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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노 Dec 22. 2022

한국영화와 닮은 뉴진스 디토 Ditto 뮤비

20세기 소녀들의 생존기

뉴진스 신곡 Ditto 뮤직비디오는가 공개되자마자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걸 보며 덩달아 관련 내용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팬들이 이야기하고 해석해놓은 것처럼, 뉴진스 신곡 Ditto 뮤직비디오는


아이돌과 팬 사이의 관계,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어떤 회복과 회상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나 역시 그런 의견에 충분히 디토.


그런데 거기에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뮤비 내내 등장하긴 하는데 제대로 얼굴을 비추지 않는 '희수'의 정체에 관한 또 다른 해석.


두 개의 뮤직비디오 사이의 맥락에 대해서도 좀 더 궁금해졌다. 왜 두 편으로 나누어 만들었을까??


희수와 멤버들, 그리고 희수와 시선이 마주친 남자애, 희수가 직접 캠코더로 찍기도 하는 남자애의 정체는 뭘까. 정말 팬덤을 상징하는 것 외에 다른 뜻은 없을까. 이런 여러가지 궁금증들을 조금 더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뮤직비디오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한국영화에서 다져온 것들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여고괴담2>의 정서와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고, 학교를 소재로 다루는 프로덕션 디자인도 꽤 닮아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학원물 특히 여학생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 가운데에서 중심축에 속하는 작품이기도 하니까,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또 마침 박지후 배우가 출연하기도 했던 김보라 감독의 <벌새>에서 주인공 은희가 갖고 있었던 아픔과 정서가 이번 뮤비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돌 출신 배우 방민아가 주연을 맡은 이우정 감독의 <최선의 삶>도 빼놓을 수 없다. <벌새>는 90년대, <최선의 삶>은 2000년대 초반을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두 영화 속 주인공들의 심리, 시대의 공기는 그 때 그 시절을 거쳐온 모두가 공감할만한 요소들이다. 과거엔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실은 소년소녀들의 꿈과 열정을 꺾고 심하게는 죽음으로까지 내몰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돌아보고 후회하고, 반복하지 않으려 하는 회한의 정서는 (공교롭게도 여성감독들이 만든) 위의 한국영화들과 이 뮤비의 공통분모다.


그래서 더욱 뮤비의 제목이기도 한 '디토'에 내가 꽂히기도 한 것 같다. 친구들(뉴진스같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따뜻한 공감의 시선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소녀의 마음, 혹은 친구들이 있었다면 조금 더 나은 방법으로 그 시절을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마음.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는 측면에서 뮤비의 몇 가지 요소들을 들여다봤다.



우선,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각 시간대마다 화면비가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우린 또 화면비 달라지는 거 민감하지 않나. 왜냐하면 반드시 용아맥에서 봐야 하는 영화 리스트에 이런 가변비 영화들 꼭 들어가니까. ㅎㅎ


이번 디토 뮤직비디오 역시 장면마다 화면비가 계속 바뀌는데 여기엔 일정한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을 통해서 화면 너머의 화자, 그러니까 찍는 사람, 지금 이 화면을 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구분된다.

여기에 이번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이야기/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디토 뮤비에 담긴 메시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구조가 굉장히 독특한데, 관객들은 영화가 시작하면 이상하고 어설픈 좀비 영화 <원컷 오브 더 데드>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 안의 또 다른 영화인 <원컷 오브 더 데드>가 끝나면 시간은 한 달 전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를 기획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이게 2부) 3부에 이르면, 관객들이 처음에 봤던, 그러니까 1부에 해당하는 <원컷 오브 더 데드>의 메이킹 현장을 직접 체험하듯 보게 된다. 그리고 충격과 감동이 뒤섞인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이 영화 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느냐면, 한 편의 영화 안에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들과 카메라를 들고 찍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뒤섞여 있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구조가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인데, 뉴진스의 뮤비 Ditto 역시 그런 재미 포인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


다시 뮤비 이야기로 돌아가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이드A에서 보여지는 5명의 멤버들의 모습,

희수의 캠코더에 찍힌 친구들의 모습은 모두 환상처럼 보인다.


