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추상화되는 일상

by 밤하늘별

2020년 2월 대구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도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작년까지는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주변에 확진자가 나오지도 않고 학교에서도 다행히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미크론이 지배종이 되면서 확진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학교에서도 확진자 발생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에는 ‘올해가 되면 이제 일상을 되찾지 않을까’했는데 잘못된 예상이었다. 오히려 실질적인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비록 확진되어도 예전만큼 치명적인 질병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근무하는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나 하나 확진되는 거야 1주일 쉬면서 회복한다 하지만, 동료나 학생들이 확진되는 것에도 처리하고 생각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리고 만약 내가 확진된다면 내가 아픈 것 보다는 학교 일이 더 걱정이다. 작년까진 발열이라는 뚜렷한 기준으로 ‘가벼운 기침이나 콧물 같은 경우에는 감기겠거니’ 했지만, 지금은 증상이 가벼워지면서 목이 아픈 것 같거나 기침만 해도 출근할 수 있는 것인지 신경 쓰인다. 코로나의 위험성은 내려온 것 같은데 대응은 아직 그보다는 더한 것 같은 상황이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 나오는 추상적인 나날이다. 우리가 코로나19로 일상을 잃었다는 것은 단순히 평소에 하던 행동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마땅히 보고 음미하던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여유를 잃고 평소와 다른 생활을 하지만, 자연은 그대로다. 오히려 공장 가동이 중단되던 코로나 초기에는 파괴되었던 오존층이 급속도로 회복되기까지 했다.

봄이 되면 여전히 꽃이피고 여름에는 푸르름이 빛을 발한다. 또 가을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을 자랑하고 겨울은 그 본연의 자태를 뽐낸다. 그런데 코로나에 온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꽃은 그저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꽃을 보며 마땅히 느꼈던 감정을 갖지 못하고 그저 꽃이라는 단어로만 인식한다. 자연에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끼던 감정도 건조해진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걱정하기 보다는 감염 상황을 더 걱정하고 행정적인 일 처리가 더 와닿는다. 그렇게 일상은 추상화 되어 간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코로나19 확진이라는 단어 조합의 의미도 변해간다. 집단의 차원에서 보자면 처음에는 중국에서 유행하는 전염병이었다가 전세계에 퍼진 공포, 지금은 행정적인 번거로움으로 이행하는 중이다. 단어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과 집단의 경험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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