겨날 것 같다고 투덜댑니다. 그리고 수잔나에게 너는 백작부인을 항상 옆에서 볼 수 있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합니다. 마침 수잔나가 부인의 리본을 하나 갖고 있는 걸 보고 케루비노가 달라고 합니다. 막무가내로 빼앗아 가면서 부르는 케루비노의 아리아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주체하기 힘든 사춘기 소년의 얘기를 들어 보시죠. 백작부인, 바르바리나, 마르첼리나, 수잔나 등 집안의 모든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옆에서 어이없다는 수잔나의 표정이 재밌습니다.
[케루비노, Non so piu cosa son]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불덩이 같다가 얼음장이 된 것 같은… 여자만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해. 사랑이란 말만 들으면 흥분되고 설명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벅차올라… 내 욕망을 설명하기 어려워… 만약 내 말을 들어줄 이가 없다면 나 홀로 사랑을 속삭일 뿐 ”
[Editor’s comment]
케루비노의 극 안에서의 역할은 남자이나 실제 무대에서 배역은 여자 소프라노가 담당합니다. 이것을 [바지 역할]이라고 하는데 오페라에서 "바지 역할"은 여성 가수가 남성 역할을 맡아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용어는 주로 메조소프라노 또는 소프라노가 연기하는 젊은 남성 캐릭터를 지칭하며, 원래는 이탈리아어로 "travesti" 또는 "en travesti"라고 합니다. 여성이 남성 역할을 연기할 때 남성 복장을 입는다는 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젊고 미소년 같은 남성 캐릭터로 중성적인 목소리와 외모를 표현하기 위해 여성 성악가가 맡습니다. 젊은 남성 역할을 여성이 부르고 연기함으로써 생동감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겠죠. 오페라 안에서 다양한 성격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감초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케루비노가 가장 유명하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 등장하는 젊은 귀족인 옥타비안도 바지역할 배역입니다.
장면 #6
수잔나의 방에 갑자기 백작이 들어옵니다. 안에 있던 케루비노는 황급히 침대 밑으로 들어가 숨을 수밖에 없습니다. 왕이 자신을 런던 외교사절로 임명할 예정이고 피가로도 같이 데리고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아느냐면서 수작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아예 오늘 밤 해가 질 무렵에 정원으로 나와서 만나자고 합니다.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입니다. 결혼식을 올리는 날 밤에 몰래 만나자는 이 말에서 오페라의 핵심 갈등이 시작됩니다.
수잔나가 좋다, 싫다 대답도 하기 전에 갑자기 문 밖에서 백작의 음악 교사인 돈 바질리오가 수잔나의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황급히 백작은 숨게 됩니다. 현재 수잔나의 방에는 케루비노, 백작이 같이 숨어있는 상황입니다. 바질리오가 슬쩍 들어와서는 피가로가 백작님을 찾는다고 능청스럽게 물어봅니다. 바질리오는 뜬금없이 백작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면서 애송이 시동 케루비노 보다는 다른 여자들처럼 너그럽고 현명한 신사를 애인으로 삼는 게 나을 거 같다고 말합니다. 바질리오는 눈치 백 단에 이간질하고 다니는 것이 일상입니다.
이어서 케루비노가 수잔나의 방에 들락날락 거리는 걸 몇 번 봤다면서 수잔나에게 케루비노가 백작부인과 당신 사이에 누굴 좋아하느냐고 빈정대는 투로 물어봅니다. 매일 식사자리에서 케루비노가 백작부인을 몰래 훔쳐보는 걸 보는데 백작님이 그 사실을 알면 큰일 날 거라고 외칩니다. 바질리오는 음흉한 구석이 있습니다. 주변에 이런 성향을 가진 인물들이 생각 나시죠?
백작이 침대 뒤에 숨어있다가 바질리오의 얘기를 전부 듣고 못 참겠다며 튀어나옵니다. 당연히 자기 부인을 넘보는 못된 케루비노를 당장 쫓아내라고 명령합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 정신이 혼미해진 수잔나는 비틀거립니다. 백작은 이미 어제 케루비노가 바르바리 나의 방에 같이 있는 걸 자신에게 걸렸다면서 의자 뒤에 숨어있던 케루비노를 발견합니다. (바르바리나는 잠시 후 등장하는 이 집의 정원사 안토니오의 딸이고 수잔나와는 사촌지간입니다.) 케루비노가 수잔나 방에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한 백작은 화들짝 놀랍니다.
