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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Jan 28. 2020

당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당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내가 말하는 <당신>이 누가 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이 혹여 당신은 아닐까, 혹은 내가 알고 또 당신이 아는 <그> 아닐까 자유롭게 생각하겠지요. 어떠한 추측도 틀리지 않다고 틀릴 수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고, 또 동시에 내 말을 듣고 있을 당신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하게 밝혀 두는 바이지만, 무언가를 안다는 것이 불가능한 나는 오로지 당신을
 
  상상할 따름입니다. 나의 글을 읽는 당신의 표정을 상상할 따름입니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라고, 아니 이런 사람이지 않겠느냐고 나는 당신을 상상합니다. 당신을 상상하며 당신에게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나의 말은 당신에게 전해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의 의도는 어긋날 수 있습니다. 뒤틀어지고 튕겨나가 나동그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것도 <틀렸다>고 단정 지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감사하게도 그래서 나는 비로소 당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해와 오해 속에서, 상상과 몽상 가운데서, 현실과 그 비스무리한 것들의 집합 가운데서,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고개를 저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하며, 나의 마음 역시 알 수 없습니다. 극심한 부정(否定)과 부정(不定)이 이어지는 끝에는
 
   역시 당신이 있습니다. 이 대단한 역설(逆說)의 종착은 이제 당신으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나는,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당신에게 말합니다. 들어보세요, 당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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