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의 철학을 잘 아는 인물이었지. 수학에선 뺄셈은 말 그대로 감소를 의미하지만, 생활에서는 뺄셈의 수식 등호 오른쪽에는 플러스가 남는 다는 걸 잘 알았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한 무대 위에서 자신을 더 돋보이려고 더 화려한 옷을 입지. 그것도 모자라서 눈부신 조명까지 동원해. 또는 그들이 자랑하려고 하는 성대한 결과물을 보여줄 때 상대적으로 자신이 초라하게 비춰질 까봐 겉치장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거야. 반면, 스티브 잡스를 봐. 검은색 터틀넥에 그 흔한 청바지가 전부잖아. 잡스가 돈이 없어서? 아니면 비싸고 고급스런 옷을 고르는 안목이 없어서일까?
잡스는 알고 있어. 자신을 낮추면 상대는 올라간다는 것을. 마치 시소에서 자신이 내려가면 상대는 올라가는 것처럼. 그렇다면 잡스가 오직 무대 위에서만 이런 의도를 갖고 검은색 터틀넥을 입었을까? 그의 의상 디자이너가 똑같은 검은색 터틀넥을 100벌이나 지어주었다고 해. 흰색 20벌, 청색 20벌, 은색 20벌, 금색 20벌, 검은색 20벌이 아니야. 검은색 터틀넥만 100벌이야. 이것이 무얼 의미할까? 잡스는 무대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이 검은색 터틀넥을 즐겨 입었다는 것이지. 그래도 잡스의 진가는 무대 위에서 빛을 발했지.
관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무대 주변에 묻혀서 잘 눈에 띄지 않는 그의 의상에 눈부셔할 필요도 없이 오로지 반짝이는 눈빛으로 대화하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와 프레젠테이션에만 집중했어. 프레젠테이션이 잘 되면 누가 덕을 볼까? 애플 제품의 디자인부터 가격, 성능까지 총체적으로 깊이 관여한 스티브 잡스가 빛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 잡스는 '제품'에 집중할수록 자신을 돋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 '제품'과 일심동체인 자신도 브랜드화 된다는 걸 알고 있던 거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잡스를 따라 해. 하지만 잡스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무대 위에서만 잡스처럼 보이기 때문이지. 역사는 무대 밖에서 이뤄져. 무대 위에서는 단지 그걸 보여주기만 하면 돼.
그런데 대부분은 반대로 해. 무대 뒤에선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만 포장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