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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노 Dec 23. 2022

올해 최고의 K-드라마/시리즈는?

우영우일까, 나희도일까.




영화기자로 일하다가 올해 초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드라마를 정말 많이 봤다. 일을 하든 안하든 직업병(?) 수준으로 늘 뭔가를 찾아 보기도 했거니와 재미있는 작품들이 특히 많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꼽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들 가운데에서 베스트 5 순위를 매겨봤다. 


이 순위는 내가 일했던 씨네21에서 매년 조사하는 올해 최고의 시리즈 설문 (해당 기사 링크는 여기.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101633)에 제출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1위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선정 근거 : 올해는 드라마가 영화를 상대로 완벽한 K.O 승을 거둔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작년에 이어 챔피언 방어에 성공했다고 봐야 할 것 같고, 결정적 승부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죽어가던 극장가의 불씨를 되살렸던 <범죄도시2>의 천만 관객 반응보다 더 열기가 뜨거웠다고 해야 할까. 화제성, 존재감은 단연 1위다. 각 언론사마다 정치, 경제, 연예부가 대동단결하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관련 기사를 쏟아냈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작품 공개 이후 제작사 주가가 연일 치솟은 것도 주목할 현상 중 하나다. 그만큼 과열 양상을 띄긴 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에 감동한 시청자가 많았지만, 주변 인물 묘사에 있어서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지적하는 시선도 있었다. 각 에피소드별로 별개의 사건이 1, 2화에 걸쳐서 진행되는 방식이라 캐릭터들의 성장 과정, 여러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 등 부족한 점도 보인다. 그럼에도 가족 드라마, 법정 드라마, 오피스 드라마, 성장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2위 : 스물다섯 스물하나


선정 근거 : 힘차고 건강한 기운을 지닌 캐릭터들과 그들의 성장 서사가 조화를 잘 이룬 청춘 드라마였다. 복고, 레트로, 세기말이 가리키는 그 때 그 시절, 20세기 말의 정서와 스타일을 재현하는데 성공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작품의 지향점이 분명해서 레퍼런스 흔적도 뚜렷하다. 드라마의 오프닝 타이틀 신은 애니메이션 <슬램덩크>의 오프닝 타이틀 신을 실사로 옮긴 듯 흡사하고, 그 때 그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처럼 스포츠 드라마 속 전형적인 캐릭터 대결 구도도 선명하다. 클리셰를 배우들의 매력으로 극복한 경우다. 어떤 시대이든 어떤 작품이든 창작자가 원하는 스타일을 구현하는 건 어렵고, 또 대중이 호응하게 만드는 건 더 어렵다. 청춘 드라마라는 장르적 한계, 젊은 배우들의 인지도 등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음에도 기획 의도가 대중에게 잘 전달됐다고 본다. 올해 드라마 촬영지가 화제가 된 작품이 서너 편인데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그 중 하나다. 매력적인 작품 컨셉 디자인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점에 주목해서 순위에 올렸다. 올해 tvN 드라마 최고의 작품은 뭐랄까, <작은 아씨들>도 있지만 그래도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3위 : 서른, 아홉


선정 근거 : 올해 가장 많은 위안을 안겨준 작품이다. 미조, 찬영, 주희 세 친구의 우정과 그들 곁에서 함께 성장하는 남성 캐릭터의 조합이 훌륭했다.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 세 배우가 고르게 주목받은 가운데 연우진, 이무생 배우의 어울림이 돋보였던 것. 연우진, 이무생 두 배우의 이전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조합은 또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3040 직장인 세대라면 너무나 공감할 에피소드가 많았고 많은 인물들이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은 여느 멜로 드라마 못지 않은 절절함으로 시청자를 울렸다. 통속적인 관계를 상투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다. 



4위 : 작은 아씨들


선정 근거 : 이 드라마는 <오션스 일레븐>처럼 일종의 성공한 범죄 서사다. 약자들이 모여 이길 수 없는 악당들을 끈질기게 추적해 무너뜨리는 통쾌한 매력이 있다.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톱니바퀴 같은 개개인의 각성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일깨워 주기도 했다. 드라마 속 세 자매의 성격이 제각각이고 정치적 노선도 달라서 연대가 쉽지 않아 보이지만 마치 인피니티 스톤 모으는 과정을 보듯 각자 맡은 바를 다하면서 능력치를 모으고 모아 한방 크게 날리는 과정의 조율이 좋았다. 여성 캐릭터들이 연대함으로써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범죄 서사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작년 <구경이>의 뒤를 잇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마디로, 탈주에 성공하는 여성들의 질주를 다룬 이야기라고 부르고 싶다. 그만큼 다루는 세계, 싸워야 할 대상이 방대하고 촘촘하게 조직되어 있음에도 보통의 16부작 정도가 아닌 12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서 다소 진행이 빨랐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최종 브레인 역할을 하는 진화영 캐릭터를 연기한 추자현 배우의 존재감은 신의 한수로, 정서경 작가의 힘이 돋보이는 캐릭터 설정이었다. 역사를 소재로 다루는데 있어서 한국이 가해자의 위치에 선 사건들의 경우 좀 더 신중한 창작 견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문제도 생각해보게 만든다.



