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제발 해결되었으면
자고 일어나니 속옷 상의에 피가 묻어 있었다. 밤중에 코피를 흘렸나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속옷에 소량의 피가 묻어 있었다. 이곳저곳 몸을 살펴본 결과 유방에서 피가 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5년 전 코로나가 막 시작될 무렵의 일이다.
전염병이 도니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봄밤이면 가로등 사이 이팝나무 꽃이 환하게 피어오르던 모습이 인상적인 병원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별일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고 세침 검사를 하고 나니 가슴에 달궈진 쇠공을 매달고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꾸 친정엄마를 간병하며 병실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젊은 사람이 암에 걸려 한 달 안에 죽었대.”
나는 서둘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밖엔 나지 않았다.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내 인생도 허망했지만 철없는 아이들이 겪을 외로움을 생각하니 더 막막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진료실에서 들었을 때, 아이들이 어리니 개학 전 서둘러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코로나로 개학이 늦춰지고 있었다.
많이 걱정하는 나에게 교수님은 그렇게 하자며 잘 치료될테니 힘을 내자고 하셨다.
수술 전날 집 주변을 돌며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눈물이 사정없이 흘렀고 이제 마지막인가 싶었다. 그러던 필자는 5년 동안 잘 살고 있다.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며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가끔 여행도 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기쁨과 감사함을 느낀다.
퇴원 후에 나를 수술한 교수님의 일정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오전에 응급으로 수술해 주시고 오후에 진료를 보셨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입원 당시에는 너무 황망하여 그런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사전지식은 없었지만 통증과 초조함 때문에 수술을 서둘렀다. 암치료는 표준치료이기 때문에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되도록 빠른 치료의 시작이 생사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년째 감사함과 평온함이 긴장감으로 바뀌고 있다.
1년 동안의 의료 공백, 불안의 시간
치료를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병원에서 나는 안심이 되는 동시에 불안감도 느낀다. 작년 한 해 동안 병원에는 전공의가 없기 때문이다. 전에는 병원에 가면 환자반 의사반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수련받는 젊은 의사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담당 교수님 밑으로 의사들이 보이지 않는다.
의정 갈등으로 의사들이 떠난 병원을 1년 동안 다니며 다시 협상이 잘 이루어 지길 바랄 뿐이다. 내가 수술할 당시에 지금처럼 의료사태로 의사들이 떠나 수술이 지연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다.
잘 치료받은 날도 ‘오늘은 치료를 받고 가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지금 치료 못 받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하고 우려가 된다. 병원 복도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수술 날짜를 잡지 못해 초조함에 발만 동동 구르는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고통 속에서 미뤄진 수술 날짜를 바라보고 있을 환우들의 눈물도 느껴진다.
대한민국 의료, 환자들이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조속히 해결되어야
의료 사태를 뉴스로 처음 접할 때, 정부는 의료인력을 확충해서 지역의료를 강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지방에 큰 병원이 없어 먼 곳에서 서울로 진료를 오니 취지는 이해되었다. 하지만 정부의 2,000명 밀어붙이기식 증원에 전공의들은 다 이탈해 버렸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금방 끝날 것 같았던 의료 갈등은 일 년이 다 되도록 지속되고 대한민국 의료는 궤도를 이탈한 열차가 되었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본 의료란 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채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학생을 많이 배출하면 공부를 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지 의술이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진정한 의사가 되기 위해선 명의에게서 의술은 물론 환자를 대하는 따뜻한 마음과 생명을 지키겠다는 의지와 인내까지 수련받아야 되는 것 같다.
5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밤중에 응급실에 가야 할 때도 있었고 수술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상처에서 피가 쏟아져 새벽에 응급실로 향했다. 그때 나를 안심시키고 소독하며 꿰매던 전공의는 다시 돌아와 꼭 훌륭한 명의가 됐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움직임에 흔들리던 커튼과 시간이 새벽 4시였던 기억이 있다.
항암치료를 하다 보면 갑자기 의외의 부작용이나 심한 고열을 겪기도 하고 수술이 시급히 필요한 때가 많은데 심각한 상황이 오면 환우들은 어떻게 해야 되나 걱정이 앞선다. 지금은 응급실 뺑뺑이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추운 겨울 산모들과 아픈 분들이 잘 치료받을 길은 없는지 마음이 졸아든다.
그간 의정 갈등을 지켜보면서 서로가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니 대화가 되지 않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12월3일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서 생각은 바뀌었다.
지방의 의료를 살리고 국민들을 위한다면서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을 이끌지 못하고 계엄을 계획하고 있었다니 끔찍하다. 대한민국 의료를 이 정부에게 계속 맡겨도 되는 걸까.
의료뿐 아니다. 교육과 문화와 예술 모두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충격에 빠졌다.
얼마 전 병원에서 수술을 해주신 교수님을 뵙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혼자 버티면서 얼마나 힘들게 애쓰셨으면 환자보다 더 초췌해져 있었다. 병원에 남아 있는 교수님께 치료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송구했다. 그래도 나는 다시 아프면 살려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다.
70여 년 전 6.25전쟁이라도 겪고 있는 것처럼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제 전쟁이 나면 총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기는 화생방부터 시작해서 핵무기까지 일순간 온 나라가 폐허로 변할 수 있다. 그런데 대화를 모르는 독재자를 우린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걸까.
올해는 뱀의 해다. 새해 소망이라면 병원에서 맘 편히 치료받으며 뱀처럼 길게 살고 싶다.
환자들은 의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와 치료해 주길 바라고 있다. 그리고 전공의들은 다시 수련해서 대한민국의 의료를 지키고 훌륭한 의사로 남았으면 한다.
2025년에는 여·야 대표와 전공의, 의사협회, 대학이 합의점을 찾고 의료공백 잘 해결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 이야기는 오마이뉴스에 제보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