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하루, 맑은 숨 쉬다' 출간

암수술 후 글을 쓰며 두려움과 나약함을 극복한 회복의 여정

by 김은진

(글쓰기가 정말 치유에 효과가 있을까? 의심이 된다면 제 얘기를 들어보실래요)


“작가님, 이제 인쇄를 진행하려 합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출판사에서 문자를 받고 나는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나를 살린 작품집!’


아프지만 글을 써보면 어떨까


5년 전 유방암이 전이되면서부터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4기라는 생각에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내 처지가 위태롭게 느껴졌다. 얼마나 살지 알 수 없지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가 잡은 동아줄은 글쓰기였다.

처음 항암을 시작할 때 나의 경우 머리카락이 조금씩이 아닌 한꺼번에 뭉텅 빠졌다. 어색하고 당황스러워하는 내게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다가와 나를 안으며 말했다.

“엄마는 예뻐, 아주 예뻐.”


며칠 밤을 내 손을 놓지 않고 잠드는 아이를 보며 나는 뭐라도 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보다 더 불쌍해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했다. 우선 아침마다 밖으로 나가 걷고 식사도 골고루 챙겨 먹었다. 틈틈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그러던 어느날 다음 항암을 위해 입원했을 때 일이다. 병실을 같이 쓰던 환우들과 ‘퇴원을 하면 뭘 할까’하는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대부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하거나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걸 새로 배워 보겠다는 말이 오갔다.

내가 대답할 차례가 되었을 때, 스스로도 반신반의하고 있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니 글을 써보려고 해요."


잠시 병실에 정적이 흘렀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좀 막막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나는 학창 시절 국어 성적을 떠올리며 내가 방금 한 말의 실현 가능성을 다시 가늠해 보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침대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던 환우 한 명이 요즘 SNS에 익명으로 글을 쓰는 사이트가 있다고 했다. 가까이 다가와 앱 설치까지 도왔다.

말의 힘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인가 보다. 그때부터 매일 글쓰기 앱에 들어가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한 줄이 될 때도 두 줄이 될 때도 있었다. 독성 항암 치료가 끝나고 일상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모자를 쓰고 인근 도서관에서 강좌를 들었다. 더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인강이나 줌 수업에 참여했다.

처음에 내 글은 사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어느덧 오래된 추억까지 쓰고 나니 다른 소재가 필요했다. 이곳저곳 다녀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멀리 가지는 못하고 주로 가까운 곳을 다니거나 KTX 열차를 타고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하루’ 여행을 했다.

그렇게 다니니 두려움이나 걱정 같은 것은 아예 잊어버리게 되었다. 많이 걷게 되자 다리에 힘도 오르고 근육도 붙었다. 지도를 보면서 방문할 곳을 찾아다닐 때는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바쁘게 다니다 보니 일상에 생기가 돌았다.

시기에 맞게 쓴 글은 '오마이뉴스'에 제보했다. 편집부에서 검토한 후 기사화되면 내 글을 다른 사람도 읽는다는 생각에 보람됐고 용기도 생겼다. 그리고 지역의 동인지에도 발표했다.

글을 쓰며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문학관에 다니며 아프지만 좋은 작품을 남긴 작가의 삶도 알 수 있었고 약한 몸이지만 문예 활동으로 지역에 봉사하는 분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났다. 감사하게도 나는 지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치유의 하루, 맑은 숨 쉬다』 출간


그동안 지나온 회복의 여정을 책으로 엮었다. 숨이 탁 트일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던 순간들을 모두 다섯 갈래의 발걸음으로 담았다.

첫 번째 여정으로 나는 꽃을 찾아다녔다. 화사한 꽃을 보면 어느새 내 마음에도 꽃이 피어나 향긋한 숨이 몸에 담겼다. 사계절마다 우리나라에서 다른 꽃을 만났다. 목련, 동백, 맨드라미 등이 나를 보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듯했다. 꽃밭에서 속상한 마음, 슬픈 마음은 어느새 휘발되었다.


숨결1-10.jpg 꽃잎처럼 피어나는 향긋한 숨

두 번째 여정으로 강을 찾았다. 아프기 전에도 강과 관련된 일을 해서 강가로 답사를 다녔다. 그때도 푸른 산천을 굽이쳐 도는 우리나라 강이 좋았지만 치유를 위해 다닐 때는 강물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했다. 또 물안개가 자욱할 때나 얼음이 얼었을 때 고독을 견디는 모습이 좋았다.


숨결2-9.jpg 강물따라 흐르는 깨끗한 숨

세 번째 회복의 여정은 길이다. 길에서 만난 나무, 고드름, 선인장, 보리 등이 글의 소재가 되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길 위에서 만난 사물들이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를 시와 글로 담았다. 그중에 폭설이 내렸던 대관령을 찾아간 것은 두고두고 내 자랑거리가 되었다. 대단한 추위였지만 그때의 고적하고 순결한 풍경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스스로가 대견해 미소가 번진다.


숨결3-2.jpg 길 위에서 되찾은 상쾌한 숨

네 번째 여정은 일상이다. 치료 중인 엄마를 돕기 위해 더 부지런해지는 아이들과 다정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간혹 환우들 중 어떤 음식이 좋을지 고민하는 분과 마주하게 된다. 나의 경우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었다. 다만 체중이 늘어나면 좋지 않으니 기름진 음식보다는 해물과 야채를 많이 먹었다. 그중 전복죽과 토마토 이야기를 담았다.


숨결4-6.jpg 익숙한 하루와 그리운 추억의 편안한 숨


마지막 여정으로 문학관을 다녔다. 훌륭한 시인과 소설가의 작품 속을 거닐 다 보면 현실의 문제는 가벼워졌다. 초능력이라도 생긴 것처럼 에너지가 쏟아지곤 했다. 아마도 상상의 힘이고 이야기의 힘이라 여겨진다.

글쓰기로 나는 용기를 얻었다. 문학이 있어 나약해졌던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글쓰기가 치유에 도움이 될까’하는 의문이 생기거나 병력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는 분이 있다면 내 책이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숨결5-1-1.jpg 이야기가 전하는 희망찬 숨


다른 작가에 비해 더딘 집필 과정을 묵묵히 기다려준 출판사에 이 자리를 빌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여행기를 기사로 채택해 주신 오마이 뉴스 편집자께 깊이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좋은 기사와 의미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김은진의 첫 작품집, '치유의 하루 맑은 숨 쉬다'

* 오마이뉴스에도 제보된 내용입니다

나를 살린 글쓰기 동아줄, 첫 책이 나왔습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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