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녕안 Nov 25. 2021

나는 서른의 나그네다.

어찌 된 것이 살아도, 살아도 낯선 곳뿐인지.

  일찍 잠에 들고야 말겠다며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국 한 시간 정도의 얕은 수면 후 그 대가로 새벽을 보고야 만다. 한, 4년째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원래는 악바리처럼 12시가 되기 전에 꼭 잠에 드는 편이었다. 사실 악바리보다는 순진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12시가 넘어서 자게 되면 하루의 피로를 정돈하는 체계가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해 아무리 수면의 시간이 길다 하더라도 컨디션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내용을 어디서 '주워 들었기' 때문이다.  12시 01분만 넘어가도 '앗차차, 내가 지금 이러면 안 되지!'라며 두 눈 꼬옥 감고, 짧은 기도 후에 잠을 청했다. 기도의 내용은 뭐 그저 그랬다. 오늘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와 악몽을 꾸지 않고 편안한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염원?


  이제는 나도 모르게 기도의 루틴이 사라졌다. 무언가 간절할 것들이 사라졌는지. 그래서 그런가, 잠에 드는 게 너무 어렵다. 근간에는 정서적으로도 영향이 이어져 결국 나름의 어두운 시간을 보내다가 적절한 처방을 받아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했다. 그 처방이랄 것은 잠에 들기 30분 전에 새끼손톱 반 만한 알약 두 알을 꼴딱 넘기는 것이 전부였다. 첫날은 그냥 바로 정신을 잃고 뻗어버렸다. '아-주 좋은 잠'이었다. 위내시경 받고 깨어난 느낌이랄까. 그렇게 '좋은 잠'이라는 것에 꾀어 몇 달 동안 열심히 약을 잘 챙겨 먹었는데 어째선지 요즘엔 좀 귀찮다. 2주 치 약을 받아놓고는 이사를 핑계로 병원이 멀어져 거의 두 달째 퐁당퐁당 먹고 있다.


  오늘은 정말 마지막 남은 한 봉지를 보게 되자 특유의 '아 귀찮네'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자신 있으면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아, 그래도 이걸 먹어야 새벽 2시에는 잘 수 있는데.. 고민을 하며 귀를 만져보니 이 귀가 내 것이 아닌 듯 무언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삶에 이질감이 가득하다.





   길진 않았지만 나의 안녕한 30년 시간을 돌이켜보았을 때, 가장 열심히 했던 것은 글쓰기였다. 어릴 때는 혼날 때마다 독후감을 쓰는 것이 주된 벌이었다. 정말 자주 썼다. 어느 날, 아빠는 이번에는 정말 반성하라고 꽉 채운 50장 독후감을 쓰라고 하셨는데, 나는 OK. 콜. 을 보낸 후 결국 끈기로 50장을 완성하여 굴복하지 않기도 했다.  대학생 때부터는 글쓰기 플랫폼이 다양해져서 자발적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공모전에 뭔가를 내보겠다고 누구도 보여줄 수 없는 소설을 적었고, 19년도에는 졸업을 담보로 한 논문 쓰기 라던가... 등의 이벤트에 어쩔 수 없이 영혼을 팔기도 했다. 음악과 관련된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뭐, 결론 및 논의까지 다다르기 위한 글쓰기를 했다. 나 박사 갈 것도 아닌데, 그냥 휘갈기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 지도교수님께 정말 많이 혼났다. 졸업 이후, 신촌 근처는 아예 가지도 않는 자랑스러운 나..)


  오늘은 잠자는 것도 실패했는데, 졸업논문 쓸 때도 안 했던 음악에 관련된 글을 좀 써보려 한다. 요즘 자주 마음을 떠도는 노래가 있다. <백년설, 번지 없는 주막(1940)>이다.


https://youtu.be/TPGfvUJiHL4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나리는 이 밤도 애절 구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아주까리 초롱 밑에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애절 구려
귀밑머리 쓰다듬어 맹세를 빌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



  백년설 선생님의 곡은 '나그네'가 주된 소재로 쓰인다. 1940년대 발매된 곡이니 발매 시기 또한 애절하다. <번지 없는 주막>은 본래 그때에 발매 예정은 아니었으나, 그 나라의 검열 아래 <눈물의 백년화> 대신 급히 투입되어 <산 팔자 물 팔자>와 함께 한 앨범으로 수록된다.




  이 노래에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좋아하던 곡도 아니고, 처음 들었을 때는 이 세상 구닥다리 노래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꾸 희미하게 떠오르곤 한다. 이 노래를 알 법한 어른들과 이야기하면 당연히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 의미가 희미해진 그 느낌 그대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 물론 나도 오리지널 원곡 자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오로지 위 영상의 버전만을 좋아한다.


  아코디언과 나일론 줄 감은 클래식 기타로 단출하게 구성된 밴드가 연주하는 반주는 보컬과 서로 주거니, 받거니 나긋하게 흐른다. 보컬 또한 요즘 흥하는 모 트로트 경연 방송 특유의 에너지와는 다르게, 희미해진 이 노래의 선명한 의미를 전달한다. 가사로 사용된 단어들 중 검색 없이는 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단어도 있지만 천천히 눈으로 훑고 귀를 기울이 그 이야기를 내 나이에 맞게 짐작해본다.





  매일을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살아도, 살아도 낯선 곳뿐인지. 브런치에 글을 쓰며 힘을 내 볼 것을 몇 번이나 다짐한 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브런치에 오지 않은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갔다.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이다. 미완성된 것들, 열심을 내지 못한 것들, 아쉬움이 남은 것들, 당장 설렘이었던 모든 것들을 덮어두며 지냈다. 그런데 이 지고지순한 브런치는 잊을만하면 푸시를 보내 글 좀 쓰라고, 니 꼴 좀 보라고 하더라 -브런치의 잔소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 200일쯤 글을 쓰지 않으면 그 푸시를 팍팍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언제쯤 나의 이름이 '녕안'에서, '안녕'으로 바뀔까.

  

  이름도, 번지수도 모르는 곳에서 새벽을 몽땅 헤매며 감정이 소모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이곳에서도 '내 삶이 이렇게나 애절하다!'라고 풀어놓을 수 있었다는 게. 뜬 눈으로 시작할 오늘을 위해 꺼내 드는 짧은 위안이다.


  차라리 나그네로 살아야겠다. 나그네는 원래 애절하게 사는 사람이라 온 몸으로 비도 맞고, 바람도 맞고, 감기도 걸리고, 찜통 속에서도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쯤 되면, 나는.. "내 삶이 이렇게나 애절하다!'라고 외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그네가 천직일지도..   


... 안녕하세요, 서른의 나그네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8. 멜로디가 모이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