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민속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고전(?) 게임이 있다. 97년에 처음 등장한 스타크래프트는 당시 PC방이란 새로운 장소를 탄생케 하기도 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긴 것에도 스타크래프트가 일등공신이었으며, 2000년대 초등학교 교실에서 남자 아이들의 꿈은 상당 수가 프로게이머였다. 당시 스타크래프트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세계 대회를 열기도 했고, 이 종목 우승자는 임요환, 최연성, 이제동, 이영호 등 그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우리나라 게이머들이었다. 임요환은 당시 팬 카페가 50만명에 이르며 어지간한 연예인들보다 더 유명세를 떨쳤다. 스타크래프트는 팀 단위 대회를 열기도 했는데 임요환과 홍진호로 대표되던 SK와 KT의 광안리 결승에서는 10만명이 관람하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했다. 이 게임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2월 22일에는 선수 시절 이벤트 전을 제외하고는 준우승 기록만이 돋보이는 폭풍 저그 홍진호, 홍진호가 준우승할 때 승자였던 테란의 황제 임요환의 임진록이 유튜브를 통해 성황리에 방송되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중에서 게임 준비 시간을 상당히 길게 갖는 박태민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별명은 운영의 마법사였으나 사람들은 세팅 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세팅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어쩔 때는 본 게임 시간보다 길게 세팅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지루한 기다림에 지쳐 세팅 박이라고 부르며 성토한 것이다. 상대편 선수의 팬으로서는 당연히 지루한 기다림이 싫었을 테고, 박태민 선수 팬으로서는 이기면 괜찮지만, 그렇게나 기다렸는데 금방 져 버리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모든 면에서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한 철저한 준비였을 것이고 일종의 루틴이었을 것이다. 당시 선수들은 키보드 마우스를 본인 것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은 당연하고 모니터 까지도 자신의 것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길게 스타크래프트와 박태민 선수 이야기를 한 것은 나 또한 세팅에 꽤나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2월에 새 교실을 배정 받으면 교사 책상, 학생 책꽂이, 사물함을 들어내고 몇 년이나 묵었을지 모를 먼지와 주인 잃은 학용품을 쓸어서 버리고 청소기와 물걸레로 깨끗이 청소한다. 교사 책상 서랍도 물걸레로 닦고 말린 후에야 비로소 내 물건을 넣고, 컴퓨터를 세팅한다. 우선 휴대전화나 블루투스 이어폰, 태블릿 등을 충전할 멀티포트 충전기를 책상 위에 거치해 두고 선을 정리한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적당히 쓸만하면서도 너무 비싸지 않은 제품들로 세팅하고 기존의 유선 키보드와 마우스는 내년 선생님에게 교실을 넘기기 전까지는 사물함이나 캐비넷에 고이 모셔둔다. 모니터 분배기를 통해 TV와 집에서 가져온 모니터가 같은 화면을 표시하도록 하여 기존 교실 모니터와 함께 듀얼 모니터로 구성한다. 그리고 교실 상황에 따라 스피커를 따로 가져오기도 하고 USB 허브를 가져오기도 한다.
청소와 내 자리 세팅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3월 준비에 돌입한다. 그런데 지금 학교에서는 그런 점이 조금 아쉬웠다. 지난 해에 전입했을 때야 외부에서 왔으니 그만한 여유가 없다 치더라도 올해는 그렇지 않을 법도 했는데 학교 일정이 그렇지가 않았다. 2월에 4일간 진행된 새학년 준비 주간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나마도 올해는 모니터 분배기를 새로 주문해야 했는데 중국에서 직구하려니 배송이 아직도 안 오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쿠팡에서 하나 새로 주문했는데, 조만간 니퍼와 케이블 타이를 가져가서 세팅을 마칠 생각이다.
내 자리 세팅 뿐만 아니라 수업도 무언가 미리 그림을 그려놓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작년까지는 2학년을 꽤나 여러 해 했기에 학교를 옮기든, 업무가 많든,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새로운 학년을 맡게 되어 꽤나 쫓기는 마음이다. 이전 같으면 1년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당장 내일 계획도 철저하지 못하다. 조만간 시간을 내서 계획을 세워야 할텐데 그동안 국어 지도서를 구하지 못한 것도 준비가 늦은 한 원인이다. 작년 선생님들의 지도서가 많이 없어지고 새로 주문하지 않은 터라 나와 옆반 선생님은 국어 지도서 없이 지내고 있다. 그래서 아직 국어 수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겨우 PDF 파일을 구해서 아이패드에 넣는 중이다.
근데 수업을 준비하려고 했다면, 지도서 없이도 여지껏 못할 것 까지는 없었겠지만, 무언가 준비되지 않으면 시작을 꺼리는 내 성향 때문에 이렇게 늦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항상 철저하게 무엇을 준비하는 편은 아니다. 준비의 질을 떠나서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잘 하지 못하는 성향 때문이리라.
생각해보면 살면서 항상 100% 준비된 상태로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있을까? 내가 책을 쓰기 시작했던 것도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고, 학교에서 처음 부장을 맡았던 29살 때는 어떤 준비도 된 상태가 아니었다. 연구회에서 이끔이나 사무국장 자리를 맡았던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실제로 책을 출간했고 부장 자리는 12년째 무리 없이 해내고 있으며, 연구회 일도 큰 어려움 없이 해 나가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무언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준비된 상태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살면서 100% 준비된 상태로 어떤 것을 하게 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으리라.
어쨌거나 이제 3월도 3주가 지나간다. 내 자리도, 교사교육과정도 완벽히 세팅하지 못하고 시작했지만, 슬슬 세팅을 마무리하고 본 궤도에 오를 시기다. 내 리듬을 다시 찾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