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녀들, 브루탈리스트, 캡틴아메리카 4 등 밀린 리뷰 한꺼번에
올해부터는 본 영화를 꼼꼼하게 리뷰하겠노라 다짐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보고 난 직후의 짧은 감상은 인스타그램이나 스레드에 대충 남기는데 그걸 다시 다듬어서 길게 쓰려니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해봐야지. 벌써 2월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으니 1, 2월에 본 영화들을 총정리하듯 털고 가야겠다.
<쇼잉 업>
올해 첫 극장 관람작.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첫 장면은 주인공의 미술 작품 스케치.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새의 시점에서 바라본 풀샷. 가끔 영화를 보고 나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 마지막 장면이 뭐였지? 생각이 까맣게 지워질 때가 있다. 이 영화는 볼 때 컨디션이 좋았는지 어쨌는지 뚜렷하게 기억난다.
감독이 어떤 주제를 다뤘고 관객에게 그 메시지가 담긴 어떤 장면을 보여주고 싶은지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분명하게 전달되는 영화다. 어느 예술가가 영감을 막 떠올려 밑그림을 그렸고 우여곡절 끝에 작품을 완성했고 사람들에게 선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다음엔?
예술가가 무엇을 위해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에 무엇을 담아낼지, 그리고 작품을 만든 다음엔 무엇을 할지, 혹은 해야 할지를 다룬 실존적인 고민이 담긴 영화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홍상수 감독의 <수유천>을 같이 떠올렸다. 유사한 소재를 비슷한 형식으로, 그런데 빚어낸 결과물은 완전히 다른 두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럼 감독은 도자기 굽는 화덕 같은 존재인가?
<노스페라투>
뱀파이어 영화의 역사를 '빛'으로 다시 재정의하는 영화.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이 한 줄 감상평이 딱 떠올랐다. 표현주의 영화가 갖고 있는 특징을 현대의 촬영 기법으로 되살려냈다.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적인 계승자라고 하면 바로 팀 버튼 감독을 떠올릴 수 있다. 영화를 처음 보자마자 연결 짓지는 못 했는데 나중에 감독이 직접 <배트맨 리턴즈>에서 꽤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카메라의 무빙이다. 시간과 공간을 뒤틀면서 호러 영화의 분위기를 굉장히 잘 살렸다.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보이는 물리적인 공간이 실재하는 그대로가 아니라 확장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시간성도 뒤틀린다. 몽환적이지만 공포스럽기도 하다. 인물의 얼굴 주변이 죄다 깜깜해서 뭐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음악도 기분 나쁘게 소름 끼쳐서 으으...
원작 영화인 무르나우의 1922년 무성영화의 대사와 장면을 재미있게 오마주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She is the way!"라고 외치던 윌렘 데포의 강렬한 연기도 기억에 남는다. 이미 많은 평론가들이 언급했듯이 드라큘라와 희생당하는 여인의 관계는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구조를 비유하기도 하고 섹슈얼리티를 내포하기도 하는데 주인공 엘린의 희생을 전시하는 결말로 가지 않고 그것이 인류를 위해서 그녀 스스로 선택한 길이란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검은 수녀들>
언론시사회 직후 반응이 굉장히 안 좋게 흘러가서 의아했다. 여성혐오를 다룬 영화가 아닌데, 으응? 오해할만한 부분도 그다지 이해가 안 됐다. 보고 싶은 대로 보면 그래 보일 수 있겠지 싶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오해도 감당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게 내 입장이다. 그러므로 창작자들은 더욱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 160만 관객이 넘게 들었는데 초기 반응만 더 좋았다면 300만 정도는 더 갈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다. 여성 관객들이 좀 더 즐겨줬다면 어땠을까. 왜냐하면 송혜교, 전여빈 두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한때는 오컬트 영화를 만들어 놓고서는 오컬트 영화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영화사도 있었다. 그만큼 마케팅에 있어서 장르적 편견은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제는 오컬트 영화가 흥행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송혜교 배우가 첫 장면에서부터 수녀복을 입고서 담배 피우는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보는 쾌감이 남달랐다. 여자가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면 어른들에게 뺨 맞는 시절을 우리 모두 통과했다. 진짜로 그런 때가 있었다. 혼란스러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을 뒤집고 흔드는 재미를 선사하는 게 바로 장르 영화다.
