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by 밤하늘별

처음, 시작, 다시 오지 않을

처음. 그 속에는 설레임이 있다. 무엇이든 의욕적일 수 있는 처음.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알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처음이 더 이상 처음이 아닌 것이 될 때 그 알 수 없는 에너지는 어느 순간 종적을 감추고 횟수가 거듭될수록 구태의연해지고 권태로움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 처음이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면 모든 상황이 전혀 어긋남 없이 똑같은 상황을 맞는 경우는 전혀 없다. 요행히 같은 상황을 맞더라도 그 이전의 자신과 그때의 자신은 또 다른 자신일 것이다. 우리에게 처음이 아닌 것은 없다. 항상 처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구태의연해지고 권태로움에 빠져들어야 하겠는가? 매 순간순간이 처음이다. 매 순간 처음을 맞는 만큼 우리는 매 순간 설레야 하고 몸과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살아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항상 처음처럼. 처음과 같은 설레임을 가지고 매 순간 새롭게 살고 싶다. 항상 처음처럼.


20여년 전이던가? 대학생 때 썼던 글이다. 당시엔 가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들 때면 밤 시간에 PC방을 찾곤 했다. 지금 와서 다시 들춰내 읽기는 참 부끄러운 글이다. 매 순간은 완벽하게 같지 않고 그렇게 보면 매 순간이 처음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다는 글.

그런데 처음이란 것은 열정과 에너지, 설렘이 전부가 아니다. 두려움, 익숙하지 않음, 불안함도 처음과 연관된 감정이다. 어쩌면 매 순간을 처음이라고 느끼면 득보다 실이 많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나이 듦에 기인한 것인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감은 줄어들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이거나 나약하다고 할만한 감정을 갖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매년 처음을 반복하는, 교직의 영향일까?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일에 설렘의 감정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를 떠올리면 교직의 특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설렘의 감정은 첫 만남보다는 차라리 아이들과 충분히 가까워진 어느 날엔가 아주 가끔 느낄만한 것이니까.

2월만 되면 3월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간은 하릴없이 흐르고, 맞이하기 싫은 3월 2일 아침도 어김없이 다가오는 법이다. 도덕책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이런 일에는 의미 부여가 중요하고 그것이 행복의 길이라는 방향으로 글을 쓸 것이다. 하지만 의미를 찾고 그것을 추구하는 일에 집착하는 것이 어쩌면 고통일 수 있다. 결국 모든 일은 안개 속에 쌓인 두 갈래 길이다.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행복일 수도 있고, 세상일에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깨달은 후 자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물론 ‘부조리에서 자유로움을 얻는 것이 쉬울까?’란 생각도 든다. 자유로움보다는 거대한 우울감에 빠져드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으니까.


비슷한 한 해를 보내고 또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끊임없는 반복이다. 그 속에서 의미를 찾지도 못했고 반대로 의미 없음을 깨달은 후의 자유로움도 얻지 못했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또 3월 2일을 맞이한다.

결국 나에게 3월 2일은 그런 날이다. 다소간의 혼란, 약간의 두려움, 조금의 권태로움 그리고 막상 아이들을 만나고 적응하는 약간의 안도감. 여러 감정들이 혼재되어 파도처럼 밀려오는 3월 2일을 나는 또 살아낸다. 작년에 2학년으로 만났던 몇몇 아이들을 올해 3학년으로 다시 만나면서 ‘내가 또 담임인 것에 실망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되려 반가움을 표현하는 데서 위안을 얻는다. 인생은 대체로 우울하지만, 가끔 조그마한 행복의 흔적들이 빛을 발한다. 그 짧은 빛남에 우리는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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