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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Oct 29. 2020

역사란 무엇인가?②

개똥철학 : 삶과 이야기의 집합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역사는 과거(의 사실)와 현재(과거의 사실을 기록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우리)의 끊임없는(지속적인) 대화(상호작용)이다. 깔끔하고, 아름답다. 아름다운 정의다.


  완벽한 정의를 찾았기에 여기에서 마무리 짓는다면 속 편할 텐데 그럴 작정이었다면 애초에 이 글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과거의 사실도 현재의 우리도 모두 중요하다는 견해는 물론 타당하다. 하지만 저 명제의 맹점은, 저것이 비유라는 데 있다. 딴지는 여기서 시작한다.


  에드워드 카는 대화라는 비유로 둘 사이의 연관을 설명했다. 대화, 둘 이상의 실체 사이의 상호적인 언어 소통,  너도 한 마디, 나도 한 마디 나누며 오고 가는 그것이 대화다. 가만 생각해보자. 과거의 사실과 오늘날 우리 사이에는 어떠한 종류의 대화가 오고 갈 수 있을까?


  대화라는 게 사실 참 어렵다. 오늘 했던 대화들을 살펴볼까. 내면 깊숙이 눌러 놓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대의 기분도 고려해야 하고, 말을 하는 자기 자신의 체면도 살펴야 한다. 감정이 얼굴 밖으로 드러나면 미성숙한 사람, 표현을 감추고 꽁꽁 숨기면 음흉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과거의 사실과 한 번 대화를 해 보자. 적어도 눈치 볼 일은 없어서 좋겠구나.


못난이 비만 왕 세종 어진. 다른 세종 어진과 마찬가지로 후대의 복원도 중 하나이다.

  그런데 하다 보니 그게 아니다. 과거라는 이 친구는 꿀 먹은 벙어리다. 편식쟁이, 운동 부족의 비만아, 성인병 환자에 과로를 일삼아 건강을 망친 군주조선조 세종에 대해 기록을 남겨 보려 한다. 세종 원년의 기록.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종이 아들 임금에게 잔소리를 한다. "아들이 사냥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는데, 뚱뚱해서 운동을 좀 해야 하므로 사냥을 시켜야겠다.(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으시나, 몸이 비중(肥重)하시니 마땅히 때때로 나와 노니셔서 몸을 존절히 하셔야 하겠으며, [세종 즉위년 10월 9일])" 태종은 아들 걱정을 많이 한 군주였다. 세종 4년의 기록. 아버지의 상을 지키며 과로로 고생하는 임금에게 신하들이 청한다. "아버지(선왕)께서도 예전에 임금님이 고기 없이는 밥 안 드시는 거 알고 나중에 당신 돌아가신 다음에도 에프엠대로 규정 다 따르지 말고 고기 먹으라고 하셨잖아요.('주상은 고기가 아니면 진지를 들지 못하니, 내가 죽은 후 권도를 좇아 상제(喪制)를 마치라.'고 하셨으니, 이는 곧 전하께서 예법을 지키시고 지나치게 슬퍼하시므로, 앞으로 건강을 해하실까 미리 아시고 염려하셨사오니, [세종 4년 11월 1일])" 독서를 많이 하여 생겼다는 안질도 실은 당뇨 합병증 증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세종은 식욕만큼이나 성욕에도 충실한 임금이었다. 7명의 부인에게서 낳은 자식이 무려 18남 4녀. 자녀의 수가 조선 임금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같은 이야기 만으로 세종의 일대기를 정리한다면 어떨까. 거기다 세종에 대한 여러 기록과 다른 왕족들의 초상화를 참고하여 복원하였다는 저 어진을 덧붙이며 이야기를 끝맺는다면.


  이 후손 놈이 누구 덕에 편하게 글 쓰고 있는지도 모르느냐, 하고 관 뚜껑을 박차고 일어나 달려들어도 참 좋을 텐데,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잘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은 다 제쳐두고! 하고 과거는 말하지 않는다. 과거는 나서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고, 이루어진 적도 없다. 다만 침묵하는 과거 앞에 오늘날 우리의 독백만 허공을 가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에드워드 카의 정의는? 그것은 어쩌면 과거와 현재의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관계를 아름답게 포장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주관이 담겨 있지만 여전히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 역사 서술이라는 모순된 명제를, 마치 진실인 양 은폐하여 온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떠한가. 어쨌든 과거의 사실에는 닿기란 불가능하고, 오늘 우리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소음뿐이라 하더라도 막을 방도는 없는데.


