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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녕안 Apr 24. 2024

착각의 착각의 착각

아, 나는 자격이 없는 자이지.

나의 하루는 눈 깜짝하면 어두워져 있고, 총알같이 달려가는 시간 속에서 무한히 돌아가는 나의 머릿속은 무섭도록 각종 생각을 휘젓는다.


앙금으로 가라앉을 새도 없이 돌고 도는 모든 파편들은 시기와 주제를 막론하고 날카로운 모래바람처럼 나를 긁어댄다.


하필이면 한 알의 모래가 눈동자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던 눈물을 쏟았다. 내 마음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되뇌며 연신 눈꺼풀을 꺼뻑거린다.


나의 무방비함에 화가 난다. 나는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이 세상에 자신 있게 발을 들일 그 어떤 순간조차 내게 있지 않았음이 서러우려는 찰나.  


아, 나는 자격이 없는 자지. 또 착각을 하였다. 수없이 등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착각을 하였음을 기억해내고야 만다. 멀었다. 나는 여전히 아직도 한참이다.


내 유일한 자, 침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먼지가 일어나지 않게 아주 슬며시 이불을 들추고 냉기가 서려있는 속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밤새 발이 꽤나 시릴 것이다. 어두운 곳. 온기라고는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곳. 머리끝까지 나를 숨긴다.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나를 숨겼으니. 이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이 순간부터 나를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아, 나는 자격이 없는 자지. 착각 속에서 또 착각을 하였다. 나는 여전히 한참이다. 눈을 감고 나의 숨소리에만 집중한다.


아주 미세하게 발 끝으로 고이는 온기에 웅크린 다리를 펴본다. 그곳은 또 시렵다. 그렇다니까. 나는 자격이 없는 자인데 자꾸만 그것을 하려 애써본다. 호시탐탐 노리고 맴돈다.


나는 여전히 또 그렇게도 한참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자격이 없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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