5위 : 소년심판


선정 근거 : 이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심은석 판사가 판결을 하기에 앞서 피해자들 사진을 눈 앞에 두고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김혜수 배우가 직접 심은석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재판에 임할지를 고민했고 제작진에게 이런 디테일을 제안했다고 한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발언 뒤에 숨겨진 진의를 서서히 파악하고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소년심판>은 촉법소년이라는 예민한 사회적 이슈를 섬세하게 다룰 필요성을 대중에 피력하는 데는 성공했다. 예술작품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법정 드라마로서의 온도와 심은석이 거리로 나서서 직접 십대 청소년들을 대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현장의 묘사 온도가 극명하게 달라서 불협화음이 다소 일었다. 세기말 감성이라고도 불리는 1990년대 한국 영화 속 십대들의 눈빛이 공허했다면, <소년심판>의 십대들 눈빛은 오직 분노와 광기로 가득하다. 이들의 분노는 작년 <D.P.>가 보여줬던 슬픔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재판정에 나선 그 아이들은 슬퍼 보이지 않았으니까.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임과 동시에 창작자 입장에서 윤리적 재현 문제도 고민해봄직한 이슈를 같이 던져줬다.




사실 위의 5편만 꼽기가 굉장히 어려웠을 정도로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많았다. 기억나는대로 본 드라마들에 대해서 각 OTT 플랫폼 작품 별로 한마디씩 덧붙이자면,




먼저,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는 한국 VFX 기술력을 한 차원 끌어올린 선구적인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쉽게 도전하기 어려웠던 LED월을 활용한 버추얼 프로덕션 촬영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SF에 대한 국내 창작자의 기획력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초반부 식당 장면에서 <부산행> 이상의 쾌감을 느꼈다. 소위 학원폭력물의 불편하지만 거부하기 힘든 매력도 느낄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십대들이 피칠갑을 하고 등장하는 선정적인 이미지들이 드라마 내내 쏟아졌으니까. 장르팬으로서 삭당 장면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캐릭터 빌딩도 아주 잘 된 사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재규 감독의 연출력, 기획력을 높이 평가한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성공적인 족적을 남긴 몇 안 되는 감독이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커리어가 빛을 발한 케이스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뒤를 이을 감독을 꼽는다고 하면 다음 자리는 그가 차지할 것 같다.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다. 배우들의 연기가 공회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세트 디자인의 문제일까. 조명의 문제일까. 배우들의 연기가 문제일까. 아무런 공감이 안 되는 각색의 문제일까.


<모범가족>은 좋은 재료를 지녔는데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이 내용물을 받쳐주지 못했다.


<수리남>은 캐릭터가 지닌 매력의 크기에 비해 작품의 규모가 너무 과했다고 생각한다. 하정우 배우의 연기가 물론 너무 잘하기는 하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좀 기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리치>도 기획은 좋았지만 전반적으로 아쉬웠다. 캐릭터는 좋았고 이야기는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았고 진행이 느렸다. 회차 구성, 전개 방식의 정돈이 필요해보였다. 하지만 나나 배우의 활약은 돋보였다. 배우로서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이 작품에서 (그리고 영화 <자백>에서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웨이브의 <약한영웅 Class 1>는 배우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주연을 맡은 박지훈, 최현욱, 홍경, 이연 배우 모두 에피소드 내내 훨훨 날아다녔다.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최현욱 배우를 주목하게 됐다. 그의 가능성은 이미 <라켓소년단>에서부터 입증되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문지웅과 <약한 영웅>의 안수호는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권상우와 박서준 사이, 안전한 터프가이의 계보를 만들어갈 상이다.


<트레이서>는 오직 임시완만 할 수 있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데.. 청량하고 동시에 청렴한 연기 ㅎㅎ 를 잘 보여줬다.


티빙의 <내과 박원장><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두 편은 모두 원작을 가진 작품으로서 성공적인 각색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장르적인 재미도 충분했고. 


<장미맨션>은 이상하고 끈적끈적한 매력으로 가득 차 있다. 기분 나쁜 설정을 과하게 밀어붙이는데 매니악한 터치가 개성으로 작용했다. 이준익 감독의 <욘더>는 실망감이 컸고 <몸값>은 기획력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단편이 가진 매력을 이렇게 확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올해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가 모두 아쉽다. 전부 1, 2회 정도 보다가 멈췄다. <설강화>는 끝까지 보면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고들 이야기했지만 그 시대는 과장한다고 해서 될 게 아니다. 제대로 위로도 못했는데 아직 이런 식의 터치가 이르다고 봤다. (비슷한 문제의식은 <헌트>도 공유한다.) 


왓챠의 <좋좋소> 시즌4, 시즌5는 자본이 들어가니 본래의 개성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마이너한 매력이 사라졌다.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과 <사내맞선>도 로맨스 장르의 저력을 잘 보여줬고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경찰 조직 내에서 구태와 싸워 나가는 새시대의 인물의 이야기와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기 시작하던 당시의 과정을 잘 엮어낸 작품


<그린마더스클럽>은 아쉽게도 베스트5에 못 들어갔을 정도로 좋았다. 추자현 배우의 연기, 놀라웠지. 


맞다. <나의 해방일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지. 올해 빛나는 작품은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들었다. 연초에 외롭게 활약한 <옷소매 붉은 끝동> 이준호 배우의 존재감을 단번에 압도한 이는 단연 손석구였다.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섹시함을 어필하는 독특한 배우가 탄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언급해야 하는데 빼먹은 작품이 있을까... 오피스 드라마로서의 완성도가 좋았던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과 강하늘 배우의 연기 변신이 돋보였던 <인사이더>도 봤었네. <인사이더> 같은 작품은 평가를 후하게 할 수는 없지만 교도소 드라마에 도박 드라마 설정을 덧붙여서 독특한 매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판빙빙 배우가 등장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었던...


2022년에 드라마를 완주한 작품이 35편이 훌쩍 넘는다. 해외 드라마까지 더하면 매주 하나의 시리즈를 완주한 셈이되는데, 정말 많이도 봤다. 이런 한국 드라마의 기세는 내년에도 열기가 식지 않고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가능성을 올해 충분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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