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인가? 내가 아직 카메라에 관심을 갖던 시기다. 조그만 카메라 하나쯤은 항상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출근하다가도 학교 화단에 멈춰서서 사진을 찍고 들어가기도 했고, 현장체험학습을 간다든지 체육수업이라도 하면 카메라를 챙겨 나가 가까이 그리고 멀찍이서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곤 했다. 그러다 생전 처음 연구부장을 맡은 해에는, 이듬해 교육과정을 되도록 화려하게 꾸미고, 내가 찍은 사진으로 학교의 사계절을 담기도 했다.
그 학교만 그랬을까? 당시 내 감성이나 관심 때문이었을까? 당시 근무했던 대암초등학교는 사계절이 뚜렷한 모습이었다. 봄이 되면 학교 정문 옆에 있던 커다란 목련나무에 하얀 꽃이 피어난다. 워낙 큰 나무라 밖에서는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고 건물 3층 한쪽 끝에 달린 동그란 창문으로 보이는 목련꽃이 일품이었다. 마치 액자 같은 모습이었다고 할까? 열리지 않는 창문이었지만, 그 때문에 더욱, 활짝 핀 목련꽃과 일체가 된 느낌이었다. 목련꽃이 떨어지면 벚꽃의 시기가 다가온다. 이때야말로 봄의 절정이다. 담벼락을 따라 심어 놓은 벚나무에 만개한 벚꽃은 봄 특유의 색감을 자아낸다. 벚꽃은 금방 지지만, 지는 순간에도 꽃잎을 흩날리며 화려함을 자랑한다.
벚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할 때쯤에 본관 앞편 자그마한 광장 중앙 화단에 샤스타데이지가 만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늦은 봄에서 여름까지 화단을 하얗게 장식하며 지나가던 선생님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여름이 가까운가 싶을 땐 대동디지털 아파트와 면한 운동장 쪽 담벼락에 장미꽃이 핀다. 차양막 지붕과 운동장에 시선이 분산되어서일까? 이곳의 장미는 가까이 가지 않고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체육관으로 향하는 길에,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파란 하늘과 빨간 장미가 그 빛깔을 뽐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름이 가면 대암초등학교의 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중앙 광장의 나무들에게 그 영광을 양보한다. 타는 듯한 빨간 잎과 노란 은행잎이 조그마한 연못과 조화를 이뤄,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 내고 연못에 피어난 가을 수련도 특유의 정취를 자아낸다. 몇 송이 되지 않아 여백의 미와 합쳐진 듯한 모습이 이채롭다. 중앙 광장의 가을 풍경을 광각 렌즈로 담아 각종 행사용 PPT의 마지막 페이지에 장식하곤 했다.
따뜻한 남쪽 지방의 겨울은 계절의 특색이 적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근무하던 시기에는 두어 차례 눈이 쌓인 적이 있다. 연못은 꽁꽁 얼고 아이들은 쌓인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어 포즈를 취한다. 눈이 오지 않는 겨울날에는 밤늦게까지 학교에 머물다 나가는 길에 만나는 시린 하늘과 하얀 달, 그리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의 장면을 완성한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던 것 같다. 그때 만난 학교가 그리 계절의 아름다움을 자랑한 것은 어쩌면 지금보다 확연히 젊었던 시절, 내 눈에 보이던 풍경이 지금과는 다른 감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만나는 풍경, 사람, 여러 가지 일과 그로 인한 감정들을 진득하게 느끼고 경험하며 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지금의 나는 세상의 풍경을 충분히 음미하고 사는가? 지금의 나는 어떤 마음을 품고 학교에 가는가?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