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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겨울 Dec 29. 2020

「몰록 열대Moloch Tropical」

200년을 이어 온 아이티의 저주

[드라마 Moloch Tropical에 대한 전체적인 줄거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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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The Motorcycle Diaries)」에는 스물 세 살의 젊은 게바라(Guevara)가 수영하는 장면이 두 번 정도 등장한다. 사냥한 오리를 가져 오기 위해 호수에 뛰어드는 장면이 하나다. 천식을 앓던 게바라는 이 때문에 이후의 여정에서 며칠을 지독한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두 번째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등장한다. 스물네 번째 생일 파티, 술에 취한 게바라는 산파블로의 나환자촌에서 환자들과 마을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어두운 강에 뛰어든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칠흑 같은 강을 건너 나환자들에게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의 고통을 뒤로 하고,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젊은 게바라라는 설정에는 인위적인 휴머니즘의 냄새가 짙게 깔리기는 했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마지막 부분에 감동을 배가시킬 필요가 있었고, 앞으로 게바라가 선택하게 될 혁명가로서의 삶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전달할 필요 역시 존재했을 테니까.


  땅 위에 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있어 물이란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이질적인 대상이다. 인간의 신체 기관 중 수중(水中)에서 적응이 가능하도록 특화된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가미도 지느러미도 물갈퀴도 없는 인간에게,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도 빠르게 나아갈 수도 없는 인간에게, 수영이라는 스포츠는 그야말로 자신의 한계와 싸우는 극단적인 행위와 같다. 혁명가들이 수영을 즐겼던 데에는 아마 그러한 원인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체 게바라는 실제로 수영을 아주 잘 했다는데, 쿠바의 시에라마에스트라 한복판에 있는 험한 강에서 접영 솜씨를 펼쳐 보임으로써 게릴라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수영하는 마오쩌둥

  수영을 잘 했던 이가 또 있다. 1966년 7월 16일, 축 처진 가슴살을 드러낸 일흔 넷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노구를 이끌고 헤엄쳐 장강을 건넜다. 탁월한 쇼맨십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하였던 마오쩌둥의 이벤트는 그 생애에 있어, 또 중국에 있어 엄청난 의미를 갖는 두 번째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정치가로서 실패를 거듭하던 마오에게는 혁명가의 옷이 보다 어울렸다. 마오쩌둥 자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류사오치(劉少奇) 등 당 내 실권파가 내세운 수정주의는 마오가 애써 이룩한 첫 번째 혁명의 위대한 업적을 무위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하고 사악한' 생각이었다. 마오쩌둥은, 『마오쩌둥 어록』을 늘 소지하고 다녔던 그의 지지자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마오는 장강을 헤엄쳐 건넜고, 중국 전역은 다시 한 번 혁명으로 들끓었다. 이로서 마오가 늘 착용했던 혁명의 상징 인민복은 독재자의 옷, 마침내는 국부(國父)의 옷이 되었다.


  KBS2TV에서 아이티(Haïti)의 현대사를 다룬 프랑스의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테오젠 대통령’, 또는 ‘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극 중의 주인공은, 민중에 의해 두 번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두 번의 쿠데타로 권좌에서 밀려나 망명 길에 올라야 했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 Bertrand Aristide)가 모델이었다. 드라마의 제목은 「몰록 열대」.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독립이었던 아이티 혁명을 이끈 흑인 노예 출신 혁명가 투생 루베르튀르(Toussaint L'ouverture)의 봉기가 성공하여 그 이름을 되찾은 지 200년가량이 지난 2003년의 아이티가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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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신 몰록(Moloch)은 셈 계통(Semites)의 민족이 섬겼던 신으로 바빌로니아에서는 명계(冥界)의 왕으로, 가나안에서는 천공(天空)과 불을 관장하는 신으로 불렸다. 몰록 신을 위해 산 채로 어린이를 불 속에 던져 넣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이 행해졌기 때문에 유일신관의 히브리인들은 특히나 몰록 신앙을 가증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탄압하였다. 성서는 이 고대 신에 대해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레위기 20:5)”며 엄중하게 경고했다.


