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0시 알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크티 라떼 Oct 11. 2022

철물점 방에서

건너마을에 최진사댁에 딸이 셋이는데~그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젤 예쁘다던데

어머니는 철물점을 하셨다.

대로변에서는 한 블록 떨어져 주택가와 상가들이 같이 있는 동네 안에 있었다.

그 옆으로도 미용실과 과일가게, 의상실, 사진관, 보일러 가게 등이 있었다.

딸 둘을 키우며 가게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자 어머니는 아들 생각이 간절하셨다.

주변에서 자꾸 아들 낳아야 된다고 딸들은 시집가면 그만이라고 말들을 하니 그랬다.

언니들이 스스로 차려진 밥을 먹고 큰언니가 작은언니의 옷을 챙겨줄 수 있을 때쯤 세 번째 임신을 하셨다.

철물점에는 살림을 할 수 있는 작은 부엌과 방이 같이 있었다.

나는 철물점 방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날은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 딸이라는 말을 듣고 미역국도 안 넘어가셨단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슬픔을 강한 생활력으로 승화시키셨다.

가게 옆에 방과 부엌이 같이 있었는데 가게도 운영하시고 세 딸도 보살피셨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몇 해전쯤에 아버지는 목돈 마련을 위해 사우디로 불도저 운전을 하러 가셨다.

장사를 하다 보니 별별 손님이 다 있었다. 그들 중에 어쩌다 듣기 싫은 말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딸만 셋이라느니, 아들을 왜 못났냐느니, 밭이 안 좋은 거냐, 씨가 안 좋은 거냐.'

얼굴이 굳어가는 어머니를 보면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 시절 분위기는 지금 하고는 많이 달랐다.


어머니는 큰언니를 낳고 무엇 때문인지 왼쪽 발을 약간 저신다.

불편하신 몸으로 힘든 장사를 하는 것보다 아들이 없는 게 더 큰 문제인 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내 마음에도 먹구름이 몰려왔다. 괜히 딸로 태어나서 어머니가 무시당하니 답답했다.

하지만 나에게 가수 이은하 씨가 있었다.

어린 시절 이은하 씨는 지금의 아이유 씨보다 더 인기가 좋았다.

방에 가서 카세트테이프를 틀면

"건너 마을에 최진사댁에 딸이 셋이는데~

그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젤 예쁘다던데~"

난 그때 한글은 몰랐지만 언니들과 계속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여러 곡을 외웠다.

'셋째 따님이 젤 예쁘다'는 부분을 특히 목청껏 불렀다.

'먹쇠와 밤쇠를 물리치고 사위가 되는 칠복이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 보기도 하고

최진사에게 절절매는 걸 보니 분명히 칠복이는 처갓집에 잘하겠다고 생각했다.

노랫말 속의 딸이 셋 있는 당당한 최진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부모님도 기죽지 말고 최진사처럼 큰소리치면서 사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먼 훗날 우리 집에도 그런 일이 생길 거라 기대했지만 아무리 봐도 나는 예쁜 셋째 딸은 아니었다.

바가지 머리에 통통하고 뛰어놀기를 좋아해서 하얀 면 스타킹은 발가락, 무릎, 엉덩이까지 사정없이 뚫렸다.

원피스를 사면 큰언니와 둘째 언니를 거쳐 나한테 왔는데 작업복 느낌이 났다.

하지만 어머니와 언니들과 친척들은 모두 한 마디씩 거들어 주신다.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데."

난 나의 미래에 은근히 자신이 생겼다.

사람들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엄마는 장사에 열심히 셨다.

겨울이 되면 철물점의 효자 상품으로 연탄난로가 있다.

난로를 팔게 되면 연통과 철사, 청테이프, 연탄을 집어넣는 토기까지 팔게 되었다.

그렇게 난로를 주문을 받게 되면 어머니는 '벤츠'라도 팔고 오신 것처럼

기분 좋아하셨다. 이날은 세상이 어머니의 편이었다.

철물점 방 안에서 둘째 언니와 나는 축하공연을 준비한다.

카세트테이프에선 이은하씨의 '밤차'가 흘러나오고 우리는 따라 부른다.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 검지는 하늘을 찌르며 박자에 맞춰 엑스자로 한 발 한 발 스텝을 밟는다.

시선은 오른쪽 손가락에 두고 목청을 높인다.

"멀리 기적이 우네! 나를 두고 떠나간 당신~"

철물점 방안의 열기는 전국 노래자랑을 방불케 하고

신나게 불러 대는 우리의 노래를 들으시며

작은 부엌에서 어머니는 기분 좋게 된장찌개를 끓이신다.

나의 고향 철물점에선 어머니와 세 딸들 사이에 따뜻한 난로같은 마음이 오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딩의 설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