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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윤 Jan 15. 2023

소속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유치원 이래로, 처음 '소속'을 벗어났다

소속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무소속’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를 지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는 퇴사(혹은 자퇴나 은퇴일 수도)를 고민하는 자들이 절실히 깨닫는 것 중 하나다. 되돌아보면, 나는 ‘소속’에 절절 매는 모범생으로 살아왔다. 재수가 두려워서 반수를 했고, 백수가 두려워서 졸업을 유예했다. 이직을 할 때도, 다음 회사와 연봉 사인을 할 때까지 다니던 회사에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언제나 가장 매끄럽게 소속을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틈이 너무 벌어지면, 발에 걸려 넘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 두려움이 지금까지의 나를 있게한 원동력 중의 하나일까. 




반수에 성공하고서 휴학을 걸어 놨던 학교에 자퇴서를 내던 날이 선명하다. 자퇴서를 내러 학과 사무실에 갔더니, 담당 교수부터 학과장까지 면담을 하고 오라 하더라. 백발의 커트머리가 우아했던 학과장님의 화난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우아해 보이는 그녀는 아주 무서운 목소리로 나를 설득했다. 




“자네가 여기 들어오는 바람에, 누군가는 아주 간절히 원하던 기회를 놓친거야. 너는 그 자리를 뺏고 여기 온거라고. 그걸 생각하면, 이렇게 쉽게 자퇴할 수 없을텐데.” 




한마디로, 반수를 결심하고 여기에 한 자리 차지 하고 있는게 얼마나 못된 심보인지 알고 있냐는 말이었다. 사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관점이었다. 지금도 그녀의 눈빛과 말투가 기억에 남는 것 보면, 그 때 꽤 큰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의 마음의 안정감을 위해서 난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자각을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선택하라고 하면, 여김 없이 반수를 하겠지. 모두가 새로운 '소속'을 찾아갈 때 , 소속이 없다는 건 공포였다. 우리 나라의 재수학원 시장도 그걸 기가막히게 겨냥하고 있다. 재수생들에게 '고등학교'보다 '대학교'보다 강력한 소속감을 부여하기 위해, '강남 OO재수학원 동기'라는 자부심을 심어주는데 많은 마케팅 비용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게 실제로 위안과 용기가 되어준다. 




어쨌든 나는 우리 사회가 원하는대로, 소속 중독자로 살아왔다. 그 덕에, 어딘가에서 나를 설명하거나 소개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OO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라는 멘트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었으니까. 




나는 불안 장애로 4년 째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고 있다. 퇴사에 대한 욕구가 임계치에 달았을 때, 마침 상담이 잡혔다. 퇴사가 두려운 이유로, 나는 ‘소속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평생의 대부분을 어떤 ‘소속’에서 보냈는데, 갑자기 덩그러니 집에만 있게되는 것이 두렵다고.




“저는 소속감이 되게 중요한 사람이에요. 소속이 없다는 게 절 불안하게 하면 어쩌죠.”

“회사만 소속감을 주나요? 친구랑 가족은 소속이 아닌가요?"




선생님의 말하기 방식 중 내가 사랑하는 점은, 약간의 불친절함이 있다는 점. 답변하는 대신 차갑게 질문을 던져준다는 점이다. 나는 곧바로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퇴사를 하고, 1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났는데, 이상하게도 소속이 없다는 것이 불안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두려운 건 어쩌면,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해야 할 때,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 누구입니다”라고 설명할 수 없음이 두려웠던 것 같기도.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나는 OO유치원 OOO반 OOO입니다”를 자기소개로 배워왔는데, 나는 이제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에 대한 두려움이었겠지.




선생님의 말대로 내 불안과 안정을 책임지는 건, 정말이지 가까운 친구들과 가족이었다. 팀장이 없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할리 없었다. 아침에 '업무'를 위해 나에게 전화 거는 동료 대신, 나의 안부를 묻는 친구와 가족이 있었다. 오후 3시 동네를 산책하며, 이 동네에 사는 아주머니를 마주치고 학생들을 마주친다. 나란 인간은 넓게는 지구의 소속이고 좁게는 용산구의 소속이고, 너와 나의 소속이었다. 다행히도, 별 일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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