<리얼 페인>
작년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본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홀로코스트를 다룬 속 깊은 영화를 또 보게 되다니. 이 영화는 사실 유태인 이민자 3세대의 고민을 다룬 영화다. 영화감독들도 세대가 달라지면서 고통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역사의 상흔을 스펙터클한 이미지에 실어 영화적인 충격을 주는 대작 영화들을 보고 자란 이후 세대라 할 수 있는 배우 겸 감독 제시 아이젠버그는 <리얼 페인>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세대의 고민을 본인 성정에 딱 어울리는 특징을 지닌 영화를 만들었다.
두 개의 돌멩이. 계획적이고 소극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데이빗과 제멋대로 구는 벤지의 여행길은 매우 위태롭지만 두 사람은 종교적 갈등과 정치적 올바름, 세계의 균형에 대한 고민을 삶에 직접 적용하려는 젊은 세대들을 대변한다.
과거의 어른 세대들은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국가나 종교가 강요한 질서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죽었으니까. 적어도 21세기에는 생각을 품는다고 죽음의 위협을 받지는 않으니. 그런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갖게 된 공포, 두려움, 고통은 하찮은 걸까. 결코 아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해 볼까. 이 영화는 유태인이 자기 변명하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지는 말자.
<9월 5일: 위험한 특종>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간의 오랜 갈등의 역사를 다룬 영화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새로운 시각과 형식을 가지고서. 이 영화는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검은 9월단'이 1972년 믠헨 올림픽 당시에 이스라엘 선수들을 납치, 살해했던 뮌헨테러 사건 현장을 전 세계에 생중계해버린 ABC 방송국 스포츠팀의 방송 현장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는 영화다. 20세기 아날로그 방송 시절의 고민을 다룬 저널리즘에 관한 영화인데 21세기의 저널리즘에 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는 영화다.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쟁이 벌어지면 전쟁 상황이 SNS로 실시간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잔혹한 폭력의 현장이 굳이 퍼지지 않아도 될 곳과 사람들에게까지 보여 고통과 갈등을 안겨준다. 심지어 또 무슨 문제가 발생하게 됐냐면, 모두가 같은 걸 보고 있는데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왜곡해서 본 다음 그릇된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본 대로 전한다, 즉 사실을 보도하는 시각과 관점에 대해서도 저널리즘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법 표현을 써보자면, 실체적 진실을 전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 과연 있을까?
<시빌워: 분열의 시대>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주인공은 마지막 순간에 찍어야 할 것을 찍지 않고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후배의 목숨을 구해주지 않나. 평생을 저널리스트로 몸 바쳐 살았던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던져준다. 영화의 부제가 지금도 가슴을 때리고 있다. 말 그대로 분열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make break up great again' 언제가 더 고통스러운 시대인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갈등이 치닫고 있다.
<브루탈리스트>
나는 영화에서 뭐든 질주하는 시점샷이 나오면 환장한다. 특정한 세계로의 진입을 표현하는 아주 상투적이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은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의 시점샷이나 다리를 건너는 자동차의 시점샷이다. 또 다른 세계로의 이동 통로. 그게 영화가 가진 본질이자 매력이 아닐까. 이 영화에는 그런 매력적인 질주의 시점샷이 몇 차례 등장한다. 혼자 고개를 까딱거리며 춤추듯 그 장면들을 즐겼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브루탈리즘 스타일의 콘크리트 건물은 그 자체로 헝가리 출신의 유태인 이민자 건축가 라즐로(애드리언 브로디)가 겪어야 했던 고통의 역사를 상징한다. 돈 많은 자본가 해리슨 반 뷰런(가이 피어스)을 만나 거대한 건축물을 지었는데 알고 보니 그 건물이 수용소에서 자신이 갇혀 있던 방을 상징한다? 미국의 자본에 빅엿을 날리는 통쾌한 이민자의 복수극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결과가 좀 폭력적으로 묘사되는 구석이 있다.
