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닫는 건 고통이었다
최근에 개봉한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의 주인공 업무는
불법 음란물 단속이다.
정확히 주인공의 혹은 실제 모티브가 된
방송통신위원회 청소년 보호팀의
'단속' 업무 형태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불법음란물을 매일 봐야 하는 일의 고충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나 역시 비슷한 고충을 꽤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영상물의 심의 등급을
결정하는 일을 한 적 있다.
방통위와 업무 형태는 물론 소속 기관도 당연히 다르지만
그 실무자의 고통은 너무나 공감하는 바,
'안 봐도 비디오'인 일이다.
대략 1년여 동안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
정채진 시간 내에 국내 유통을 원하는
상당수의 영상 콘텐츠의 등급 적합성을
심의하는 일을 했던 나는
꽤 자부심과 보람을 갖고 있을 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의,
즉 등급분류제도의 가장 큰 목적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상물을 가리는,
즉 유해한 영상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고
나아가 국민들에게 올바른 적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다소 엄근진 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일과 제도의 본질은 중요하고 뚜렷하다.
그리하여 내가 했던 일은 이 영상물이
적법하게 유통 가능한지,
아니면 인간 존엄의 가치를 훼손하고
국민 정서를 해할 우려가 있어 제한을 해야 하는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가려내는 일이었다.
이제는 서서히 AI가 이 일을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또 그거대로 정말 중요한 이슈라서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국내 유통을 원하는 수많은 영상물,
그러니까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뮤직비디오,
기타 여러 플랫폼에
유통되는 영상 콘텐츠를 두루두루 살펴봐야 했는데,
이는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 어떤 작품이건
혼자 보고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십 수 명의 위원들이 다 같이 시청하고
전원 백 프로 동의해야
해당 영상물의 등급이 결정되는 구조다.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수많은 영상물을 봤지만
그중에서 성인물의 심의 등급을 심의하는 건
정말 고된 일이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일을 '힘들었다'라고 표현하면
대부분 힘들 게 뭐가 있냐는 식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곤 하는데
성인물 등급 심의할 때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
아무리 다 큰 성인들이라지만
일단 남녀가 회의실에 모여서 거대한 대형 TV에
영상물 띄워 놓고 해당 장면 내지는 프레임이
제한상영가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를
논의하는 회의 풍경은 적응이 쉽지가 않다.
사실 그 수많은 영상물을 보는 나나 심의위원들도 힘들지만
블러와 모자이크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물리적으로
겪어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이 뻗치면
그때부터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배가되곤 했다.
성인이 성인물을 보는 것은 지극히 법적으로
문제 될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성인물의 검열이어서는 안 된다.
등급분류제도가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쪽으로
기능해서는 안된다.
또 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엄청나게
긴 이야기가 될 테니
그 역시 나중에 느낀 바를 이야기하기로 하고...
내가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점 중에 하나는,
국내 영상물 유통 시에 블러와 모자이크가
허용되기 시작한 이후
유통되는 성인물의 퀄리티(?)가 충격적으로
달라지게 됐는데
영상에 찍힌 사람들이 때로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의 영상물이
등급 분류 기준에 이상이 없으므로
심의 등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국내외 작품들 할 것 없이 모두.
나는 그 수많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상물을 보면 볼수록
배우들의 인권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함께 동 시기에 일했던 대다수의 심의위원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도 하고 여러 방면으로 고생을 했지만
세상은 점점 더 선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에 성인물에 주로 출연했던 모 배우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을 때는 나도 솔직히 좀 힘들었다.
심지어 그 분의 영상물 대부분을
내가 일할 때 심의등급을 결정했으니까.
그래서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의 캐릭터 설정을 보고
문득 그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이참에 심의 등급에 대해서 내가 일하면서 느꼈던
겪었던 일들을
더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모자이크 뒤에도 결국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