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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처럼 Apr 19. 2024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우주에 공통의 현재란건 없어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해 항상 두둑한 관심을 갖고 있던 나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카를로 로벨리는 양자중력을 연구하는 과학자이고, 그 과학자라는 신분에 걸맞게 문과적 인간인 미천한 독자로서는 이해불가한 과학지식을 신나게 제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이해되지 않는 채로 한쪽에 밀어두는 방식으로, 그 밖의 시간과 양자중력에 대한 부분은 마음의 눈으로 읽었다고 할까. 그러므로 이 독후글은 다분히 개인적 한계를 뒤집어쓰고 주워 담은 것들의 기록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시작한 의문은 결국… 그러게, 흐르지 않네. 그저 우리 인간의 인식의 한계로 인해 그것은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거였다. 작가의 말 그대로, 우리가 시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들이 아닌, 우리가 경험한 균등하고 범세계적이고 순서가 있는 시간, 이 단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게다가 쉽사리 ‘지금’ ‘좀 전에’ ‘잠시 후에’라고 우리는 쉽게 이야기하지만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사건들이 과거 - 현재 - 미래 순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순서가 있을 뿐이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서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지역적이다.”

본문 중에서

사실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시 말하면 ‘열적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적 시간‘은 ’ 양자 시간‘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의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처럼 열적 시간이라는 것도 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곧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지배하는 세계인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에 비해 미래 쪽이 엔트로피 지수가 높다. 과거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 = 엔트로피가 약한 반면, 미래로 갈수록 엔트로피 지수는 높다.

즉 우리의 현재라는 것은 엔트로피가 치솟아있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향하여 아직 시간이라는 재료가 물컹거리는 상태일 때 그것을 제대로 된 형태로 갖추어가야 할 책임이 있는 장소라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마치 어린이들이 어른들보다 엔트로피가 높은 만큼 더 열린 미래를 가득 갖고 있는 것처럼. 과거는 화석이고 현재는 막 만들어진 진흙형태의 삶을 가마에 집어넣는 순간이라는 것을...

나를 흔든 또 다른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과거의 흔적들에 대한 기억으로 뭉쳐져 있는 존재”

아아. 어릴 때부터 생각했던 건 만약 나의 이 생이 마무리되고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이동될 때, 과거의 내 삶에 대한 기억들을 다 갖고 간다면 슬픔의 기억 같은 것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날 수 없다면 그 아픔은 어떻게 견디며 또 그 아픔의 기억을 동반한 장소를 천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와 동시에, 기억을 두고 알 수 없는 장소로 이동한다면 기억이 없는 나를 같은 나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기억의 총체라는 취지의 말은 너무도 동의하는 바였다. 소중한 기억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타인과 다르게 형성된 관점이 있는 한 인간은 그저 고깃덩어리가 아니라는 말. 그것이 깊이 와닿았다. 아마도 기억을 잃은 인간은 이전의 그와 같은 사람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곳이 천국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각자 각자가 하나의 통합된 존재다. 세상을 반영하고 있고 타자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하나의 통합된 실체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으며 기억으로 통합된 세계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의미 있는 물음표를 던지는 책, 다시 생각을 시작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런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 아닐까 한다. 좋은 책을 읽었다. 좋은 관념들과 문장들이 또 내 안의 어딘가에 축적되고 그것이 나의 일부를 이루었기를, 자잘하게 바라본다.

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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