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운이라는 걸 믿는다. 영화가 그 시절의 나를 찾아간다.
매년 새해 첫 관람 영화와 마지막 관람 영화를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해에 본 첫 영화를 마치 일년 운세를 점쳐보는 심정으로 고른다. 마지막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고심하며 선택한다. 반성, 기대의 의미를 모두 담아서. 기준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그 날의 기분에 이끌린다. 스케줄상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영화가 생긴다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2024년 1월 1일 자정을 넘길 즈음에 봤던 작년 첫 관람 영화는 4K 리마스터링이 끝내주게 잘 된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리콜>이었다. 주로 첫 극장 관람작은 시사회 일정에 따라 결정되곤 하는데 작년에는 <외계+인 2부>가 첫 극장 관람작이었다. 공교롭게도 집에서 본 첫 영화와 극장에서 본 첫 영화가 모두 SF였다.
그 탓인지 저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작년 내내 SF 영화에 집중을 못했다. (더 좋았어야 운빨이 맞는 거 아닌가.) <듄: 파트2>도 1편만큼 집중을 못했는데 우선 시각적으로 끌리지 않은 이유가 컸고, (물론 액션의 많고 적음이 완성도를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후반부 대규모 침투 장면 신이 풀샷 한 컷으로 끝낸 게 대표적으로 아쉬웠달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는 액션의 상당 부분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해서 전편만큼의 전율을 느낄 수가 없었으며, (카체이싱 액션 나올 때 사람들 튕겨져 나가는 모습이 너무 티가 나서 어색했을 정도. 이야기와 캐릭터의 매력도 마찬가지.)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심지어 극장에서 볼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아직도 못 보고 있다. 그냥 버튼에 손이 안 간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기생수: 더 그레이>를 보는 내내 어? (물론 <탈주> 같은 영화에선 너무 좋았지만) 구교환 배우가 이 세계관에 과연 어울리는 연기를 하고 있는건가? 갸우뚱하며 봤고, <경성크리처>도 시즌1까지만 보고 시즌2에서 멈췄다. 시즌1을 다 보고 나니 현대 시점의 이야기가 기대되지 않았다. 한소희, 박서준 배우의 조합에서 이미 흥미를 잃었다고 봐야 하나.
판데믹 이후 OTT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존 시장에선 쉽게 기획되기 어려웠던 대규모 프로젝트가 만들어진 흐름은 분명 반가웠다. <고요의 바다> <더문> <정이> 같은 시도는 각각 아쉬운 점도 물론 있었지만 더 주목받을만한 작품들이라 생각한다. <고요의 바다>의 버츄얼 스튜디오 촬영, <더문>의 비주얼, <정이>의 캐릭터 모두 장점이 분명 있다. 그런데 대중의 기준치가 급격하게 달라져버린 탓일까. 2024년의 웬만한 국내외 SF 영화들은 1-200만 관객 선에서 그쳤다. 넷플릭스의 <삼체>도 국내에서 큰 반응이 없었던 것 같고. (주제가 너무 무거웠던것은 아닌지. 할리우드 자본이 들어간 작품 중에 문화학명 시기가 이렇게 상세하게 묘사된 작품을 보는 흥미는 있었는데. 비행기 절단 에피소드 같은 건 시각적으로 정말 섬뜩하고 이 세계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라서 인상적이었다.)
불과 2-3년 사이에 각광받던 '뉴웨이브' SF의 위기가 벌써 찾아온 걸까? 아직은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운 단계일까. 지난 주말에 티빙에서 <별들에게 물어봐>가 방영 시작했는데 초반부를 보니, 내가 원했던 드라마 방향은 아니다. 하지만 서숙향 작가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우주로 가지말란 법이 어디 있나. 재미있으면 되는 거지.
SF 넋두리는 이쯤에서 접고 이제 작년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12월 31일에 라이카시네마에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봤다. 제목 검색할 때마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라고 쓰기도 하는 헷갈리는 제목이다. 영화는 헷갈리게 만들거나 모호하지 않다. 주인공 빌 펄롱이란 이름이 계속 귀에 맴도는 영화였다. 비슷한 시기에 <오징어 게임> 시즌2를 봐서인지, 두 남자의 이름이 자꾸 오버랩된다. 성기훈 씨나 빌 펄롱 씨 모두 남들처럼 평범하고 조용하게 직장 생활 오래할 상은 아니지 싶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배경 사건인 '막달레나 세탁소' 스캔들과 시대와 공간적 배경이 연관된 고통의 기억을 공유했던 가수가 한 명 떠오른다.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 90년대 저항의 아이콘 중 한명이었던 그녀의 노래 중에서 'Drink before the war'를 참 좋아한다. 드라마 <유포리아>에도 삽입되어 화제가 됐던 그 곡.
아일랜드 출신인 시네이드 오코너가 유년시절에 가톨릭 교단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정신적 학대를 당하며 자랐다고 말한 적 있다. 어릴 때부터 남들과 달라 보이고, 사고도 치고 정신적으로도 불안하던 그를 억압했던 그 시절의 고통은 저항의 동력이 되어줌과 동시에 평생 자신을 옥죄는 족쇄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태도. 체제와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런 걸 생각했다.
빌 펄롱 아저씨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에게조차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고 좌절하지만 끝내 행동하고만다. 쌍문동 사는 성기훈 씨도 456억이란 거액을 손에 쥐게 됐지만 사람들의 목숨값이란 무게를 저버리지 못하고 분연히 총을 들고 일어서 반란군이 된다. 비록 그 반란의 끝이 허탈하거나 참혹할지라도 그 덕분에 역사는 올바른 자리로 흐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빌 펄롱의 내일은, 성기훈 씨의 내일은 과연 행복할까. 그들의 앞날에 좋은 일이 생길까.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를 시작하며 극장에서 본 영화는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신작 <쇼잉 업>이다. 아마도 12월 쯤에 연말 결산을 하게 되면 미셸 윌리엄 주연의 이 영화 <쇼잉 업>을 올해의 베스트 10위 영화 중 한 편으로 고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올해 영화운은 좋다고 할 수 있다.
<쇼잉 업>은 어느 예민한 예술가의 일상에 관한 영화다. 예술가의 일상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고 예술가의 자의식이 그의 일상과 주변 사람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함께 다룬다. 나아가 예술 작품은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가, 세상의 어떤 면을 바라봐야 하는가, 그런 질문과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영화였다.
2024년은 내 자신에게는 힘든 일도 많았고 또 새로운 일도 해봤고 뭔가 잘 안 풀리기도 했던 힘들고 복잡한 시기로 기록됐다. 그 덕분에 2025년에는 좋은 일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