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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Aug 19. 2022

커피 예가체프

칼디의 마법

 서서히 여름 더위가 시작되고 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절실하다. 원래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아 어려서도 사탕도 별로 안 먹었다. 보통 ‘아아’라고 줄여서 말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여름철 최고의 음료이다.

 약속이 있으면 의례 카페에서 약속을 잡는다. ‘oo카페로와~’ 라도 말을 한다. 약속한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들어서면서부터 커피 향기가 확 밀어닥친다. 주문을 하려고 카운터에 서서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하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커피 향기는 숯불갈비나 치킨 냄새처럼 식욕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커피 향기는 지성과 감성을 자극한다. 한 잔의 커피를 코로 가까이 가져가 보자. 지성이 예리해지고 나의 감성은 날개를 달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커피의 기원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 칼디의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칼디는 고대 아랍어로 뜨겁다는 뜻이다. 이 전설에 따르면 칼디라는 에티오피아의 목동이 자기가 기르던 염소들이 어떤 빨간 열매를 먹은 후 춤을 추는 듯 활발한 것을 발견하였고, 호기심에 자기도 그 열매를 먹었더니 피곤함이 가시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염소들과 함께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사실이 수도승에게 알려져 기도 중에 잠이 들지 않도록 하는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슬람권은 술을 마시는 것을 금했기 때문으로 지금의 터키에서부터 커피가 음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할 일이 많은 요즘 사람들은 졸음을 쫓으려고 커피를 마신다.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 중추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졸음을 피할 수 있다. 야근도 해야 하고 자기 계발도 하는 등 늘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나 나도 오후에 커피를 마시는 것은 피한다. 잠을 자고 싶을 때 못 자는 것도 굉장한 고통임을 알기 때문이다.

 커피숍에 가면 요즘은 “마일드한 맛과 신맛 중에 어떤 걸 드릴까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마일드한 맛은 브라질이나 콜롬비아 커피로 대표되는 남아메리카 지역의 커피다. 전 세계 커피 생산의 45%가 이 지역에서 나온다. 원두의 종류의 하나인 아라비카 커피라고도 많이 부른다. 신맛은 아라비카에서 다시 파생되어 온 에티오피아나 케냐 커피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지역의 커피다. 이곳의 커피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주로 여성층에게 인기가 많은 예가체프라는 원두의 종류로 불린다. 마일드한 맛은 브라질의 아라비카, 신맛은 에티오피아의 예가체프로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처음에 예가체프를 접한 것은 신길동의 한 카페였다. 그곳에 세계 다양한 커피가 있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나에게 권한 것은 예가체프였다. 처음에는 그 신맛이 익숙하지 않았다. 몇 모금 마시고 나자 블루베리 향기가 살짝 올라오면서 신선한 풍미가 느껴졌다. 그 후로 에티오피아산 예가체프를 찾게 되었다.

 햇빛은 강하나 바람은 차가운,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바리스타가 정성껏 내려 주는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셨다. 작은 장미정원에 둘러싸여 있는 벤치에 혼자 앉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향긋함으로 꽉 채워졌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 관련 책을 사서 보고 바리스타 강좌도 신청하였다. 안양시 호계동 매주 토요일에 그곳에서 커피 수업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지하차도를 지나 강의실에 가야 했는데 지하차도 입구를 올라올 때면 커피 마을이 시작되는 듯했다. 커피 수업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좀 어려웠다. 압력밥솥의 스팀처럼 강한 스팀이 커피를 추출하고 우유 거품을 만들 때도 뜨거운 스팀이 쓰였다. 커피 하면 인스턴트 봉지커피와 원두커피로 구분할 줄밖에 몰랐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었다. 또 집 근처 평촌이나 안양일번가에도 비슷한 커피숍이 많이 생겼다. 언제든지 다양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요즘은 아이 엄마들도 아이들 등교시키고 카페를 많이 찾기 때문에 웬만한 커피 지식이 전문가들처럼 해박하다. 더위 속에서 이런저런 집안일로 지칠 때, 사춘기 아이들을 참아내야 할 때, 늘 바쁜 남편에게 이해는 하지만 서운할 때 내 마음이 뿌연 안개로 뒤덮인다. 외로운 건지, 힘든 건지, 답답한 건지조차 헷갈린다. 그럴 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물론 예가체프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나의 마음을 선명하게 드려다 볼 수 있는 것 같다. 뿌연 안개를 칼리의 마법으로 확 물리쳐 주는 것이다. 커피 한잔으로 말이다. 처음에 쓴맛을 느낄 때면 좀 진지해진다. 오늘 할 일들이나 영수증 처리나 병원 진료, 아이들 학원 일정도 챙긴다. 일상의 꼭 해야 할 일을 먼저 정리한다. 중간쯤 마실 땐 살짝 신맛을 음미한다. 많이 웃으면 갑자기 양쪽 턱이 아프도록 찌르르하며 입안에 확 신맛이 도는데 그럴 때 기분이다. 읽기로 한 책을 넘겨 본다. 오늘 메뉴를 다시 블로그에서 확인해보고 재료 중 부족한 것이 있으면 메모해 둔다. 마지막에는 얼음이 제법 녹아 싱거워져서 단맛이 느껴진다. 이제 신나는 노래를 찾아 듣는다. 아침 산책길 만난 쥐똥나무 꽃향기와 노란 빛깔 꽃창포의 반듯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둘째 아이의 아직도 향긋하게 풍기는 애기 냄새가 생각난다.

 

아침에 있었던 소란스러운 집안 풍경은 어느덧 지난 시간이 되어 잊혔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마음에 다독인 나는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친구들을 만나볼 수도 있다. 그리고 오후에 다시 가족들이 모일 시간을 준비한다.  남편에게는 아이스 라떼를 만들어준다. 잡화점에서 이천 원에 산 거품기는 성능이 아주 좋아 그럴듯한 거품을 만들어 낸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 늦게까지 공부할 것이 많은 아들에겐 아메리카노를 내려 준다. 잠을 쫓아야 해서 얼음을 가득 쌓아 올린다. 더 일찍 배워 부모님에게도 만들어 드리지 못한 게 후회된다.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는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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