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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Dec 17. 2022

단군 신화의 여백 채우기

우리 건국 신화의 세계 첫 번째(上)


신화의 세계로


  자, 지금부터 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헌데 선뜻 다음 말이 이어지기가 어렵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사 교과서의 첫 페이지는 대개 원숭이처럼 생겼지만 원숭이는 아닌 그런 존재로 시작한다. 인하기 어렵지만 선뜻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인류의 존재에 신비를 더하고 싶은 이들은 그런 접근을 극단적으로 싫어하기도 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어라 설명하는가?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나았다. 어머니게는 어머니가 있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게도 어머니가 다. 지당한 말이다. 그렇게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까?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좋은 출발이다. 신성하고 함축적이고 세련되고 철학적이다. 하늘 위에 땅 아래를 탐내는 상제의 아들이 있었다. 은 곳에 있는 이들은 대개 아래를 굽어 내려다보길 좋아하는 편이다. 우월감을 확장하기 더없이 좋은 행위니까. 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현명한 신들분업을 할 줄 알았다. 모두가 열심이었는데, 마지막 공정을 맡은 신은 안타깝게도 쉽게 질리는 타입이었다. 그는 대충 진흙 속에 새끼줄을 휘져었고, 떨어져 나온 것으로 인간을 만들었다. 그래서 인간 사는 꼴이 이 모양인 걸까? 바람둥이 주신(主神)번식에 미쳐 돌아다니고, 버려진 쌍둥이는 늑대 젖을 먹고 살아남았다. 알 수 없는 시작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수많은 이야기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신화'라고 부른다. 자, 지금부터 역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을 신화로 여는 것은 꽤나 훌륭한 선택이다. 신비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비단 재미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은 단군신화


  단군신화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신화다. 구조는 단순하다. 하늘에서 상제의 아들이 내려와 나라를 차렸고, 곰은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상제의 아들 사람이 된 곰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니 이가 단군왕검이다. 여기에 디테일이 들어간다. 곰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동굴에서 버텨내었다. 참을성이 없는 호랑이는 그만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호랑이를 사랑하는 민족이 스스로를 곰의 후손으로 삼고 호랑이를 들러리 세운 부분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아무래도 좋다. 단군신화를 처음 기록한 책은 일연의 『삼국유사다. 기록의 이유에 관해서는 흔히 일연이 살았던 13세기 고려의 상황을 떠올린다. 사실상 몽골의 지배 아래에서, 저들과는 다른 우리 민족의 기원을 강조한 의도는 자주성의 발로라는 것이다. 불자(佛者)인 저자의 특성상 '괴력 난신(怪力亂神)'에 해당하는 설화와 전설을 상세히 실어 놓은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 정도면 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설명은 거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이것뿐일까? 이 신화의 문제는 지나친 유명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각색된 이야기로 들어온 탓에 놓치는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원문은 어떨까. 우리의 '상식'과 얼마만큼 차이가 날까?『삼국유사』 의 서술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단군 신화의 여백을 채워가 보자.



서자 논란


  <고기>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환인(제석을 이른다)의 서자(庶子) 환웅이 있었는데, 천하를 차지할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내고 있었다.

  신화의 시작에 해당하는 문장이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다시 한번 읽어보자. 하늘신(天神)을 불교식 번역 표현인 제석 환인(帝釋桓因)이라 표기한 것은 둘째 치고, 이야기의 주인공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어 보자. 단군의 아버지 환웅의 수식어, 바로 "환인의 서자"다.


  서자란 정실부인 소생이 아닌 아들, 첩 소생의 아들을 말한다. 보통 첩이 양인인 경우 서자(또는 서녀), 첩이 천민인 경우 얼자(또는 얼녀)라고 불렀다. 서얼은 이 둘을 통틀어 일컫는 표현이다. 일연은 우리 민족의 출발점에 관해 언급하며 굳이 그 존재가 첩의 아들이라 명시해 놓은 것이다. 십여 년 뒤 쓰인 이승휴의 제왕운기』에서도 '서자'라는 출신은 동일하게 규정된다. 이견의 여지없이 환웅은 서자인 것이다.

  국난(國難)의 시기 민족의 자주성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단군 신화를 실었다면서 시작부터 정통성을 팍 깎아먹는 서술은 다소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다.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는 다른 해석을 아울러 제시하자면, '서자'는 첫째 아들이 아닌 다른 모든 아들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정실 소생이냐 첩의 소생이냐의 구분과 상관없는 용법이다. 이 경우 환웅은 하느님의 '여러 아들 중 하나' 정도로 해석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늘 왕국을 이어받을 장남과 달리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면 환웅이 인간 세상을 탐내는 이유 또한 지극히 상식적이다.

  서자를 첩실 소생으로 해석해도 자연스러운 설정이 된다. 첩의 아들이든 아니든 간에 환웅은 서유럽 중세를 배경으로 한 동화 속 백마 탄 차남 왕자들과 같은 처지였던 셈이다. 아버지의 왕국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없다면, 그럼에도 왕 노릇을 하고 싶다면 상속 가능한 다른 영지를 찾아 기웃대어야만 한다. 그렇게 발견한 곳이 바로...



태백산은 어디인가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산)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인간의 세계를 다스리게 했다. 환웅이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민족의 거주지는 환웅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하늘님이 찾아준 곳이다.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천할 수 있을 만한 장소로 특별히 골랐다. 오늘날 우리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지는 각자 돌아볼 일이고... 부정(父情)이 가득한 아버지는 부동산만 봐준 것이 아니라 하늘의 징표(天符印)도 세 개나 건네주는 끔찍한 자식 사랑을 보인다.