인신공양을 받고 있는 몰렉

  드라마「몰록 열대」는 바로 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와 연관된 장면은 단 한 차례 등장하는데,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제거하는 행위가 묘사된다. 극 중에서 성서의 빈번한 인용과 종교적인 메시지의 잦은 등장은 우선 아리스티드 대통령이 가톨릭 사제 출신이라는 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독립 20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아이티 정부는 민심 이반(離叛)과 국제 사회의 외면이라는 진퇴양란의 상황에 봉착한다. 2000년 대통령 당선을 확정한 선거를 두고 반대파들은 부정 선거의 의혹을 제기한다. 독립 이후 프랑스가 식민주의자들의 손해에 대한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아이티에 요구한 배상금 1억 5천만 프랑의 반환을 추진하는 정부의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다. 국민들은 부패한 정부를 믿지 않는다. 아이티 정부가 현재의 환율로 계산하여 요구한 216억 8천 513만 571달러 48센트 중, “아이티 사람들에게 실제로 돌아갈 몫은 48센트뿐”이라고 민중들은 비아냥거린다. 정부의 반민주적인 압제에 반대파와 엘리트들은 암살 혹은 국외 망명의 길을 택하고, 대통령의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충돌은 폭력과 살인으로 치닫는다. 뒤숭숭한 아이티의 내정 상황에 세계 각국들은 아이티의 독립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를 꺼린다. 정부 각료들은 국내외의 여론을 의식해 행사에 백인(白人)이 참여해 줄 것을 갈망하지만, 미 국무장관의 방문은 취소되고 식전에 모습을 드러낸 백인이라고는 저녁 만찬에 노래를 부르기로 한, 한 물 간 퇴물 여성 가수뿐이다.


  독립 기념일의 행사에서 아이티 혁명의 영웅 투생 루베르튀르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을 준비하지만 “이 병든 섬을 도울 수 있는 멋진 일”을 위해 달려왔다는 주연배우는 투생에 대해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이 연극은 아주 강렬하고 아주 슬픈”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영어를 사용하고 프랑스의 와인을 아주 좋아하며 대구(大口)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혁명은커녕 아이티와도 무관한 서구화된 흑인이다. 백인의 참석을 간절히 기다리는 대통령은 피부 미백을 받는 중이다. 극의 말미에 대통령은 마침내 영향력 있는 백인 남성들을 만나기는 하는데, 그들은 바로 대통령직을 사임한다는 문서에 서명하기를 종용하는 미군들이다.


  선거를 통해, 민중들의 지지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은 반대 여론을 조장하는 이들이 “빌어먹을 부르주아 놈들. 빌어먹을 지식인 놈들. 더러운 속물 놈들”일 뿐이며 여기에 선동되어 “흑인 갱단의 조종을 받는 200명 정도”가 시위를 하고 있을 뿐 “진짜 국민들은 나에게 갈채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티를 위해 “정치적 테러리즘과 경제적 파괴주의의 공격”을 견뎌내고 있는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스스로를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에 비견한다. 안팎으로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대통령은 결국 슬쩍 정신을 놓아 버린다. 나체로 대통령궁을 벗어나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벅으며 하늘 이슬에 젖는” 성서의 느부가넷살(Nebuchadnezzar)처럼 열대우림 속을 방황한다.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대통령에게 그의 늙은 어머니는 “저주받은 광기가 200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라 위로한다. 그는 결국 등 떠밀려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원치 않는 망명의 길에 오른다. “미국이 또 한 번 해냈습니다. 경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세금 감면 정책 또한 진행 중입니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뉴스에 대통령은 채널을 돌려버린다.

