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녕안 Jan 15. 2022

시절의 늪에서 건져내다.

  역시 잠이 오지 않았기에, 밤새 길을 잃고 헤매었다. 습관처럼 찾은 매체 속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이 참을 수 없는 소음처럼 느껴져 잠시 행동을 멈춘다. 시선은 외부에서 나에게로 전환된다. 또 밤이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 세월은 더 남았다. 까마득히 넓고도 깊은 바다에 또 홀로 서 있는 상상이 펼쳐진다. 밤이면 밤마다, 눈에 담기는 깊고 어두운 파도에게 나는 잡아먹힌다. 고래 뱃가죽 안이라 해도 이 어둠에 결국 익숙해지기를, 적응할 수 있기를 기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도 나를 떠나지 않는 소음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쳐버리기'이다. 눈에 가득 차오르는 검은 어두움도, 그것의 공포를 증폭시키는 이 소음도, 이 어두움의 어느 한 자락에서는 모두 자멸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오직 지쳐버리는 것 만이 나의 살 길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핸드폰을 꺼낸다. 차가운 몸체에서 미세한 전류가 느껴진다. 그 불쾌함에 충전선을 분리시키고 나니 남은 에너지는 고작, 24%. 이것으로 충분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멸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검어진 파도를 자극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되는 데까지 일단 가보기를 선택하며 화면을 응시한다.  


  나의 정보를 어느 곳에 남긴다는 일은 주로 자의적인 일이겠으나 그것을 확인하는 것 또한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은 어떠한 알고리즘에 의해 의도치 않게 덜컥 제시되기도 한다. 그것이 반가운 줄 아는가. 이것을 만든 이들은 얼마나 자신의 모든 순간들을 정확하게 사랑하는 자들일까. 나에게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나의 추억 속에서만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순간은 나의 모든 순간이 아니다. 내가 지금에 와서야 선택한 순간만이 나에게 있을 수 있다. 그 외의 것들은 스스로 어찌 되든 남의 일이라고 해도 상관없을지도.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나의 이 과거는 약간 궁금증을 가지게 했다. 심지어 동영상이었다. 그것도 내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학부 때 실기고사를 잘 보면 전공 당 한 명 참여할 수 있게 되는 연주회가 있었는데, 그 영상이었다. 나름 이 때는 고충이 많았다. 이 연주회를 준비하라는 학과 전화가 반가워야 했으나, 방학 중 신나게 전동드릴 작업 후 시큰한 손목을 주무르며 어머님들과 함바집에서 한 술 뜨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연주 영상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나는 이미 피아노에 손을 뗀 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보냈으며,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멘트가 '나 절대 음악 안 해.'가 되었다. 음악이라는 모든 순간들은 어떠한 순간의 나로부터도 결코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실패였고, 매 순간 나를 죽이고 싶었다.


  그런 순간들 중 가장 큰 고통이었던 순간을, 그 시절의 내가, 움직이는 상태의 것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영상은 내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오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벌써 손에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그냥 호기심으로 보는 것뿐이야. 심지어 이 영상은 16년도 4월의 영상인 걸. 적당히 듣고 끊어야지. 하지만 연주의 첫 음이 들리기 시작했을 그 시점으로부터 약 세 시간 동안 그 영상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었다. 나를 평생 인정받지 못하게 했던 나의 실태가 아주 적나라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 나는 오른손 옥타브가 나올 때마다 다 말아먹었구나. 그나마 이 정도라도 소리를 간신히 낸 것이 다행이네. 빌어먹을 손은 작기도 작았지만 오른손은 특히나 더 속을 썩였지. 아, 힘 달린다. 진짜 이때 팔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가만히 집중하기를 여러 번. 왠지 자꾸 눈에 차이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아무리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한 순간조차 집중을 놓지 않았다는 모든 몸짓과 소리가 증거로 다가왔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음계들조차 나는 의미를 가지고 그것을 펼쳐 보이려 애쓰는 것이 너무나도 여실히 보였다. 덩치가 작은 탓에 큰 볼륨을 내려면 몸을 더욱 많이 써서 건반에 실어야 했는데 그것 또한 볼 만했다. 나름 영리하게 하려 꽤 연습하고 노력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면서. 결국 못 이겨 엉망으로 휘갈기는 부분이 나올 땐 그 방학 때 함바집에서 점심 먹을 게 아니고, 연습실에 있었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22년의 나는 영상 속 나의 모든 움직임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고 그 의미들을 이제야 조금씩 인정하기를 반복했다.


   세 시간 동안 나는,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 대한 치유의 과정을 가졌다. 과거의 나 자신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절대적인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노력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 어떠한 실수가 되었든 간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결국 큰 흐름을 이루어 낸 것에 대해 격려를 보내는 것. 나는 그에 대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것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이 나였고 모든 것이 나이기 때문에.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손에 땀을 쥐며 그 순간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은 정당했다.


  지금 이렇게 또한 잠에 들지 못하는 나의 이 시절은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위태롭기 그지없다. 마치 늪과 같아서 아주 대단한 움직임이 아니었더라도 잡아먹히고, 가라앉고, 갇히다 보면 결국 갇혀 빠져나올 수 없기를 매 순간 경험한다. 이렇게 잠에 들지 못하기를 여러 번, 여러 날, 그리고 매일. 나를 목 조르고 있는 이 시간 속에서도 나는 스스로의 편에 서기로 마음먹는다. 시절의 늪은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부터가 바닥이다. 그 바닥이 나를 끝없이 무한한 공포에서 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