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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an 28. 2020

여름과 겨울의 기억

열흘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처음의 설렘은 너무도 먼 일이 되었고, 마지막의 냉담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적었다. 모처럼 솔직했고, 그렇게 잊혀졌다. "덮어둔다면 이내 퇴색하고 엎어질 것"이라고도 적었다. 먼지가 쌓이고 바람이 불 것을 걱정하였으나 놀랍게도 기억이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작고 까만 눈동자를 생각했다. 열흘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여름밤이었다. 우리는 누워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봤었다. 별빛이 쏟아져내렸다. 천문대가 유명한 산속의 밤은 어둡지 않았다. 굽어본 시내의 불빛은 화려했고 올려다본 하늘의 별빛이 찬란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별을 보며 밤을 새웠다. 은은한 별빛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것은 별빛을 기억하게 했다. 동이 터 오자 별은 사라졌다. 산속의 새벽은 몹시도 추웠다. 이제 더는 별빛과 같았으면, 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겨울이었다. 네게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스러지는 마른 나뭇잎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또 눈과 같은 것이었는데, 하얗고 아름답게 내리는 눈, 보다는 바닥에 쌓여 검게 퇴색된 것에 가까웠다. 나는 그것을 너의 매력이라 여겼고
   그런 까닭에, 네가 언제고 사라져 버린다 해도 그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눈을 밟으며 나는 생각했었다. 하얀 눈에는 검은 발자국이 오롯이 새겨졌고
   눈은 녹아 이내 검은 흔적으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사라져 버린 그 무엇처럼 겨울이 떠나가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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