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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Oct 01. 2020

왜 두려운가요?라고 물으신다면.

Diana Krall-Let 's Fall in Love, <Live in Paris>


https://www.youtube.com/watch?v=rSRsg79itN4



 10월 한 달 동안, 하루 한 곡의 재즈를 들으면서 감상문(?) 형식의 글을 쓰기 했다.  그 글의 형태와 분량은 고려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당일의 분량을 마무리지어 업로드를 해야 한다는 것이 꽤 걱정이 된다.


 살다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걱정'을 하여 '사서 고생'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것이 다소 잘못하면 걱정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형태,  걱정을 하는 행위가 하루의 주요 일정처럼 자리를 잡고야 마는 삶의 형태가 고착화되는 일이 허다하다.



 양력 10월 1일. 오늘은 2020년 10월의 첫날이자, 추석 당일이며, 아빠의 생신이기도 하다. 결혼을 한 순간부터 '추석'이라는 날은 복잡 미묘한 날이 되었는데 즐거운 명절이 마냥 즐겁지 않게 되어버렸음은 물론이요, 자식이 된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생신을 마음껏 챙기기에 타인의 양해를 거듭 구해야 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이미 걱정이 산을 이룬다.


언제쯤 갈거니?  

조금 이따가 갈게요. 오늘이 아빠 생신이라서요.

저녁 먹고 가지.

그러기에는 차가 좀 막힐 것 같아요. 늦기도 하고...

음. 그러겠네. 알았다.


 뭐, 대략 반복되는 이런 흐름의 대화. 하지만 정작 친정으로 가지 못하고 바로 나의 집으로 오고야 만다. 연휴 내내 긴장한 채로 큰 집의 차례까지 두 집이나 차례상을 치다꺼린 딸에게 당장 당신에게로 달려와 생일을 축하하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잔하실지도. 이젠 그 어느 집도 편하지 않다. 전전긍긍 서로가 불편하면 어쩌나, 힘들면 어쩌나, 애쓰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조차 사실은 괴롭고 성가시다.


 그렇게 녹초가 된 몸을 집에 들이자마자 신발장 앞에 엎드러져 한참을 퍼질러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편히 쉬라는 남편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찬 냉기가 도는 방바닥에 누운 몸을 동그랗게 오므린다. 춥지만 몸은 녹아든다. 점액화 되어 바닥에 흡수된 채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바닥은 흡수가 잘 안될 텐데 하는 생각에 손가락 끝을 세워 바닥에 아무 모양이나 그려댄다. 그때 핸드폰의 밀린 푸시들이 울린다. 남편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지만, 핸드폰의 푸시는 그래도 확인하는 내가 우습게 느껴진다.


 '아, 오늘부터 재즈 듣는 날이었지.'


 쓸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바닥에 널브러진 채 듣는 재즈는 어떤 맛일까 궁금해 먼저 재생한다. 다이애나 크롤의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사랑을 고백하는데 영 어색하다. 오늘이 아니었으면 좋았을걸. 하지만 음악치료를 열심히 했을 당시, 오로지 클라이언트만을 위한 치료도구로의 음악을 했었고, 음악에 대한 '나의 상태'를 적절히 조절하는 건 이미 익숙했으므로 최대한 그 경험을 발휘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이 음악 자체에 대해 몰입할 수 있는 나만의 접근을 시도해본다. 그렇게 한 번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해본다. 듣고 나니 아쉽다. 몇 번 더 들어보면 무언가를 적어낼 생각이 조금씩 떠오를 수 있을 것 같기도.


 반쯤 젤리화 되어있었던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는다. 어젯밤 기분을 환기하기 위해 뿌려놓았던 향수의 향이 옅게 남아있다. 북베트남 벤째 북부에 위치한 세 봉우리 산이라는 탐다오. 우디한 향이 더욱 진하게 들어차도록 옷을 끌어당겨 멱살을 잡은 후 번 더 뿌린다.  Let's fall In Love의 볼륨을 높인다. 여태껏 귓가에서 딸그락 거리던 설거지의 소리가 사라진다. 동그랑땡의 기름내도 이제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에 빠져보자고, 왜 망설이냐고,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 보자고. 기회를 잡고 두려워하지 말자고. '사랑'이라고 표현된 단어 속에 포함될 수 있는 다양한 단어들을 떠올려본다. 감정이 될 수도 있고, 꿈이 될 수도 있고, 소원이 될 수도 있고, 당장 해야 할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두려움', '망설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에 사로잡힌다. 왜 두려워하냐고? 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지 않느냐고? 그래. 나의 두려움의 깊이를 따라가 보자. 마치 바닷속으로 헤엄을 치는 것처럼. 그렇게 헤엄을 치다가 아름다운 범고래도 만나고, 불가사리도 줍고, 진주를 품은 커다란 조개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두려움이라는 바다에 빠지면 적절히 산소를 공급할 기계가 없을 것만 같고, 나름의 필사적인 노력을 하다가 결국 숨을 다 소진하여 다시는 물 밖으로 올라오지 못할까 봐 두려운 것이라면. 나는 사랑에 빠질 자격이 없는 걸까.


 하지만 노래는 말한다. 나를 강해지게 만들고, 수줍게 만드는 '당신'이 좋기 때문이라고. 다시 한번 '당신'이라는 단어 속에 포함될 수 있는 다양한 단어들을 떠올려본다. 반드시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므로 넓게 생각해본다. '사랑'에 포함되었던 단어들이 다수 겹친다.


 다시 한번 노래는 말한다. '기회'를 잡아보라고. 두려움이라는 바다에 매몰되지 않도록 나를 도와줄 무언가가 나를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이에요. 우리가 젊을 동안 사랑에 빠져봐요.'

 아, 젊음이 기회구나. 이제는 스물보다는 서른에 가까운 나이. 어쨌든 젊음을 노래할 수 있는 나이...


해놓은 것 없이 나이만 먹었구나..라고 좌절하지만. 편하게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재생시킨다. 옷을 끌어당겨 탐다오의 향을 맡는다. 머릿속에 차오르는 푸른 봉우리를 있는 그대로 떠올린다. 푸르르고 젊은 힘. 나를 무언가에 빠져들게 해, 강하게 이끌 힘. 노래는 기타의 솔로가 이어진다. 팔을 들어 몽글몽글한 리듬에 맞추어 나무처럼 움직여본다. 그저 점액질의 상태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을 바라지 않겠다는 의지. 다이애나 크롤의 이어지는 목소리가 명료하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넨다.


We might have an end for each other

To be or not be

아마도 끝은 기다리고 있겠죠. 그럴까요, 아닐까요.
Let our hearts discover

Let's fall in love

우리 가슴이 알아낼 테죠. 사랑에 빠져봐요.

Why shouldn't we fall in love

사랑에 빠지면 왜 안 되나요.
Now is the time for it, while we are young

Let's fall in love

지금이에요. 우리가 젊을 동안 사랑에 빠져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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