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를 다녀왔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임플란트 식립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달에 발치를 한 후 오늘 날짜로 예약했기에 당연히 오늘 수술하는구나 생각한 것이다. 방학하던 때부터 긴장하고 있었고 요며칠은 계속 임플란트에 대해 검색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는 않다는데 마취가 잘 안 되는 일은 없을지, 마취가 깨고 나면 많이 아프진 않을지, 양치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음식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등 여러 걱정과 궁금함이 뒤섞인 나날이었다. 그리고 당분간 음식을 씹기 어렵겠다 싶어 죽을 대량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치과 가니 잘 아물고 있다면서 2달 후에 날짜를 잡으면 되겠다고 하여 마음이 복잡했다. 걱정하던 일을 유예하게 된 셈이니 내심 안심한 것도 있고, 다소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
그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 먼 일이라 미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11월 중순부터 12월초까지 턱관절과 어금니가 아플 때 그리고 발치를 하던 날 생각보다 많이 아파서 죽음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나 죽음이 다가올 때 맞이할 육체적 고통에 대해 이전보다는 조금 더 실질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고작 치통이나 턱관절 통증, 발치할 때의 통증도 이렇게나 견디기 힘든데, 죽음이 다가올 때 맞이할 질병과 그에 따른 고통은 또 얼마나 심할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정신적인 고통과 두려움, 소멸에 대한 공포, 허무함, 미련 등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어령 선생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는지 묻는 김지수 기자의 질문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그는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나 많이 했는데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했다고 한다. 타인의 죽음을 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정작 자신의 죽음에 왜 그리 화를 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로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이어령 선생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죽음이 다가오는 고통이나 공포는 내가 접하지 못했지만, 극심한 치통과 턱관절 통증을 겪으며 이어령 선생의 이야기가 떠올랐었다.
어쨌거나 임플란트 식립은 3월에 하게 되었다. 출근하는 날 중에 할테니 지금하는 것보다 생활에 지장은 많을 텐데, 걱정하던 일이 미뤄진 것은 또 나름 장점은 있다. 2월까지는 또 마음 편히 지낼 것이다.
그리고 3월초가 되면 또 걱정을 시작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