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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an 27. 2020

하루살이에 대한 문답

 가로등을 보았습니다.

 어둔 밤거리에, 총총 하얀빛을 뿜어내고 있는 가로등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것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혼자 서성이는 것에 지친 늦은 밤거리에 함께 해 

 친구가
 늘어서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새하얀 빛에 이끌린 나는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로등 아래 가만히 서 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무수히 많은 나의 동기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빛에 이끌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멀리서는 볼 수가 없었던 그들이었습니다. 마치 벌떼같기도 하고 커다란 회오리바람 같기도 한 그들이


 하루살이들이


 웅웅 거리며 사력을 다해 흰 빛을 쫓고 있었습니다. 마치 나는 또 한 마리의 하루살이가 된 것 같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 매력적인 새하얀 빛은 어떤 것이에, 그들은 한시도 그 앞에서 떠나질 못하고 서로 경쟁하며 다투며 그렇게 가로등 아래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일까요.
 나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보고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그와 함께 웅웅 거리고 있었습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으니 그것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의 이상

 가치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욕망
 몇 걸음 옮겨서 올려다본 또 다른 가로등에도 분명 수많은 하루살이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겠지요. 붕붕 소리를 내며 가상한 노력을 꽃피우며

 원하는 것

 이룩하고자 마음먹은 것 가지면

 행복할 수 있다고 간절히 믿는 것, 그

 꼭짓점을 향해 연신 날개를 부르르 떠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습니다.



    
 몇 걸음 더 벗어나 조금 더 높은 곳에

 다다

 나는 가로등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까맣게 그 빛을 감싸고서 푸드덕 시끄러운 날개 소리를 내던 그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로등의 하얀빛만이 멀겋게 새어 나올 뿐이었습니다. 나는 아침을 상상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다가올 아침을 생각했습니다. 그 시간은


 더는 필요하지 않은 가짜 빛들
 하나둘씩 스러져가는 그런 아침일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태양이 내려다본 세상에, 그 하얀빛들 역시


 하루살이가 아닌가


 조금이라도 하얀빛을 가까이하려고 필사적으로 날개를 휘젓던 하루살이들은 이미 죽고 없어져버릴 시간에, 나는 또다시 궁금해졌습니다. 간밤 그들의 노고는 누가 기억해줄까요. '우리는 단지 새하얀 빛을 바랐던 것뿐'이라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쬐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이라고, 누가 그들을 위하여 대변해 줄 수 있을까요. 허연 빛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생생한 빛의 조각들이 이 세상을 덮고 있는 그 시간에 말입니다. 아마도


 개벽의 그때에야  진리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


 하루살이들은 그들의 생을 다 바쳐 붕붕거리는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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