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2월 똘방이가 첫 기관을 다니고 나서부터 생겨난 고민거리와 생각들로 인해 진작부터 쓰고 싶었던 글이자, 호오옥시나 같은 기관의 누군가 볼까 봐 얼마큼 솔직하게 써야 할지 애매했던 글이다.
똘방이의 첫 기관 후보군은 많았지만, 뚜벅이라 선택지가 별로 없어 주구장창 대기하다 한 유치원에 입소 확정을 받았다. 기다리던 순간이었는데, 막상 기관에 보내려니 내 눈엔 여전히 아기 같기만 하고, 어찌나 아깝던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정보육 일 년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반은 진담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를 통해 한 어린이집을 알게 되어 상담받았다. 많은 기관을 가보진 않았지만, 이곳만큼 좋은 느낌을 주는 어린이집은 처음이었다. 내가 찾는 기관의 기준은 깔끔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아이들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는데, 이곳이 그랬다. 어린이집에 대한 자부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원장님까지, 바로 여기였다.
그렇게 차량으로 등하원 가능한 유치원을 두고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니기로 결심한다. 사실 똘방이의 성향상 첫 기관을 유치원으로 선택하기엔 걱정이 앞섰다. 유치원은 독립적이고, 적응 기간 없이 바로 스쿨버스를 타고 헤어지고, 여전히 잠이 많은데 낮잠 시간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때마침 마음에 드는 어린이집을 만난 것이다.
신학기부터 다니려고 했는데, 어린이집에서 한 달 일찍 입소해 적응해 보는 걸 제안했다. 그렇게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던 2월, 똘방이가 유모차 방풍 커버를 거절하는 바람에 장갑에, 모자, 담요로 무장하고 등원을 시작했다.
가정보육할 때 9시, 10시에 일어나는 친구라 초반에는 등원전쟁 스트레스가 컸다. 이렇게까지 하며 등원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현재는 등원 준비에 도가 틈).
적응은 놀랍도록 수월했다. 둘째 날부터 반 안에 함께 들어가지 않아도 됐고, 셋째 날은 왜 이리 빨리 데리러 왔냐며 아쉬워했다. 사회성이 생겨나는 시기에 여러 친구를 만나 신나 보였다.
워낙 낯가림이 심했던 아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과 다르게 너무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기특했다. 하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짜증이 늘고, 어린이집에서 소변을 보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던 외할미할비도 싫다며 거부했다. 똘방이도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이다.
반 친구들은 한 엄마의 표현처럼 파스텔톤의 아이들이었다. 매일 이런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똘방이가 부러울 만큼 좋은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고 있다(이곳을 계속 다녀야 하는 가장 큰 이유).
아프기도 참 많이 아팠다. 가정보육할 때는 아픈 일이 거의 없었는데, 요로감염, 폐렴, 메타뉴모 바이러스, 기관지염, 알레르기 별의별 게 다 걸려 생전 처음 입원도 하고, 뻔질나게 병원을 오가던 겨울이었다. 평소 아픈 일이 잘 없었기에 대처도 미숙했는데, 이제는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반의사가 되고 있다.
아프고 나서 후폭풍이 찾아왔다. 어린이집 입구가 가까워지면 가기 싫다고 오열했다. 들어갈 때 한 번, 낮잠 잘 때 두 번 눈물을 보였고, 나머지 시간은 다행히 잘 보내는 듯했다. 이럴 때일수록 인사 후 단호하게 가야 한다지만, 보내고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But,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엄마는 어린이집의 맛을 알게 됐거든...
그렇게 4개월 정도를 아프고, 여름이 찾아오자 아픈 횟수가 줄고, 등원거부도 덜해졌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마이타민을 먹이고, 집에 오자마자 목욕시킨 효과도 있는 듯했다.
21년 겨울은 똘방이를 만난 날이자 혼자만의 시간이 사라진 날이었다. 나만의 시간은 친정엄마나 남편과 시간을 맞춰 겨우 얻는 찬스였는데, 4년 만에 갑자기 내 시간이 생기자 어색했다. 처음에는 하원하는 오후 4시가 너무 늦는 것 같아 똘방이가 안쓰러웠는데, 어느새 2시가 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나를 발견한다.
어린이집을 보내도 시간이 순삭이라는 엄마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먼저 오랜 가정보육으로 미뤄왔던 큼직한 집안일을 처리했다.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하원시간이면 진이 빠져 있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이제는 집안일도 하루 할당량을 정해놓고, 하원 후 똘방이와 보낼 에너지를 남겨둔다.
어린이집을 다니면 오후 시간이 금방 갈 줄 알았더니 웬걸, 체력이 점점 좋아져 하원 후 놀이터 루틴이 생겼다.
