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겨울 Nov 01. 2020

환상 속에 아직

없는 것

   해가 길다. 사라지는 빛이 뜨겁다. 벽에 부딪혀 바스러진다. 모래알처럼 빛난다. 튀어 오른다. 이것은 약간의 함성과도 같다. 함성은 속삭인다. 속삭이다 모일 듯 흩어진다. 그러나, 또는 그래서, 마침내 사라질 빛이다.


   오랜 묵언을 깬다. 때는 아직 적합하지 않다. 토해내기에 이른 감정이 많다. 하지만 실의(失意). 끝은 요란하다. 퍽이나 요란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으나 그것이 하수(下水) 임을 나는 안다. 그렇게 내어보내고 깨끗해질 수 있다면. 밭은기침이 끝나지 않는다. 조용히 모른 척하기로 한다. 끝도 없는 나열을 이제는 끝마치기로 할까. 그렇게 이 모든 것은 사라질 빛과 같이 된다. 나는 잠시도 설레었었다. 이유는 각기 달랐을 것이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


   그곳으로 돌아가 있었다. 현실보다 선명한 기억은 환상이었다. [환상 속에 아직]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생각했다. 매일 새벽이면 꿈을 꾸었다. 알 수 없는 이들이 웃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꿈일 수 없었다. 해는 길었으나 이내는 사라질 빛, 늘어진 그림자가 하수(下水)를 따라 흘렀다. 네게 용기가 없음에 나는 감사했다. 아이를 보고 마음이 부서진 네가 되리라. 튀어 오르는 그것은 이제 함성이 되었다.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함성 따위는 들려오지 않게 될 텐데. 현실보다 선명한 기억은 환상이 아닌가?


   생각하는 나는 갈등한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아도 해야 할 갈등 이리라. 기대도 하지 않는 생각이라서, [당도하려는 곳이 어디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기에 나는 작게 흔들린다. 그것은 모든 것이 되고 동시에 없는 것이 된다. 다시 결심하노니, 끝도 없는 나열을 이제는 끝마치기로 할까. 서늘한 바람에 눈이 맵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의 심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