<브루탈리스트>는 브래디 코벳 감독이 비스타비전 포맷으로 찍어 인터미션까지 삽입해 가면서 고전 영화의 관람 형태를 그대로 복각함으로써 필름의 역사를 추억한다. 아이맥스 필름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하는 필름 포맷이었기 때문에 지금 필름으로 다시 보면 놀라운 표현력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온전하게 즐기기 어렵다. 필름 상영하는 극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반듯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외벽들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서브스턴스>의 첫 장면을 볼 때도 미칠듯한 아름다움을 비슷하게 느꼈다. 반듯하고 정교하게 보도블록을 만들고 장식하던 모습을 직부감샷으로 찍은 장면. 왜 이렇게 멋져 보이던지. 그 첫 장면에서 시각적 쾌감을 느꼈던 기억이 나는데 <브루탈리스트>에서는 거대한 공사 현장의 크레인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공들여 풀샷을 멋지게 찍기도 했고.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MCU 시리즈 중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단독 주연 영화가 이제 4편째이다. 그 시작점인 <퍼스트 어벤져> 언론 시사회 끝나고 나오던 십수 년 전의 왕십리 CGV 상영관 출구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들 어찌 반응해야 할지 어리둥절했고 소수의 기자들만 조 존스톤의 클래식한 어드벤처 무비 스타일에 열광했다.
그때만 해도 반미 감정 때문에 개봉명에서 '아메리카'를 뺐던 시기다. 세상은 빠르게 달라졌고 마블이 십 년 동안 장기 집권했다. 스티브 로저스로부터 방패를 물려받은 2대 캡틴 샘 윌슨과 하이드라에서 전향한 버키는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팔콘과 원티솔져>에서 서로의 아픔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콤비가 되었다. 둘은 아이언맨과 사이 안 좋았던 1대 캡틴 아메리카와 달리 정치적 이견도 없다. 그런데 안타깝다. 드라마에서 사실상 캐릭터의 설정이 그대로 이어지는 이번 영화는 스티브 없는 샘 윌슨의 2대 캡틴 아메리카 첫 단독 주연으로서 홀로서기에 실패한 모습을 보여준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언제나 악당이 중요하다. 이번 영화의 주적은 그래서 누구인가. 2대 캡틴 샘은 다 같이 잘 살자며 '투게더'를 외치는 대통령에 복수하려는 세력을 막아야 한다.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악당의 존재감이 약하다. 나쁜 짓의 명분도 실효성이 좀 떨어진 느낌이다. 스포일러라 밝히기 어려운 그 인물이 국가의 입장에서는 버려진 사람이라는 건데 이미 드라마 <팔콘과 슈퍼솔저>에서 다뤘던 슈퍼솔져 실험의 희생양이 된 이사야가 훨씬 감정이입된다는 게 단점이다.
악당도 약하고 우리 편도 약하다. 제작진이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현실의 미국 대통령 행보와 정확히 반대되는 대통령을 보호해야 하는 샘의 곁에 버키가 없다. 버키가 없으니 샘이 혼자서 고군분투하다가 계속해서 "혈청 맞을걸" 중얼거린다. 이러다가 다음 시리즈나 다음 영화에 등장할 때 혈청을 맞을 판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샘과 버키가 단짝처럼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걸, 혈청 없는 슈퍼히어로는 재미가 없다는 걸 증명한다.
샘 윌슨이 혼자서 개고생 하고 있을 때 단짝 버키는 MCU에서 잠시 멀어져 진짜 대통령 다룬 영화에 출연했다. (버키 역의 세바스찬 스탠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어프렌티스>에서 젊은 트럼프를 연기했다.) 샘이 현실의 미국 대통령과 대조적인 모습의 대통령을 보호해야 하는데 그의 단짝 버키는 MCU를 벗어나서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다. 심지어 지금 미국의 지도자가 어떤 삶을 살아온 인물인지 그에 관한 적나라한 시각을 보여준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하다니. 정의로운 2대 캡틴 샘은 만약 버키가 연기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의 의견을 따를 수 있을까. 그럼 샘과 버키 둘은 싸워야만 하는 건데... 나는 이렇게 영화를 넘나드는 관계를 따져보는 게 재미있다.
