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정원에서
거대한 사회 공통의 문제 같은 것을 마주하게 되면 원천을 알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에너지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에서 수력 에너지를 얻고, 바람으로 풍력 에너지를 얻으며 태양에서 태양열 에너지를 얻는 것처럼 '사회 공통의 문제'에서 뭐라 명명하기 어려운 어떠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환경 문제라든가, 기상이변이라든가, 차별 철폐라든가, 인권 문제 같은 공통의 사회적 문제를 탐구해 가다 보면 개인이 갖고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갑자기 작아 보이는 순간을 경험한다. 비유가 약간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많은 엄마들이 둘째가 태어나면 아직 두세 살 정도밖에 안된 첫째 아이가 그렇게 커 보인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더 작고 더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새로 태어난 둘째 아이와 비교되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것이 실제보다 상대적으로 더 크거나 작게 보이는 효과는 비교에서 나오는 것이겠지.
미얀마의 민주 시위에 나서는 아들에게 밥을 차려주며 밥 먹고 가라는 어머니. 묵묵히 밥 먹는 아들을 바라보며 '네가 오늘 죽는다 해도, 나는 너를 응원하며 네가 자랑스럽다'라고 말하는 그 어머니는 민주 항쟁이라는 대의 안에 자식을 향한 사랑을 고이 묻고 씩씩하게 아들을 배웅한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에게 전한 그 어머니의 편지도 이런 것이었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중에서)
이것은 어떠한 거대한 에너지의 힘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며 자신을 괴롭히는 크고 작은 요소들로 인해 사람들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조감도 같은 시선으로 내려다보면 개개인의 문제는 너무 조그마해서 눈에 포착되지도 않겠지만 그 개인 자신에게 있어서 그 문제는 100퍼센트의 거대함이다. 완전한 침몰인 것이다. 하지만 과거 독립운동의 시대는 아마도 개인보다 '대의'가 훨씬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런 시대였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대의'를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던져 부서지는 것을 각오하고 바위를 쳐야만 했던 것이다. 아마 지금의 미얀마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겠고.
'대의'가 있기 위해서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적이 있어야 한다. 아니 적이 있어 대의가 생기게 되는 프로세스라고 해야 할까. 물리쳐야 하고, 이겨야 하고, 없애야 하며, 몰아내야 하는 적. 환경을 파괴하는 무분별한 산업 공정이라든가, 동물을 학대하는 악덕 업자나 개개인들,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군인들... 적들을 보며 분노의 게이지가 쌓이고 쌓여 거대한 에너지로 응축되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뭉쳐져 한 나라의 독립을 가져오기도 하고, 인권 지수의 도약을 가져오기도 한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에 대비되는 인물이 문득 떠오른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인지 픽션인지는 나로선 확인할 수가 없지만 나는 <황산벌>이라는, 욕도 끝내주게 많이 하지만 재미진 영화에서 그녀를 보았다. 바로 계백의 처다. 남편 계백이 신라와의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출정하기 전,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을 죽이고 나가려는 순간 두 사람의 대화.
“계백: 호랭이는 죽어서 꺼죽을 냄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냄긴다고 혔다!(절망스러워하며 울부짖는다) 제발 깨끗하게 가장께?!
계백의 처: (눈물을 흘리며) 뭐시 어쩌고 어쪄? 아가리는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씨부려야지. (절망스럽게 울부짖는다) 호랭이는 가죽 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뒤지는 것이여! 이 인간아!
(계백, 고개를 돌리며 이를 물고 아내와 아이들을 벤다)”
- 영화 <황산벌> 시나리오 중에서)
그렇게 계백의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조마리아의 조선은 끝내 독립을 이루어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어떤 죽음이 어떤 죽음보다 덜 헛되다 평하는 것도 안될 말이겠지.
왜 '대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지, 아마 뉴스를 너무 많이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얀마 사태, 환경 문제와 아동학대, 동물학대 등등 엄청난 사건들이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 또한 자연재해 (예들 들면 지진, 여기는 일본이므로)에 대한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며 코로나가 크냐, 지진이 크냐를 생각해보다가 개인적인 소소한 문제들을 걱정하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거대 사회 공통의 문제가 머금은 에너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공룡에 비하면 조그만 모기쯤이야, 겠지만 모기가 말라리아모기라면 사정은 또 다르겠지. 계백의 아내에까지 그 추론의 끈이 닿을 줄은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