드라마 <MOLOCH TROPICAL>의 포스터



3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민중의 희망’이었다. 로마 가톨릭 신부이자 해방신학자로, 아리스티드는 프랑수아 뒤발리에(François Duvalier)와 그의 아들 베이비 독(Baby Doc) 장 클로드 뒤발리에(Jean-Claude Duvalier)로 이어지는 독재 정권에 대항해 아이티의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다. 민중은 그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1990년 12월 아이티 역사상 첫 민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득표율은 70%에 달했다. 그러나 그가 군사 지도자들의 쿠데타에 의해 강제로 실각, 망명길에 올랐던 것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은 1991년 10월의 일이었다. 3년의 군부독재 기간 동안 아이티에서 수천 명이 학살당하거나 실종됐으며, 수십만 명이 탄압을 피해 보트피플이 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1994년 10월 유엔은 2만여 명의 병력을 아이티에 파견, 군부를 축출하고 아리스티드를 복귀시켰다. 16개월 남은 대통령 임기를 마친 아리스티드는, 이어 2000년 11월 재선에 성공했다. 92%라는 경이로운 지지율이었다.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2000년 3월 아리스티드는 『Eyes of Heart : Seeking a Path the Poor in the Age of Globalization』이라는 저술을 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세계의 부자들이 전체 부의 86%를 가진 상황에서, 가난한 20%의 남녀가 지구적 생산의 끄트머리에서 싸구려 노동력으로 취급받으며 누구라도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버린 현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자본의 가치에 매몰된 이 시대에, 돈은 충분하지 않지만 사람만은 충분한 아이티에서, 그리고 전 세계의 가난한 이들에게서 인간적인 인고(忍苦)를 배울 것을 종용했다. 사회적 차별을 벗고 “존엄한 가난”을 통해 나아가는 아이티의 도전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아리스티드는 독재가 유지되던 지난 수십 년 동안 공포와 탄압의 대명사였으며 자신을 축출했던 군대를 과감하게 해산하고, 국내 치안은 5천명의 경찰력으로 유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고통스러운 구조조정 요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국영기업의 조건 없는 민영화를 거부하고 교육과 보건, 노동자 임금 등 서민생활의 향상을 위한 개혁적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다. 이러한 정책은 외국 자본가의 불만을 야기하고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아리스티드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어떤 이들은 아리스티드 역시 그의 전임자들과 다름없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 유지를 위해 반민주주의적 압제를 저지르고 부정부패를 거듭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프랑스의 드라마 「몰록 열대」에서 묘사하는 아리스티드의 모습과 맥을 같이한다. 혹은 아리스티드가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독선적 통치를 일삼는 포퓰리스트 좌파 정치인으로 언론에 의해 매도된 데에는 그의 개혁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던 까닭이라는 주장 또한 존재한다. 아리스티드가 당선된 2000년의 총선을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부 부유층과 군부독재 잔당세력으로 이뤄진 아이티 야당세력이며, 아이티 문제에 미국이 자꾸 개입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아이티가 멕시코와 함께 국가 방위의 ‘최우선 지역’이라는 점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과 브라질의 룰라 정권, 아르헨티나의 키르츠네르 정권, 에콰도르 구티에레스 정권 등 잇달아 남미에 나타나는 좌파 정권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가능성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좌파인 아리스티드가 미국의 논리와 아이티 내의 보수 세력에 의해 희생양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아리스티드가 집권한 뒤에 초심을 잃은 채 권력과 부패의 고리에 순응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리스티드는 프랑스의 협력과 미국의 강제적인 납치를 통해 자신의 망명이 강요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미국 정부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이라 일축하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선거, 쿠데타, 내란, 외부 세력에 의한 수습의 시나리오가 아이티에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며, 독립 200주년이 되는 해에 프랑스와 미국의 군대가 또다시 아이티에 주둔했다는 사실이다. "저주 받은 광기"는 20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진이 덮쳤고 화산이 폭발했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핵무기도 없고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 능력도 의지도 없으며 석유도 나지 않는 아이티는 외국의 원조조차도 크게 기대할 형편이 못된다. 주린 배를 붙잡고 국제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현실, 최초로 흑인 봉기를 통해 독립의 영광을 쟁취했던 아이티의 오늘이다.



4


  어느 의류 브랜드에서 마오쩌둥의 얼굴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 브랜드의 패션 잡지에 그려진 광고를 보면, 하단에는 마오의 얼굴이 로고처럼 박혀 있고, 버튼 두 개를 풀어 헤친 청바지가 의상의 전부이고 머리를 빡빡 깎은 광고 속의 여자 모델의 몸에는, 여체의 곡선을 따라 <혁명은 결코 우아함과 예의 따위와는 어울릴 수 없다>라든지, <혁명이란 사교모임의 만찬이나 문학작품을 집필하는 것, 또는 회화를 그리거나 자수를 놓는 것이 아니다. 혁명은 그 자체가 폭력적인 행동이다>와 같은 마오의 말들이 줄줄이 적혀 있는데…… 현대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상업 광고 아래 마오쩌둥이 등장하는 것은, 그러니까 마오쩌둥이



  마치 KFC의 영감과도 같이 웃고 있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오쩌둥의 혁명 노선을 더는 따르지 않는, 따를 수가 없는 중국과, 그걸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의류 광고에 마오의 혁명에 대해 떠들어 놓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서. 어디 드라마 속 아이티의 대통령뿐이랴.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의 하나로 성형 기술의 발전이 손꼽히는 이 시대에, 충분히 스타성을 갖춘 체 게바라는 말할 것도 없고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마오쩌둥 얼굴마저 티셔츠의 프린트로 새겨지는 이 때에


  사교모임의 만찬도 회화도 자수도 아닌 혁명이, 그 자체로 폭력적인 행동인 혁명이 결국은 청바지를 팔아먹는데 이용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참고자료


영상

Gautier, Philippe, 「몰록 열대」, ARTE France/VELVET FILM 공동제작(프랑스), 2010.

Salles, Walter,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2004.


도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이두부 역, 『가난한 휴머니즘 :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 서울:도서출판 이후, 2007.

장 코르미에, 김미선 역, 『체 게바라 평전』, 서울:실천 문학, 2000.


기사

송기도, 왜 미국은 아이티에 개입했나, 한겨레, 2004년 3월 9일자.

이선주, 독립 200주년, 무효선언?, 한겨레, 2004년 3월 11일자.

정인환, 미 교모한 내정조작이 아이티 벼량끝 몰고가, 한겨레, 2004년 3월 2일자.

주성원, ‘反독재투사’서 버림받은 독재자로, 동아닷컴, 2009년 10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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