소단지에 사니 장점이자 단점이 서로 얼굴을 금방 익힌단 것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일수록 반가우면서 조심스럽다. 놀이터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가 있는 집은 웬만해서 얼굴을 텄다. 어린이집을 다니고선 낯가림이 나아지고 있지만, 똘방이는 이웃 아이들에게 쉽사리 마음을 주지 않아 난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꼭 놀이터에서 가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옆 놀이터에서 놀게 됐는데, 그곳에서는 혼자서도 잘 놀았다. 원장 선생님의 말씀처럼 똘방이는 환경적 변화에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라 그런지 가까운 사람들과 자주 간 익숙한 장소가 훨씬 편안해 보였다. 그날부터 어린이집 놀이터 생활이 시작됐다. 한참을 놀고도 집에 가기 싫다고 고집을 피웠다.
놀이터 생활을 하게 되니 자연스레 다양한 부모를 만났다.
임신하고 아이가 자랄수록 미혼일 때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등원 차량을 기다리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 아이를 막 등원시키고 모여있는 엄마 무리, 놀이터에 모여 돗자릴 펴고 앉아 있는 무리 등. 그 모습이 나는 썩 내키지 않았다. 아이는 좋지만, 기 빨리는 엄마 무리에는 굳이 끼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성향 차이인 게 같은 반 한 엄마는 오늘은 어떤 엄마를 만날지 설레는 마음으로 등하원 길을 나선다고 하는데, 그 말이 어찌나 놀랍고 한편으로 부럽던지.
나는 겉으로는 다정하게 잘 대해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오는 편이지만, 일정 반경 이상 가까워지려 하면 속으로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운다(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180도 다름). 또한 아이를 통해 연결된 인연은 잘 지내다가도 한순간에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해 적당히 선을 지키는 편이 나아 보였다. 아이와 부모 모두 잘 맞아야 관계가 유지되는데 이는 흔치 않은 경우기도 했다.
하필 남의 말을 잘 옮기고, 대화법이 교묘하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을 자주 봐야 해 스트레스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 사람은 나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누구에게나 생각 없이 말하는, 항상 자기 마음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만나고 나면 마음에 찝찝함을 남기는 사람이었지만, 어차피 시절 인연. 마음의 에너지를 낭비하기엔 나만 손해였다.
좋은 분들도 있었지만, 어린이집을 통해 이어진 관계라 조심스러웠다. 이들은 친구가 아니라 학부모였다. 혹시나 편안해져 나의 허물을 보이진 않을까, 나를 살피게 됐다. 아이들과 함께할 때 정신이 없어 한 말이나 행동이 뒤늦게 걸려 걱정되는 날도 있었다.
한편으로 내가 좀 덜 복잡한 사람이었으면, 외향적인 사람이었으면 이런 관계를 즐기고, 똘방이도 더 즐겁게 지내지 않을까? 답답하기도 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은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즐기기도 한다. 어차피 하원하고 남는 시간. 내 새끼가 즐겁다는데, 똘방이가 노는 시간이지 내가 노는 시간이냐? 또한 같은 기관을 보내는 부모끼리 나눌 수 있는 즐거운 대화가 분명히 있다. 다가오는 사람 중에 좋은 분도 있을 텐데 내가 기회를 걷어차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겉으로만 괜찮은 척, 열려있는 척하지 말고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이 또한 언젠가 몹시 그리워질 순간이 되어 있을 게 뻔하기에.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기엔 너무나 반짝이고 사랑스러운 시기다.
그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해 차 한잔하고 싶다고 하는 엄마와 카페를 가고, 세 명의 엄마와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 쿠폰을 사용하러 갔다 저녁도 먹고, 대화가 잘 통하는 동갑내기와 제법 진지한 대화도 나눠봤다(아쉽게 해외로 떠나게 됐지만).
+ 요즘의 고민(반전)
똘방이가 최근 어린이집에서 절친이 생겨 하원 후 자연스레 함께 노는 일이 많았는데, 이 집은 엄마가 기러기 생활을 해 아빠가 함께다. 놀이터에서 놀 때는 상관없는데, 우연히 편의점에서 마주친 후로 아이들이 계속 편의점에 가서 앉아서 뭔갈 먹으면서 놀 것을 원해 난처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그 친구와 시간대를 달리해 하원 중인데 갑자기 피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어렵다, 어려워!
하나의 생명을 잉태해 출산하고, 키워가는 일도 보통이 아니지만, 좋은 엄마가 되는 과정은 더욱 어렵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학부모가 처음이라.
나는 꽤 복잡한 사람이다. 첫 기관을 보내며 나와 아이 둘만의 일상에서 나아가 학부모가 되어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이 버거웠다. 다행히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더디지만, 이 상황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나아가려고 노력해서 얻은 변화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조금이라도 나은 나를 만들어가겠지? 또한 지금의 시기도 인생이 그러하듯 웃으며 추억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