<어프렌티스>는 화면비도 1.50:1로 거의 4:3 비율에 가깝게 가로를 잘라버렸다. 미국, 정확히는 1980년대 뉴욕의 폭압적인 성장 아래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서민, 하층민이) 고통을 받았다. 사업 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빌딩과 호텔을 짓는데 전부 시민들의 세금으로 짓는 거다. 그리고는 그 블록에 못 사는 사람들 내쫓고 일 시키고 돈 안 주기도 하고. 나중에 건물 지어서 수익 벌어들이면 그 혜택은 자기가 고스란히 챙겨 부를 축적하는 장사꾼의 삶. 그런 남자의 젊은 시절을 이 영화는 80년대의 필름 질감으로 오래된 기록물처럼 보여주기 위해 화면비를 구성했다. <브루탈리스트>의 스타일하고도 연관이 있다. 두 영화는 닮았는데 <브루탈리스트>의 스타일이 좀 더 영화적으로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미국의 리더들로 인해서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해서도 역시 <브루탈리스트>와 비교된다. <어프렌티스>에서 젊은 도널드 트럼프의 세계관을 설계한 악명 높은 변호사 로이 콘은 재미있게도 대사에서 "브루털"한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며 언급된다. <브루탈리스트>에서 제목이 지칭하는 브루탈리스트가 누구인지 연관 지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프렌티스>에서 로이 콘을 연기한 배우 제레미 스트롱은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는데 <리얼페인>의 키어런 컬킨과 경쟁한다. 세바스찬 스탠은 주연상 후보 부문에서 애드리언 브로디와 붙는다.
제레미 스트롱과 키어런 컬킨 두 사람이 드라마 <석세션> 시리즈 내내 어떤 갈등을 겪는 형제로 나오는지 생각해 보면 두 배우 모두 <석세션>의 영향 아래 있는 연기를 하고 있다. 나는 <석세션>의 엄청난 팬이다. 두 번이나 봤는데 웨이브에서 전부 사라져 슬프다. HBO 맥스 채널의 양질의 드라마들이 다시 국내 서비스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 마블과 필름의 미래는 어디로?
얼마 전에 마블의 신작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의 예고편이 공개됐는데 이 영화는 MCU 페이즈 6을 알리는 첫 영화가 될 예정이다. 프로덕션 디자인이 아주 눈길을 끌었다. 이미 여러 차례 만들어서 부침을 겪은 '판타스틱포' 멤버들을 다시 소환하면서 마치 현재의 MCU 지구(지구 616)가 아니라 멀티버스 어딘가의 또 다른 지구에 존재하는 슈퍼히어로처럼 묘사한 게 이번 예고편의 특징이다.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예고편에는 재미있는 특징이 과거에 존재했던 와이드스크린 필름 영사 포맷의 형태인 시네라마의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다가 마블 스튜디오 로고로 꾸몄다는 점이다. 그리고 <브루탈리스트>의 브래디 코벳 감독이 활용했던 비스타비전 필름 포맷의 상징적인 로고를 가져다가 '판타스틱비전'이란 포맷의 형태로 영화가 상영될 것을 암시했다. 20세기 영화 역사의 흔적을 재미있게 오마주 했는데 그건 바로 여기가 아니라 또 다른 지구에서 펼쳐지는 20세기 문명사의 흔적일 것 같다.
필름은 현존하는 어떤 디지털 광학기술로도 그 놀라운 해상도와 빛의 질감을 구현하지 못한다. 8K, 16K 같은 말도 안 되는 숫자로 화질을 논하는 데이터 시대가 도래했지만 결국 필름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 같다. 적어도 이번 세기에는 말이다. 다음 세기에는 어찌 될지 나는 모르지.
올해 <선더볼츠>나 몇 편의 드라마가 공개 예정이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마블 페이즈 6 이후에 루소 형제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복귀해서 다시 어벤져스 특유의 이벤트를 선사할 예정인데 마블의 역사 유산이 공고해서 웬만하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멀티버스에서 위기가 찾아오는데 그게 우리 모두가 아는 추억의 아이언맨 얼굴을 한 닥터둠이다. 맨 정신으로 싸울 수 있겠나. MCU 내 전 세계 사람들이 멘붕에 빠져들 것이다. 슈퍼히어로 영화도 계속 보고 싶고 필름으로 찍어낸 영화도 계속 필름 상영으로 보고 싶다. 이뤄지기 쉽지 않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