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물가가 상당히 올랐는데 되려 가격이 떨어진 물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컴퓨터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만 해도 컴퓨터는 말로만 듣던 생소한 물건이라 여기는 아이들이 많았다. 클럽활동 부서를 정하기 위해서였는지 다른 이유로 물었는지 모르겠지만,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반에 한 명 혹은 두 명 정도만이 손을 들었다. 집에 컴퓨터가 있는 경우는 고학년이 되어서도 몇 명 되지 않았다. 나도 컴퓨터는 이름만 들어 알고 동경했을 뿐 인연이 없다가 4학년 때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학원을 다니고 바뀌게 된 점은? ‘컴피터’ 혹은 ‘콤피터’ 라고 부르던 것을 비교적 정확한 영어 발음으로 ‘컴퓨터’로 부르게 된 것이 첫 번째 변화였고, 내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 두 번째다. 4학년 첫 시험 때 전과목 평균 95점을 받았었는데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서는 평균 74점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마음 고생하며 집에 시험지를 가져갔었는데 왠일인지 부모님은 생각보다 그리 혼내지 않으셨다. 담임 선생님은 ‘3월 시험 때에 비해 점수가 많이 낮아진 사람이 있다’고 ‘컨닝’을 언급하며 의심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셨다. 그해 마지막 시험에 그나마 점수를 많이 회복하여 92점을 받았다. 과학이던가? 시험을 칠 때 나는 빨리 다 풀고 미리 제출했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시험지를 받아 보시고는 ‘내가 가장 잘 쳤다’고 하셔서 1년 내내 1등이던 친구가 긴장하기도 했다. 실상은 그 과목을 가장 잘 쳤다는 것이었는데 그 친구는 꽤나 마음 고생을 했던지 전 과목 시험 결과가 나왔을 때 주먹을 쥐어 보이며 큰 소리로 ‘아자’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
6학년 때 마침내 집에 컴퓨터를 샀다. 삼성이나 삼보 등 브랜드 컴퓨터는 너무도 비싸서 사지 못하고 조립형 컴퓨터를 샀다. 당시만 해도 길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교차로’ 같은 생활 정보지에는 어김없이 조립형 컴퓨터 광고가 들어 있었다. 컴퓨터가 너무도 갖고 싶었던 나는 매일 생활정보지를 한 가득 가져와서 광고지를 보고 부모님에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그리고 마침내 100만원 조금 안 되는 돈을 들여 386DX 컴퓨터를 샀다. 당시 집안 사정이 조금 여유 있는 집에서는 ‘삼성 매직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삼성 486 컴퓨터를 사서 부럽기도 했지만,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당시 486SX가 있던 친구, 386SX가 있던 친구가 있었는데 386SX에서 SX를 강조하며 장난 삼아 놀리던 기억도 난다. 처음 컴퓨터를 샀던 나는 PC 통신을 하던 친구를 통해 부지런히 게임을 얻어다가 설치했다. 삼국지 무장쟁패나 스트리트 파이터2 등 대전액션 게임에 푹 빠져 지냈다. 프린세스 메이커2나 삼국지 시리즈 등은 엔딩을 보려면 꽤나 시간이 걸렸지만, 나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마법의 성’이라는 노래를 탄생시킨 페르시아의 왕자도 빼놓을 수 없다. 서비스 개념으로 처음부터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던 토정비결이나 퀴즈 게임 등은 가족들도 함께 즐겼다. 당시에 게임 좀 해보겠다고 메모리 확보하려고 config.sys, autoexec.bat 등의 파일을 이리저리 건드리던 기억도 난다. 또한 도스에서 ‘cd’라는 명령어로 폴더 간 이동하는 일은 상당히 번거롭다. 그것을 F10키와 방향키로 간편하게 하도록 했던 MDIR 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시 100만원 가량은 엄청난 돈이었다. 삼성 매직스테이션 486 컴퓨터는 300~400만원 돈이었다.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동네 친구들이 그런 것을 집에 갖추는 것은 부모님들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으리라. 사실 나는 지금도 아주 비싼 컴퓨터는 차마 사지 못한다. 100만원 조금 넘는 정도가 내가 생각하는 마지노선이다. 물론 그런 것들을 여러 대 사놓고 쌓아 두니 차라리 비싼 거 하나 사는 게 낫다 여기기도 한다.
이 비싼 컴퓨터를 사서 한동안은 동네 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게임을 시켜 달라고 했다. 그런 시기가 지나갈 때쯤 큰 위기가 찾아왔다. 어느날 컴퓨터를 켰더니 화면이 켜지지 않고 컴퓨터에서 타는 냄새가 나며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에 얼른 꺼버렸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끙끙 앓던 어느날 아침 컴퓨터가 고장난 것을 새삼 그때 안 것도 아니면서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에게 고장 났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날부터 아버지는 컴퓨터를 샀던 곳에 몇 차례 찾아가셨다. 한 번은 나도 따라갔었고 ‘그 방에는 다른 거 안 쓰고 컴퓨터 딱 하나 전기 꽂아 쓴다’며 컴퓨터가 불량이니 고쳐달라는 아버지와 ‘컴퓨터 하나만 꽂아서 쓰니 오히려 명확하게 사용자 과실이 있지 않겠냐’는 직원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사장님으로 보이던 사람이 무상으로 고쳐주겠다고 했고 마침내 나는 컴퓨터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구입한지 얼마 되지 않기도 했지만, 당시 물가를 고려할 때 100만원 짜리 컴퓨터가 연기를 내면서 고장 났으니 아버지로서도, 조그만 조립 컴퓨터 가게 직원으로서도 결코 쉽게 물러설 수 없었으리라. 당시 100만원의 가치를 생각하면 참 부모님을 힘들게 했구나 싶다. 지금이라도 부모님께 잘 해야지 하지만 그게 그리 잘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과거 기준으로는 이렇게나 비쌌던 컴퓨터인데 조만간 학생들에게 한 대씩 나눠준다고 한다. ‘세상 좋아졌다’ 느낀다. 물론 지금의 아이들은 컴퓨터 보다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훨씬 익숙하고 컴퓨터는 생각보다 잘 활용하지 못한다. 곧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배부할텐데 나로서는 이걸 수업시간에 어떻게 활용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굳이 이걸 한 대씩 나눠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집에 가져갔다가 필요시 학교에 가져와서 활용하고 몇 년 후 다시 반납할텐데 과연 관리가 될지도 의문이다. 3학년 어린 아이들이 이것을 잘 챙겨서 집에 가져가는 일도 걱정이다.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져서 원격수업이라도 하게 되면 그때야 조금 쓰는 일이 생기겠거니 한다.
당시 그렇게나 비쌌던 컴퓨터인데 지금 우리 집에는 노트북과 모니터가 몇 댄지 헤아려 봐야 알 정도니, 교육청에서 학생들에게 한 대씩 나눠주는 것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만큼 예전만큼의 희소성이 있거나 비싼 물건은 아니니까. 물론 혼자서 이렇게나 컴퓨터를 많이 사놓고 쓰는 사람은 IT 유튜버가 아닌 이상 흔치 않을 것이므로 내가 특이한 경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