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이름을 짓는 일
산을 가득 메운 찬 공기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천장이 뻥 뚤린 화장실에서 하늘을 보며 참았던 소변을 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서둘러 씻고 오늘 가르칠 내용을 살펴보다 보면 금세 9시 50분. 맞춤법 시험을 볼 종이들을 챙겨 차가운 교실로 내려가 학생들을 기다린다.
그렇게 매일 아침 10시에 다딩베시의 청년들을 만났다. 15살의 어린 친구부터 대학교 졸업을 앞둔 청년과 열 발가락 가득 화려한 악세서리를 뽐내는 여학생들까지. 누군가는 비장한 눈빛으로 수업에 몰두하고 누군가는 이런 자리에 속한 것만으로 행복한 표정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누구보다 행복한 내가 서있다. 40여명의 순수한 눈빛을 한 몸에 받는 과분하게 행복한 내가 서있었다.
내게는 두 개의 네팔 이름이 있다. 하나는 고아원 아이들이 지어준 "바르바띠"이고 (흰두교에서 세상을 만들었다는 시바신의 부인 이름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어 교실 학생들이 지어준 "풀마야"라는 이름이다. "풀"이 꽃이고 "마야"는 사랑이라는 뜻인지라, 사랑스러운 꽃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려나.
누군가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 일은 경이롭다. 나의 존재가 환영받고 인정받는 일이라 그렇다. 누구나의 이름에나 담겨있는 소박한 바람들도 그 이름을 더 성스럽게 만든다. 나에게 지어진 풀마야라는 이름은 네팔에서 꽤나 흔하지만 예쁘고 모던한 이름에 속했다. 가네스, 바르바띠처럼 신의 이름을 따온 거대한 이름들과 달리 소박하고 서민 냄새가 나는 이름. "우리 동네에 이국적이고 재밌는 선생님이 왔어! 친해지고 싶어!" 라는 문장이 차곡차곡 접혀 "풀마야"라는 짧은 이름에 숨어있는 듯 하다. 그래서 난 내 이름이 참 좋았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외국인인 경우에는 비슷한 얼굴들을 인식하는 데 참 오래 걸린다. 조니뎁과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투어리스트'라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여주인공이 키이나 나이틀리가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구나 하고 깨달은 적도 있거든. 내가 키이나 나이틀리의 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구나 이름마저 생소한 네팔 학생들때문에 초반엔 참 혼란스러웠다. 나는 전문 선생님도 아니었기 때문에 학생들 이름을 외우는 노하우도 없었다. 이런 핸디캡들을 이기기 위해, 학생들에게 당당히 선생님으로 인정받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지.
일주일에 걸쳐 폴라로이드로 한 명 한 명 사진을 찍었고 4절지에 이름과 함께 정리해 벽에 붙여두었다. 레건, 럭쓰미 처럼 'ㄹ'로 시작하는 이름끼리, 크리슈나, 크리스티나하리처럼 'ㅋ'으로 시작하는 이름끼리 그룹을 만들어 표시해두었다. 우리에겐 한글이라는 재료가 굉장히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네팔 사람들은 한국어가 따로 있는지, 한글이라는 언어가 따로 존재하는지 조차 모른다. 자음과 모음에 대한 첫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나에게 몰려와 말했었다. "당연히 알파벳으로 쓰는줄 알았어요!"라고. 덕분에 내가 만든 '이름 포스터'는 두고두고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보는 것이 한국어 수업의 시작이었으니까.
레건은 영어도 한국어도 가장 잘 하는 학생중 한명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나에게 찾아와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네팔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친절히 물어봐주는 따뜻한 학생이었다. 우리가 참 좋아했던 레건, 아마 레건이 우리가 한국어 이름을 지어준 첫번째 학생이었던 것 같다. 반듯하고 예의바른 레건에게서 떠오른 이름은 '민호'였다. 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우리 세대에서 '민호'는 스마트하면서도 부잣집에 사는 같은 반 반장같은 이름이었다.
우리가 사진 찍을 때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드는 걸 보고, 학생들은 너도 나도 카메라 앞에서 V를 날린다. 근데 그 와중에 '브이'가 아니라 '쓰리'를 날리는 자가 있었으니, 럭쓰미다. 특유의 명랑함과 아줌마스러운을 갖춘 럭쓰미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관심이 많고 호기심도 많은 학생이었다. "선생님~ 선생님~"하며 찾아오던 럭쓰미는 한국어에 대해 질문하기보다는 네팔어를 하나라도 더 나에게 가르쳐주려고 애썼다. 네팔어는 마지막으로 긋는 선이 마침표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럭쓰미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런 럭쓰미에게 우리는 '바다'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큰 눈과 동그란 얼굴, 시원 시원한 성격에서 바다가 떠올랐다. 이왕이면 우리가 배웠던 단어 중에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네팔에서는 보기 힘든 푸른 바다를 이름에서라도 떠올릴 수 있도록. 쉽게 자신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영어 표현 중에 In your element라는 표현이 있다. 사전에 치면 '물 만난 물고기 같다'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한 집단에 완전한 구성원으로 녹아들었다'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어구이다. 네팔에서 찍었던 한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외국인 친구 한 명이 내게 "You are totally in your element there"라고 남긴적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한국어 이름은 희미해지고 새로운 이름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네팔과 한국의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는 모두 세상에 없던 새로운 집단의 특별한 구성원으로 녹아들고 있었고. 어느 유명한 시처럼,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전에 없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