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답사를 가서 음식을 맛본 후 드는 생각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나뉜다.
1. 맛이 없다.
2. 포인트는 있는데 맛이 없다.
3. 맛은 있는데 포인트가 없다.
4. 맛도 포인트도 있어서 무조건 섭외 각이다.
5. 맛도 포인트도 완벽해서 차라리 섭외가 안 되면 좋겠다.
맛집 프로그램을 하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세상엔 '진짜로, 정말로' 맛있는 식당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적당히 맛있는 집은 많다. 오히려 맛이 없는 집을 찾는 게 어렵다. 하지만 '맛있음'과 '맛있어서 또 오고 싶음'의 사이는 별처럼 멀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도저히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의 맛이 있다.
평범과 비범, 그 간극을 어떻게 명확히 나눌 것이냐?
숟가락질 빈도나 기억력에 의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내게 가장 확실한 건 '섭외 안 됐으면 좋겠다'라는 뇌의 시그널이다.
맛있는 식당 찾아서 방송에 나와달라고 애걸복걸하러 왔는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생각인가 싶다가도, 방송에 나온 이후 유명세를 타 줄을 서고 예약 전쟁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 웃기게도 아득해진다. 차를 타고 서너 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에 있더라도 마치 집 앞에 나 혼자 아껴두고 먹는 단골 식당인 양 꽁꽁 숨겨놓고 싶다. 이 집만큼은 방송의 때가 안 묻었으면 좋겠다는 이유도 있다. 방송에 나온다고 때가 묻는다는 건 아니지만 한 번도 방송에 안 나왔다는 어떠한 고결함을 오랫동안 간직했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나만 알고 싶다는 강렬한 본성 뒤로 여러 가지 이유를 덧붙여보아도 어쨌든 같이 간 후배 작가 눈치도 있고, 맛집을 찾겠다는 이성과 사명감도 있으니 일단 섭외 얘기는 꺼내지만 어쩐지 목소리는 작아지고 설명은 헐거워진다. 대부분 그렇듯이 돌아오는 대답은 'NO'다.
물론 가끔이지만 의외로 섭외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충격받은 표정으로 3초 정도 멍을 때리다가 '진짜 괜찮으시겠어요...?'라는 마음의 소리를 한마디 정도 내뱉은 뒤 눈물을 머금고 사장님의 연락처를 받아간다. 이미 섭외가 됐다면 어쩔 수 없다. 최고의 맛집으로 소개하겠다...!! 는 일념으로 온 정성을 다해 업무(소개는 coming soon)에 임한다. 촬영과 편집, 자막과 원고까지 열과 성을 다해 마치고 나면 숭고한 마음으로 내 안의 마스터피스에 임명한다. 내가 또 하나의 명작(?)을 탄생시켰구나, 그렇게 위안한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방송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어떠한 복지나 보장의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 일반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이 건강검진, 복지포인트, 상여금 등의 혜택을 누리는 것을 보면 많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혈혈단신 독고다이로 일하는 내게 남는 것은 결국 이런 것들이다. 일로써 축적한 값지고 유용한 데이터들. 프로그램을 다 마치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 혼자 아껴둔 섭외 못한 맛집을 다시 돌아다녀보려 한다. 그것이 주어진 업무를 훌륭하게 해낸 뜨거운 보상이자, 유일한 열매이기 때문에.