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제에 첫 발령을 받았다. 임용시험이 끝나고 연수원에서 만난 동기들 사이에서는 거제에서 만나자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였다. 아무래도 내륙과 거리가 있는 편이고 유독 신규 교사가 많이 가게 되는 곳이라 그러리라.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지 3희망에 거제를 적었다. 1, 2희망에는 소수만이 갈 수 있던 창원과, 부산 사람들이 많이 지원해서 꽤나 인기 있던 양산을 적었다. 인기 있는 지역을 골라서 갈 점수는 아니었기에 당연하게도 거제에 발령을 받았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내 점수에서 마산을 적었더라면 가능했을 텐데, 나는 안 적어도 갈 수 있는 거제를 굳이 적어서 간 것이다.
거제는 대학교 때 해금강과 외도로 가족 여행을 오면서 만났던 곳이다. 당연히 관광지로 만나는 것과 살아야 할 곳으로 만나는 것은 달랐다. 자취방을 구하러 왔을 때 느낀 감정은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는 구나’였다. 본가인 창원과는 달리 시골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에는 조선 경기가 괜찮았고 거가대로가 놓이지 않아서 원룸 임대료가 생각보다 높았다. 16년 전 당시 보증금 500에 40~50만원을 준다고 해도, 그저 싱크대와 화장실이 있는 하나의 방 정도지 갖추어진 원룸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정도의 월세에 그만한 원룸이 선뜻 내키지 않아서 주택에 딸린 방에 살게 되었다. 자취방은 정말 어릴 때나 봤을 법한, 신발 신고 나가는 부엌에 주인집으로 통하는 문을 잠그고 외부에서 들어가는 입구를 만든 형태였다. 내 방은 2층인데 화장실은 1층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점이 불편했다. 또 온수는 가스를 이용한 순간 온수기를 사용했는데 물살이 약할 때면 가스 점화가 되지 않아서 겨울에도 차가운 물에 씻어야 하는 날이 꽤나 있었다.
시내는 고현이라는 곳인데 내 걸음으로 시외버스티미널에서 20여 분 걸으면 당시 시내 거리 시작과 끝을 다 만날 수 있었다. 거제라는 곳의 사람들을 단순하게 보면 조선소 유니폼을 입은 사람, 조선소 유니폼을 입지 않은 사람, 아이와 교복 입은 학생 정도로 나눌 수 있다. 당연히 조선소 유니폼을 안 입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 또래의 젊은 사람이라는 조건을 하나 건다면 그 희소성이 매우 증가한다. 나와 같은 교사가 아니고서 조선소 사람들이 아닌 또래의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더 답답했던 것일까? 지금이야 운전도 하고 자연에서 즐거움을 얻을 법도 하지만, 당시에 차가 없던 나로서는 대중교통이 불편한 거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영화관은 여러 의미로 인상 깊었다. 당시 거제에서 유일한 극장은 거제 시네마라는 곳이었는데 나름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갖추었지만, 빨간풍의 바닥와 벽면 장식, 조그마한 규모는 어릴 적 만나던 영화관의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봤던 영화가 한석규 주연의 ‘구타유발자들’이었다. 1년이 지난 후에 디큐브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CGV가 생기고 거제 시네마가 엠파크로 바뀌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다. 엠파크는 얼마 안 가서 메가박스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러고 몇 년 지나서야 롯데시네마가 생겼던 이웃 도시 통영에 비하면 거제는 일찍부터 영화를 볼 수 있는 도시였다.
당시에는 등교를 하는 토요일과 등교를 하지 않는 토요일을 격주로 운영하였다. 놀토와 일토로 불렀는데 놀토가 있는 주에는 어김없이 창원을 다녀갔고 일토가 있는 주에도 거제에 남았던 기억은 몇 번 없다. 거가대로가 없던 당시에는 거제에서 창원 본가로 오려면 시내 버스 갈아타는 시간과 버스 기다리는 시간 등을 모두 합해서 4시간이 넘게 걸렸다. 먼저 학교가 있던 옥포에서 한참 동안 시내 버스를 기다려서 고현 터미널로 간다. 거기서 시외버스를 타면 통영 시외버스터미널과 고성 시외버스터미널을 차례로 들르면서 한참이나 정차했다가 마산 남부 시외버스터미널로 나올 수 있다. 그곳에서 창원 본가까지 또 시내버스로 1시간 가량 가야 했다. 이런 육상 교통이 지루할 때면 배를 타기도 했다. 옥포에서 시내 버스를 타고 연초에서 내리고 거기서 한참 기다려서 실전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실전 터미널에 타이밍 좋게 도착하면 금방 배를 타지만, 그렇지 못하고 코앞에서 놓치면 1시간 30분을 기다려서 다음 배를 타야 했다. 커다란 배는 쉬엄쉬엄 가지만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지 1시간이면 진해에 도착한다. 진해와 창원 간의 시내버스는 당시 그리 자주 있지 않았다. 꽤나 오래 기다려서 창원에 도착하면 해상 교통을 이용하는 쪽이나 육상 교통만을 이용하는 쪽이나 거의 비슷하게 4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실전항의 눈부신 햇살과 바다, 배를 타고 건너는 낭만을 생각하면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배를 타는 편이 좋았다. 또 배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당시 나와 비슷한 시기에 거제에 발령 받았던 여교사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 번은 나를 두고 ‘이상형인데 조금 부담스럽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 우유부단하고 숫기 없는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배는 늦은 시간까지 운항하지 않기에 놀토가 있던 금요일 오후에는 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당시 통영을 지날 때 ‘PSP가 있으면 이 시간에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한 기억이 난다. 실제로 PSP를 구입해서 리듬 게임 몇 번 해보고 ‘내가 이 게임을 왜 잘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금방 다시 팔기도 했다.
지금이야 추억 속의 옛 이야기 하듯이 적는다. 당시에 차를 좀 더 일찍 샀더라면 거제 생활이 훨씬 여유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배와 버스로 이동하던 그 긴 시간만큼의 추억은 또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