  기록에는 천부인이 무엇인지에 관한 부가 설명이 전무하지만, 이것이 환웅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였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하늘로부터' 왔다는 그의 출신 성분을 보여주는 기물로써 세상 사람들의 두려움과 존경을 유발하는 권위의 상징이 바로 천부인이었다.


  소위 '템빨'까지 확실히 챙긴 환웅은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라는 나무 아래로 내려온다. 또 다른 궁금증이 인다. '태백산'은 대체 어디일까? 얼마나 좋은 명당이기에 하늘님이 콕 집어 주었을까? 일연은 나름의 연구 끝에 태백산이 지금의 묘향산이라 명시했다. 첫 번째 후보지다. 강원도 태백시에 가면 한자까지 이름이 동일한 태백산이 존재한다. 해발 1,566.7m의 이 산의 정상 부근에 제단을 짓고 지금도 단군에게 제사를 지낸다 한다. 두 번째 후보지다. 백두산이라는 설도 있다. '민족의 영산'이자 백두대간의 시작점,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면 충분히 환웅이 내려오고도 남을 조건이다. 세 번째 후보지다. 평양 근처의 대박산(大朴山)이라는 설도 있다. 이 산을 태백산이라고 불렀던 기록도 존재한다. 네 번째 후보지다. 후보지가 점점 많아진다. 백두산이면 어떻고 한라산이면 어떻고 또 설악산이면 어떠랴. 어차피 신화의 기록이고, 남아 있는 자료로 위치를 특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태백산이 '지금의 어디'인지가 아니라 '왜 그곳이어야 하는지'다.


  클 태(太) 자에 흰 백(白) 자를 써서 태백산이다. 太는 말 그대로 크기를 말한다. 白이라는 글자에 산의 이미지를 더해 보면 산꼭대기의 하얀 머리, 만년설이 떠오른다. 한반도에 무슨 만년설이 있느냐고? 白에 사람 인 (亻)을 붙이면 '맏이'를 뜻하는 글자(伯)가 된다. 글자 모양 자체가 엄지손톱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태백산이란 글자 그대로 크고 으뜸가는 산뜻이 된다. 그 당시 사람들의 기준에 제일 높은 산일 것이다. 그들이 갈 수 있는 영역에서 가장 높은 산이면 어느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물며 동네 뒷동산도 태백산이 될 수 있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에 큰 나무가 있다면 그곳은 하늘과 맞닿는 공간이 된다.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로 내려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곰과 호랑이의 인내심 싸움?


 이때에 곰 한 마리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에게 빌어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이때 환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개를 주며 말하기를, "너희가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먹고 삼칠일 동안 조심하였더니,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호랑이는 조심하지 못하여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단군신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람이 된 곰의 이야기.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아는 버전과 다른 대목이 몇 존재한다. 첫 번째, 곰과 범은 이미 동거인 사이였다. 이전부터 함께 굴 속에서 살고 있었다. 두 번째,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물들에게 환웅은 백일이라는 기간을 말한다. 지급한 쑥과 마늘이 백일을 먹기엔 턱없이 적은 분량인 것을 뒤로하고 계속 읽어 가면, 곰이 사람이 되기까지 소요된 기간은 백일이 아니다. 삼칠일(3X7), 즉 21일이라 되어 있다. 환웅이 사기를 친 것인지, 환웅의 예측이 틀렸는지, 혹은 21일이면 충분할 것을 미리 알고서 쑥과 마늘을 저만큼밖에 주지 않은 것인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세 번째, 호랑이는 참을성이 없지도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지도 않았다. 원래부터 굴에 살던 호랑이였으니 굳이 동굴 밖으로 달아날 이유가 없다. 그저 조심하지 않았을 뿐이다.


출처: 위키백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화에 등장하는 몇 가지 유사한 패턴이 있다. 비단 신화뿐은 아니다. 이야기 구조라면 으레 나타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시련이 필요하다. 탄생의 전 단계에서는 어미 뱃속에서의 웅크림이 필요하다. 알 속에서의 침잠을 견뎌낼 때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법이다. 곰은 굴에서의 고난을 능히 견뎠고 이로써 원하는 바를 얻었다. 햇빛을 보지 못하는 동굴의 공간은 곧 알이다. 자궁이다. 시련의 공간이면서, 새 삶의 시작을 위한 준비의 공간이다. 모든 영웅들은 주인공들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준비의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삼칠일이라는 숫자 또한 재미있다. 3주의 시간은 병아리의 부화 기간과 같다. 알을 깨고 나오기까지의 시간이다. 오리의 부화 기간은 사칠일(28일), 사람의 잉태 기간은 사십 주, 280일이라고 한다. 21일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 무엇이든 3주 동안을 꾸준히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아도 3주는 대단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무려 곰이 사람이 될 수 있는 기간이니 말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숫자는 하나같이 의미심장하다.


  곰과 호랑이의 경쟁에 대해 널리 알려진 해석은 바로 토테미즘으로 이해하는 방법이다. 곰을 숭배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 경쟁하다가 호랑이 부족이 탈락했다. 승리한 곰 부족은 천손 사상을 가진 북방 이주민과 결합하여 더 발전된 단계의 국가를 세우게 된다. 그럴듯한 해석이다. 다만 고려할 점이 있다. 『제왕운기』 버전의 단군신화는 삼국유사의 것과 비슷하게 전개되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제왕운기』의 단군신화에는 곰이나 웅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단군의 어머니를 환웅의 손녀라 기록한다. 족보가 꼬이는 막장드라마가 아니니 오해 마시길. 하늘로부터 이어진 단군의 혈통을 부계가 아닌 모계로 이어지도록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 단군신화의 여백 채우기는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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