백작 : (놀라면서) Ah! Cosa veggio! 앗! 내가 뭘 본거지?
수잔나 : (두려움에 질려) Ah! crude stelle! 아! 이제 끝장났네!
바질리오 : (웃으면서) Ah! meglio ancora! 아! 잘 걸렸다! 아주 잘됐네!
수잔나의 방에 케루비노, 백작, 바질리오 세 명이 모두 등장하게 되고 남자 3명이 부르는 재미있는 3 중창 [무슨 말을 듣게 되나, cosa sento]가 이어집니다. 참고로 이 대목에서 바질리오의 대사를 잘 들어 보시면 모차르트의 다음 작품인 <코지판투테, 여자는 다 그래, cosi fan tutte >라는 대사가 나오는 점도 재밌는 장면입니다. 현재 백작도 민망한 것이 방에 들어와서 수잔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오늘 밤 몰래 만나자고 한 것을 미리 들어와 숨어 있던 케루비노가 다 들어버렸거든요.
[Editor’s comment]
피가로의 결혼은 등장인물이 10명이 넘는 복잡한 작품입니다. 여기까지 인물관계를 살펴보자면
1. 피가로와 수잔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2. 둘의 결혼을 반대하는 집단은 바르톨로와 마르첼리나이고
3. 백작이 수잔나에게 결혼식 후 밤에 만나자고 추근대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켰다는 점을 잘 알아 두시고 다음으로 넘어가시죠.
피가로의 결혼은 결혼파와 반대파들이 서로를 골탕 먹이기 위해 전략을 짜고 반전이 일어나고 어떻게 화해하는지 잘 보셔야 합니다.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어서 한 번에 끝까지 보기 힘든 어려운 작품입니다.
이때 피가로가 마을사람들 여러 명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백작이 딴 소리 못하도록 하기 위해 동네 주민들을 모아서 자신과 수잔나의 결혼식을 축하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백작님의 넓은 마음으로 아름답고 귀한 한 쌍의 커플을 축복해 주세요라고 선수를 칩니다. 여기에도 한번 더 폐지된 영주의 특권(초야권)이라는 말이 나오고 백작은 이미 폐지된 권리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내 영지에서는 이미 폐지된 지 오래되었고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보내는 것은 당연하지”
빨리 결혼식을 올리려는 피가로의 생각을 백작도 눈치를 채지만 점잖게 둘의 결혼을 허락해 줍니다. 하지만 지금 면사포를 씌워줄 수는 없고 저녁에 모든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합니다. 둘의 결혼이 내키지 않고 (마르첼리나의 차용증과 관련하여) 상황 반전을 노리는 백작의 꿍꿍이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장면 # 7
마을사람들이 모두 퇴장하고 케루비노가 백작에게 용서해 달라고 사정합니다. 케루비노는 당신이 로지나에게 추태 부린 걸 부인에게 고자질하면 서로 피곤하게 되는 거라면서 맞불을 놓자 약점을 잡힌 백작이 한번 봐주겠다면서 대신에 군대로 당장 떠나라고 합니다. 평소에 케루비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로지나에게도 가끔 추파를 던지는 걸 알거든요) 피가로는 행진곡풍의 아리아를 신나게 부르면서 놀립니다.
[피가로, Non piu andrai]
사랑스러운 나비야, 다시는 밤낮으로 주위를 맴돌며 날지 못하리라
여자들을 설레게 하는 작은 나르시스, 사랑의 아도니스여
이젠 더 이상 멋진 모자, 예쁜 머리도 못하겠지.
그 머릿결, 눈부신 모습도 아리따운 얼굴빛도 없을 거야!
이제 군인들과 함께 배낭 메고, 총을 들고 칼을 차고 콧날 세우고
띠를 차고 군모를 쓰고 영광은 넘치지만 실속은 없지
무도회의 춤 대신 진흙탕 속으로 행진한다.
산을 넘고 계곡을 지나 대포, 폭탄 소리에 맞추어
천둥 같은 소리로 총알이 스쳐가네.
케루비노, 군인으로서 영광과 승리가 함께 하길!
1막은 각 진영의 대표들이 나와서 자신들의 입장을 명쾌하게 전달하면서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