얼굴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정확히는 눈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 그 소녀의 꿈 혹은 환상.


혹은

그 때 내게(희수에게) 친구라는 존재가 있었다면 내가 좀 더 지혜롭게 그 시절을 버텨내지 않았을까, 라는 회한의 정서가 뮤비 전체를 휘감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제 그렇게 느낀 근거를 하나씩 소개해볼텐데,


우선, 이 뮤직비디오에는 모두 3개의 서로 다른 화면 비율을 가진 화면이 등장한다.


첫 장면, 뭔가 성인인 것으로 짐작되는 여자가 비디오테이프(VHS)를 재생하는 장면은


요즘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2:35:1 스케일의 비율이고,

(편의상 1번 세계라고 부르자.)



그 다음 비디오테이프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는 과거 장면은 (이 장면에 주로 뉴진스 멤버들이 등장)

4:3 비율로 이뤄져 있다.

(편의상 2번 세계라고 부르자.)










그런데 과거의 희수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화면 비율이 또 바뀐다.


우리가 흔히 16:9 비율이라고 부르는

HD TV 사이즈가 등장하는 것.

(편의상 3번 세계라고 부르자.)






이런 화면비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다시 뮤비 속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벌새><지금 우리 학교는>의 박지후 배우가 연기하는 희수는 (이름이 왜 희수인지는 처음에 누가 부르면서 알게 된다.) 자신을 바라봐주고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멤버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지만 뮤비 후반에 가면 사실 희수의 앵글에는 아무도 찍히고 있지 않다는 게 드러난다.



(16:9 비율의 화면인 3번 세계 속) 진짜 현실에서 희수는 왕따나 다름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거나,

아니면 친구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거나,


혹은 한쪽 팔의 깁스 상태인 걸로 보아, 마음이나 신체가 아픈 상태로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런데 희수를 보여주는 진짜 현실인 이 3번 세계 안에서 유일하게 희수에게 눈길을 주는 등장인물이 딱 한 사람 있으니,


그가 바로 최현욱 배우가 연기하는 소년이다.



뉴진스 멤버들은 1번 세계에는 등장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희수를 관통하는 1, 2, 3번 세계 모두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이 소년인 것.


이 친구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궁금해진다.


희수의 아픔을 알아봐준 사람,  희수가 보내는 어떤 신호를 감지한 유일하는 사람이었을까.


희수가 알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알 수 있는 컷은 더 있다.

바로 비가 오는 건물 앞에서 멤버들과 함께 멈춰 서 있는 장면.


비가 오는 상황에서 (고통, 역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희수는 혼자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데, 사실 이건 그 시절의 어떤 아픔을 진짜로 겪은 사람이 희수 자신임을 가리키는 장면이다.


근데, 이 장면이 따뜻한 이유는

친구들이 왜 혼자 아프려고 하느냐, 우리가 같이 있어줄게, 라는 의미로 함께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


감동적인 순간이고 바로 뒤이어서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게 또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반전 모먼트를 준다. (친구들은 사라지고 매니큐어만 남아 있다. 2번 세계인 캠코더 속에 담긴 영상이 사실 진짜가 아니라 희수의 환상/꿈에만 존재한 순간이었음을 뮤비의 시청자들이 깨달을 수 있게 배치한 장면이다.)



그 다음 이어지는 장면의 앵글이 좀 주목할만한데,



6명의 아이들이 모두 같은 자리에서 담겨 있는 이 장면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그 동안은 늘 희수가 이들을 찍어주고 있고 카메라를 들고 등장했는데

처음으로 다 같이 쇼파에서 쉬는 장면이 등장했기 때문.


이제 뮤비는 서서히 그 동안의 친구들과의 에피소드가

희수의 환상/꿈이었음을 보여주려 한다.



편집을 통해서 희수가 설원에서 보게 되는 사슴은 일종의 해리포터와 패트로누스의 관계와도 같은 거라고 봤다.

