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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노 Mar 07. 2023

스즈메가 문을 닫는 이유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 리뷰

이 글에는 영화의 줄거리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일본에서는 2022년 11월에 개봉해 현재까지 자국 내에서만 137억엔이 넘는 극장수익을 거뒀다. 지난 2월에는 개봉 87일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지금도 극장 수익이 계속 올라가는 중.


국내는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이후 가장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됐다. 이번 영화는 얼마 전 폐막한 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는데, 일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황금공상을 수상한 이후 21년 만의 진출 기록이다. 현재 199개국에서 개봉 준비 중이다.


지금껏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만든 작품들의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시공을 초월해 연결된 소년과 소녀’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스즈메의 문단속>은 자신의 작품세계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이전과는 다른 뭔가를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장단점이 뚜렷하고 호불호가 갈릴 거라 예상된다.


이미 일본에서도 비판적인 시각이 꽤 존재하는 만큼 국내 관객의 반응도 궁금하다. 시골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와 도쿄에 사는 타키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존재를 궁금해하고 끝끝내 만나게 되는 <너의 이름은.>의 가슴 찡한 러브스토리를 기대하고 간다면 이번엔 좀 실망하고 나올 것 같다. 





물론,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이전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설정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다. 예를 들면 휴대폰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사람들이 연결되는 설정의 <별의 목소리>, 영원히 잠든 소녀를 구하기 위한 두 소년의 고군분투를 그린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만날 듯 만나지 못하는 애틋한 인연을 그리는 <초속 5센티미터>에서 보여줬던 설정은 <너의 이름은.>을 비롯해서 <날씨의 아이>와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세 작품을 묶어서 재난 3부작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



규슈 미야자키현의 한 해안가 마을에 사는 스즈메(하라 나노카)는 등교길에 우연히 한 남자와 마주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소타(마츠무라 호쿠토)인데 주목할 점은 굉장히 잘생긴 미남이라는 점. 스즈메는 첫 눈에 그가 ‘이케멘’이라서 빠져든다. 우연히 길에서 스쳐 지나가듯 마주쳐 놓고는 폐허 속에서 문을 찾고 있다는 다소 이상한 첫인사를 남긴 소타의 행적을 스즈메가 뒤쫓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는데 당연하게도 이들의 관계는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날씨, 혹은 재난과 연관되어 있다. 어떤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발을 들이게 된 스즈메와 소타는 세상 사람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힘을 막기 위해서 전국 곳곳에 숨겨져 있는 ‘문’을 반드시 닫아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다. 





이번 영화가 <너의 이름은.><날씨의 아이>와 다른 점은 인물 구도다. 스즈메가 첫 눈에 사로잡힐 정도로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던 소타가 삐그덕거리는 의자로 바뀌게 되는데 (스포일러는 아니다. 예고편에 언급되는 설정이다. 알고 봐도 전혀 상관없다.) <미녀와 야수>의 설정을 조금 비틀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번 영화를 구상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녀 배달부 키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스즈메와 소타의 관계는 시공간을 초월해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되는 십대 청소년들의 인물 구도에서 약간은 벗어나 있다. 사람이 낡은 의자로 변하게 되는 핸디캡을 준 다음, 주인공들로 하여금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풀어나가게 하겠다는 연출 의도가 담겨 있는 설정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관객들이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번 영화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전작과 다른 점은 스즈메와 소타의 관계 외에도 주목해야 할 등장인물이 더 있다는 것이다. 스즈메가 문을 닫으며 돌아다니는 동안 만나게 되는 사람들, 민박집을 운영하는 소녀 치카, 고베에서 스낵바를 운영하는 루미, 그리고 무엇보다 스즈메를 지금까지 키워준 이모 타마키까지, 스즈메가 만나게 되는 여성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주목하면서 영화를 관람하면 보다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해질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왜 <마녀 배달부 키키>를 참고했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




아, 의문의 신스틸러 고양이 '다이진'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날씨의 아이>가 개봉했던 2019년 어느 여름날에 이번 영화의 구상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날씨의 아이> 무대인사를 하러 일본 전역을 돌아다닐 당시에 곳곳에서 폐허가 되어가는 곳들을 발견했고, 감독 본인의 본가가 있는 나가노현에서도 폐허가 된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일본 지방 도시의 현실에서 착안, 특정한 장소를 애도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한 소녀가 이상한 외형을 가진 사람과 동행하게 되는 이야기의 테마를 떠올리게 됐다. 


코로나19 이후 전세계에 불어 닥친 판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은 급격하게 달라졌다.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묘사되는 재난 상황을 보면서 이전과 다른 감흥을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하다. 예전이었다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을 장면들도 예민하게 느낄 수 있고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면서 영화에 자세하게 묘사되는 재난문자 장면 같은 걸 보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관객도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사람들의 일상에서 듣게 되는 재난 문자 소리와 너무 똑같아서 실제 재난 위기처럼 느껴졌다는 거다.




이렇듯, 과거엔 그저 창작물 속에 등장하는 사건에 그쳤다면 이제 현실은 영화보다 더 끔찍해지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너의 이름은.>을 만들 때부터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재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재난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오늘 하루를 잘 버티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굳센 마음가짐을 계속 해서 영화에 그려내고자 하는 게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연출 의도 내지는 목표인 것.


스즈메와 소타가 전국을 돌면서 필사적으로 닫아야만 하는 ‘문’을 보면서 일본 사람들이, 나아가 전세계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재난 상황을 떠올리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감상법이다. 특히 일본 사람들이라면 최근의 동일본 대지진이나 원전 사고 같은 아픈 기억을 바로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너진 폐허 위에서도 사람들이 지키고 살아야 하는 일상과 오늘의 소중함. <너의 이름은.>의 타키와 미츠하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던 것도, <날씨의 아이>에서 자신의 수명을 갉아먹어가면서까지 맑은 날씨를 불러모아야 했던 히나의 능력도 모두 사람들의 일상, 오늘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영화에서의 스즈메와 소타의 노력은 사람들을 평화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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