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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크티 라떼 Jan 01. 2023

선녀들의 목욕

목욕탕에서 나올 때 마시는 야쿠르트~캬~이 맛이야!

"일어나! 나가야 돼!"

언니들이 흔들어 깨운다. 지금은 새벽 6시.

어머니는 샴푸와 타월, 목욕 후 갈아입을

옷까지 다 가방에 담아 두셨다.

어머니가 철물점을 하시니 목욕탕은 새벽에 가야 한다.  그리고 새벽에 가야 탕 속의 물도 깨끗하기 때문에 새벽 5시 30분부터 문을 여는 목욕탕에는 재빠르게 가야 한다.

새해 첫 날, 내일은 큰 집에 가한다. 그전에 깨끗이 씻고 가야 한다고 어머니가 재촉하신다.

큰 집에 간다는 말에 눈이 번쩍 떠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기운이 난다.

밖은 아직도 컴컴하다. 셔터가 내려진 골목의 가게들에 한번 더 함석문을 다시 닫아 놓았다.

문방구도 의상실도 낮에는 굉장히 친숙하여 놀이터처럼 그 앞에서 놀았지만

컴컴한 골목에서 보니 전혀 다른 모습이다. 셔터까지는 무섭지 않지만 함석문은 아주 심하게 화난 사람처럼 무섭다. 빨간 글씨로 크게 1,2,3,4,5를 휘갈겨 써 놓아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지옥문처럼 생겼다.

지금이 몇 시냐고 언니에게 재차 물어본다.

오들오들 이빨을 부딪치며 십여분을 걸어가면 목욕탕이 나온다.

환하고 따뜻한 목욕탕에 들어서니 살 것 같다.

목욕탕에서 사시는 분은 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계신다.

어머니와 언니들은 얼른 두꺼운 겉옷을 벗고 옷장에 넣는다. 나도 재빨리 따라한다. 이곳에서 열쇠는 굉장히 중요하다. 잃어버리는 걱정을 가끔 하게되는 열쇠다. 고무줄이 달렸기 때문에 긴 머리에 꼭 붙들어 달아 놓는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세숫대야와 바가지를 찾아야 한다. 거기에 앉는 의자와 샤워기까지 으면 오늘은 운수대통이다. 하지만 샤워기와 거울이 붙어 있는 자리는 그리 쉽게 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선 커다란 탕 옆으로 턱 의자를 만들어 놓는 곳으로 향한다.

오늘은 세숫대야도 없고 작은 바가지만 두 개 건졌다.

어머니는 일단 비누칠 한 번 해주시고 탕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신다. 따뜻한 물을 바가지로 몸에 들이부으면 찌르르 전기가 오른다.

와~따뜻해!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탕 속에서 푹 몸을 불려오라는 어머니 말씀대로 탕에 들어간다.

가슴이 답답하다. 할 수 없이 탕에 그냥 서있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다가 어머니 몰래 찬물탕으로 향한다.

찬물 한 바가지 받아서 세수를 하면 살 것 같다.

그리고 구석구석 이태리 타올로 때를 민다.

그때다. "찰싹" "아!" 둘째 언니가 어머니한테 등을 맞고 있다.

몸 좀 닦으라고 했더니 야쿠르트 병만 주워서 가지고 놀다가 혼나는 소리다.

에구... 다음엔 내 차례구나...나는 얼른 찬물장난을 그만두고 다시 팔부터 밀기 시작한다.

이제 어머니에게 갈 시간 "아야! 아야!" 어김없이 등어리가 아플 정도로 박박 때를 밀리고 나면

이제 어머니의 등을 밀어 드릴 차례다.

딸이 셋이니 서로 어머니 등을 밀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가 힘을 별로 못 쓴다고 생각하셨는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혼자 오신 분을 찾는다.

그리고 서로 밀고 오신다.

이렇게 어머니는 4명의 등을 밀고 또 어린 나의 이곳저곳을 밀어주시고서야 자신의 몸을 씻으신다.

자신의 머리를 감고 또 딸들의 머리를 감게 시키고 또는 샤워기 호수를 잡아주신다.

오늘도 어김없이 머리 감다가 코에 물이 들어갔다. 코끝이 찡하다.

이제 다 끝난 건가?

어머니는 다시 쑥찜질실에 들어가신다.

이 시간이 제일 좋다.

나는 온탕에서 놀다가 냉탕에서 놀다가 어머니가 다 씻기를 기다린다.

목욕탕 천장에 방울방울 맺힌 이슬을 보기도 하고 환풍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환풍기 주변으로 연기처럼 습기들이 떠다니는 것을 바라보기도 한다.

어떤 미친 남자는 저 환풍구에서 여탕을 훔쳐보다가 떨어져서 전신마비가 왔다는 괴담을 기억하고는 차라리 체력도 좋은데 올림픽에 나가지 하는 생각을 한다.

커다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폭포라고 생각하며 놀기도 하고 바가지를 쓰고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고 있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을 밀다가 비명을 지르고 머리를 감다가 우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는 인생 선배가 된 기분이다.

'저걸 못 참고 우네 난 울진 않았는데......' 괜히 옆에 가서 우는 얼굴 구경도 해본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신 어머니가 쑥 찜질방에서 나오시면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밖에서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고 가져온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으면

어머니가 야쿠르트나 바나나 우유를 사주신다.

우리는 빨대를 '팍' 소리 나게 꽂으며 '와의 전쟁'을 끝내고 '제대'한다.

바깥의 시원한 공기와 바람 따라 코끝에 와서 부딪치는 머릿결에서 나는 샴푸 향기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잘 있거라 목욕탕!

몸도 마음도 깨끗해져서 목욕탕을 나선다.

새해맞이 준비완료!

한바탕 딸들과 목욕을 마친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선녀시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선녀의 옷자락을 꼭 붙든다.

혹시 하늘로 날라갈까봐^^

선녀와 함께 있으니 내 얼굴도 사과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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