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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erious J Apr 05. 2018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 소설의 시대별 변화양상 (3)

사용된 트릭은? – 다양한 학문의 접목을 통한  범인 색출과정

   1980년대의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 소설이 기존 소설의 구성방식인 ‘범인을 찾아 나가는 구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소설은 보다 더 변주된 형태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 당시의 작품들을 살펴봤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의 초반부에 범인이 누구인지를 직접적으로 서술하거나, 사건의 초동 수사 과정에서 특정 인물에 대한 심증을 얻게 되는 형사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쏟아지게 되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원천 봉쇄한다. 즉, 그가 소설에서 초점을 맞추어 풀어내고자 하는 수수께끼의 대상은 ‘어떻게?’라는 방법론적 측면에 집중되는 것이다. 이처럼 변화된 추리소설의 양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책들이 바로 『범인 없는 살인의 밤』, 그리고  『유가와 교수 시리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인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이다. 

 

  

'어떻게'에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인 추리 소설들 세 권. 왼쪽부터 순서대로 『범인 없는 살인의 밤』,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은 2012년 7월부터 9월까지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테리즈’라는 이름으로 드라마화 된 적이 있을 정도로, 매우 유명세를 탔던 소설 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총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내용의 초반부마다 범인이 암시되거나 직접적으로 서술된다는 특이점을 지닌다[1]. 마찬가지로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의 구성 또한, 범인이나 용의자가 초반부에 제시되고 그 트릭을 추정해나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2][3]. 그렇다면 이와 같이 범인을 먼저 제시하고 트릭을 밝혀 나가는 과정이 지니는 의의는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위의 소설들이 발표될 당시의 독자들이 가지고 있던 의식의 일단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가사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의 은퇴 이후에 발표된 추리소설들에 대해 독자들은 크게 진부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는 추리 소설이 기본적으로 가지던 ‘범인 색출 중점적 구성’ 자체가 너무 뻔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존의 소설 구성방식만으론 복잡한 트릭을 작품 내용 속에 도입하기가 힘이 든다는 사실도 또 다른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1990년대 이전의 대부분의 소설들이 ‘사건 해결자가 단서를 찾아 조합하고 그 조합된 사실증거들을 바탕으로 범인을 추리하는’ 형태의 스토리를 이용하였는데, 만약 이 과정에서 복잡한 트릭들이 이용될 경우 사건 해결자가 범인을 올바르게 지목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 설득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선 간단한 예시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형사가 자신의 주관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은 채로 단서를 조합해 B와 C 중에서 범인을 색출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단서만 봤을 때는 분명히 B가 범인인데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복잡한 범행 방법을 제시하면서 C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즉, 오로지 단서에만 의존하여 올바른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는 누구나 ‘납득 가능한’ 사고회로를 통한 추리만이 논리적 설득력을 지니게 되고, 이와 같은 사고회로를 이용해서 추리한 용의자가 실제 범인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트릭이 복잡해서는 안 된다. 반면, C가 범인이라는 직관적 심증을 가진 상태에서 ‘C가 어떠한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을까’라는 접근방법을 사용할 경우,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사고회로를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에, 작가가 복잡한 트릭을 소설 속 범행에 도입하는 것 또한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복잡한 트릭을 작품 속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일명 ‘완전 범죄’라고 불리는 형태의 범행에 대한 작품 상의 체계적인 설계와 서술이 가능하게 되었다.   실제로, 『셜록 홈즈 시리즈』나 앨러리 퀸의 소설들에 나타나는 완전 범죄가 기껏해야 숨겨진 통로를 이용한다던가, 혹은 시체의 신분을 위조한다던가 하는 트릭을 스토리 속에 담아내고 있는 데 반해[4],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의 경우는 트릭 자체가 현대 물리의 다양한 이론에 기초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범죄의 체계성이 매우 잘 설정되어 있다. 한편, 히가시노 게이고가 트릭의 체계성을 자연과학과 추리의 만남을 통해 추구한 것과 같이, 1990년대 이후부터 추리소설 작가들은 본격적으로 다른 학문을 추리의 세계에 접목시킴으로써 완전범죄의 체계성을 높이고자 하는 시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즉, 복잡한 트릭을 조금 더 엄밀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1990년대 이후 추리문학의 새로운 흐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세계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고등화 됨에 따라 독자들의 논리적 안목이 높아졌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출간 되자마자 최고의 찬사를 받았을 만큼 기발한 트릭을 선보였지만, 첨단과학이나 수학이 접목된 현대의 추리 트릭과 비교해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


[1] 히가시노 게이고, 『범인 없는 살인의 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2] 히가시노 게이고, 『탐정 갈릴레오』, 재인, 2008 

[3] 히가시노 게이고, 『예지몽』, 재인, 2009

[4] 엘러리 퀸,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해문출판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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