  역사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그것을 거스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타임머신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잠시 설렘을 느낀 것은 미래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과거의 어느 시점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고스란히 다시 재현해 낼 수 있다면 하는 기대였는데 역시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엔트로피는 계속 늘어나고……하는 부분들은 문송한 관계로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는 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를 통해, 지나간 시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좋아하는 사진이 한 장 있다. 내게 역사의 이유가 되어 준 사진이다.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원래부터 유명한 사진이었고,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한 덕분에 더욱 유명해진 사진이다. 1904년 영국인 기자 하나가 러일 전쟁을 취재하러 한반도에 왔다. 작은 나라는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이제 이를 누가 차지할지가 곧 결정 날 판국이었다. 승자가 결정 난 이후 그는 이 나라를 다시 찾았다. 을사늑약이 맺어졌고 작은 나라는 보호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까지 획득한 다음의 일이었다. 제국주의의 화살은 이 나라의 형식적인 군대마저 흩어 버렸다. 해산된 군인들은 자신들만의 싸움을 계속했다. 정미의병, 후기의병 같은 이름으로 외우곤 했던 이들이다. 영국인 기자는 이들이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어려운 곳을 쏘다니며 취재를 하였고, 그 덕에 그들의 모습을 사진 한 장에 남길 수 있었다. 기자는 이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기록으로도 남겼다.

  


  “당신들이 여기에 있는 줄 알면 일본군이 틀림없이 이리로 올 텐데, 야간 공격에 대한 어떤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나요? 보초는 세워 놓았나요? 개울 쪽 도로는 방비하고 있습니까?”

   “보초는 필요 없습니다. 주위에 있는 한국인 전부가 우리를 위해 감시를 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의병군의 조직에 대해 여러 가지로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 것일까? 그 대장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로 미루어 보면 그들은 실제로 전혀 조직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각각 흩어져 있는 몇 개의 무리들이 아주 엉성하게 결합되어 있는 것에 불과했다. 각지의 부유한 사람들이 기금을 제공했다. 그것을 그가 산재해 있는 한두 사람의 의병에게 은밀히 건네주면 그들이 각각 자기 주위에서 자기편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들의 전도가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님을 인정하였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F. A. 맥켄지 저, 김창수 역, 『조선의 비극』, 을유문화사, 1984


  을사늑약과 함께, 그들은 나라가 망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무기를 들었다. 그러나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투를 앞둔 이들은 담담했다. 정신적인 무장, 패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눈 앞에 다가올 죽음을 순순히 맞이할 심산이었다. 그럼에도 그 이유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노예로 살기보다 자유민으로 죽겠다. 이들은 임금을 위해, 쇠약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애국심이라는 말로는 전부 담아낼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진의 왼쪽 앞줄에서 세 번째, 그러쥔 총을 앞세우고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는 아이가 있다. 잘해야 1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엄마 손에 억지로 깨워져, 절반쯤 감긴 눈을 해서 학교에 가고,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원 뺑뺑이를 돌았을 그럴 나이. 똑같이 이 땅을 살았던 소년에게 다른 것이 있다면 백 년 일찍 태어났다는 사실뿐이다. 전혀 다른 상황과 환경 속을 살아야만 했던 인생의 변수는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그는 그 스스로의 선택으로 펜 대신 총을 들었고, 외국인의 카메라 속의 자신의 족적을 남긴 후 머지않아 죽을 수밖에 없을 거라던 자신의 예측대로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역사다. 삶의 이야기, 당당할 수도, 비겁할 수도 있었던 무수한 인생들과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속에서 행하였던 선택의 집합체. 그래서 모든 역사는 숭고하다. 의미가 있다. 하나의 짤막한 문장으로 요약된 기록 속에는, 숱한 인생의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숨 쉬고 있다. 40만 명을 참수했다는 동양 역사서의 한 대목을 읽어 내는 데는 수초도 채 걸리지 않지만, 40만의 시신이 널려 있는 광경은 그 누구도 쉽게 상상해 내기 어렵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들, 그들이 누렸던 감정들,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큰 산이 되어 쌓이고 큰 내가 되어 흘러넘친다. 과거의 사람들은, 영웅들은, 민초들은 특출 나서, 유별나서 그 상황과 환경 앞에 맞닥뜨린 것은 아니다. 유한한 인간으로서, 오늘의 우리는 저들과 다른가?

  가끔 동래 부사 송상현을 생각해 본다. 눈 앞에 나타난 수많은 적군들을 바라보는 그는 두렵지 않았을까? 필경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이, 가족들의 안위가 염려되었으리라. 무엇보다 자신이 죽은 이후의 상황을 가늠할 수 없음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동래성을 포위한 왜장에게 그가 서신을 전한다. "싸우다 죽는 것은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假道難)" 우습게도 우리의 상황과 환경은 꼭 우리의 능력 범위 바깥에서 우리를 둘러싸곤 한다. 눈을 떠 보니 어느 순간 성 밖을 가득 매우고 있는 적의 군대를 바라보는 심경. 정도는 다를지언정, 벽에 부딪히고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매일을 좌절하는 것이 우리 삶의 연속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말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역사는 그 길을 보여준다. 역사는 우리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이면서도, 우리보다 먼저 삶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았던 그네들의 이야기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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