비록 꿈 속에서의 환상일지라도 희수의 곁에서 수호신처럼 머물면서 희수를 지켜주겠다는 의미. 그런 의미를 수호신인 사슴이 희수에게 꿈을 통해 전달하고...


희수는 잠에서 깬다. 깨어보니 친구들과의 추억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새끼 손가락에 매니큐어의 흔적만 남아있게 된다. 친구들과의 꿈이 마치 현실의 경계를 넘어 들어와 희수에게 표식을 남기고 떠나간 것처럼.


그리고 드디어 다시 등장하는 1번 세계 화면비



이 화면비의 장면이 이야기해주는 건, 실은 그녀의 카메라 앞에 아무도 있지 않았다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1번 세계 화면비와 희수의 진짜 현실을 보여주는 3번 세계 화면비가 다른 이유는, 1번 시점은 (성장한 희수의) 현재, 3번 시점은 어린 시절의 희수의 상황을 보여주는 시점이라서다. 두 화면이 보여주는 시간대가 미묘하게 다르다.


지금의 성장한 희수가 비디오테이프를 되돌려보면서 새삼 발견하게 된 과거의 기억 속에는, 즉 그 때 그 시절 속 희수는 반 아이들에게 외면당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아이들이 작게 중얼거리는 걸 들어보면, 교실 구석에서 "쟤 이상한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게 들린다.

 

어쩌면 실제로 희수는 학창시절에 친구들로부터 망상증 환자이니 뭐니 라는 소리를 들으며 외면받았거나,

(아니면 이 뮤비 전체가 하나의 비유라고 가정한다면,) 희수가 가진 아픔, 상처를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던 거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다. 그래서 옥상에서도 늘 혼자 있는 거고...



사이드A 뮤비의 후반부, 희수가 혼자서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는 장면...

진짜 희수의 현실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리고 첫 번째 뮤비는 끝이 난다.


이렇게 뮤비 속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 '희수'의 상황에 관한 뇌피셜 해석을 길게 늘어놓아 보았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버텨온 희수가 추억 속 비디오테이프를 다시 꺼내 들여다보면서 과거에 그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후회도 해보고 미련도 가져보고 자기를 유일하게 바라봐주었던 소년의 존재도 새삼 깨닫게 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뮤비에 담아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뮤비 속 뉴진스 멤버들의 존재가 진짜냐 아니냐가 아니다.


비록 조악한 VHS 화질일지라도 그 안에 담겨 있는 과거,

즉 4:3 화면비의 영상이 상징하는 '추억'이란 것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지,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지를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그런 메시지에 우리가 '디토'할 수 있다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아까 초반에 언급했던 <벌새><최선의 삶> 같은 한국영화들이 보여주는 정서와도 닮아 있다.


해석이란 건, 보는 사람들의 자유이고 뇌피셜의 영역이라서 딱히 틀리고 맞고가 없다.


실은 여기서 이야기한 모든 건 제작진의 의도한 바는 아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뉴진스와 팬클럽 바니스, 아이돌과 팬의 관계란 뜻을 내포하고 있는 뮤비일 수도 있고. 근데 역시 해석은 자유라서 마음대로 살을 붙여도 된다.


그런데, 여기까지 설명을 했는데도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지 않나. 그건 바로 사이드B의 정체. 이 부분도 여러가지로 마음가는대로 해석해보면 될 것 같다. ㅎㅎ


위에서 이야기한 화면비 차이에 따른 현실의 진실 유무를 따져가면서

사이드B 영상을 본다면,


뭔가 좀 달리 보이게 되는 게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옥상에서 집어던지는 캠코더 장면 같은 것들)


사이드B 영상 전체의 시점이 바로 지금의 '희수'이기 때문.


그 시절의 모두가 그랬듯, 20세기의 소녀들은 모두 살아남아서 어른이 됐다. 그 땐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끔찍하고 처참한 현실이 되게 많았다.

그런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수많은 이유 중에서 '친구'의 존재 (혹은 지금의 아이돌이란 존재) 가 좋은 의미로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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